◆세계적 수학자 54명의 에세이 '수학자들(궁리 刊)'
수학이란 무엇인가…수학자는 누구이고 어떻게 탐구하나
수학자들의 삶·철학에 사진까지 담은 '포토 수학에세이'

수학은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동시에 하나의 목표를 향한 공동의 노력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때문에 흠잡을 데 없는 철저함이 필요하다. 사진 속 인물은 2006년 앙드레 베유 학술대회에서 강연하고 있는 수학자 장 피에르 세르. <사진=책 본문 중에서>
수학은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동시에 하나의 목표를 향한 공동의 노력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때문에 흠잡을 데 없는 철저함이 필요하다. 사진 속 인물은 2006년 앙드레 베유 학술대회에서 강연하고 있는 수학자 장 피에르 세르. <사진=책 본문 중에서>

잔치는 끝났다. 수학자들의 수다 덕분에 잠시 국내에도 '수학 열풍'이 불었다.

더 큰 바람이 많았다. 같은 시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다. 신자·비신자 구분없이 'Pope'에 열광했다. 소외된 이들의 상처를 그는 기꺼이 어루만졌다. '명량'도 있었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정한)리더 없는 사회'의 갈증을 잠시나마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 한국을 휩쓴 교황과 명량의 바람은 소통, 공감, 리더와 같은 단어를 공통분모로 한다.

그래도 수학자들은 선전했다. 그들의 무기 역시 '소통'이었다. 그들은 어렵고 딱딱한 수학을 '교과서' 밖으로 끌고 나왔다. 수학과 사회의 교집합과 합집합, 그리고 여집합을 찾아내 들려줬다. 수학과 세계의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를 그들만의 공식으로 풀어냈다.

세계수학자대회가 지난 21일 막을 내렸다. 특별한 수학 능력을 갖고 있는 전 세계 수학자 5200여 명이 한국에 왔다. 그들은 해석학, 대수학, 기하학, 확률, 통계, 미분방정식, 논리학, 대수기하학, 기학적 대수학, 거리공간과 초거리공간, 조화해석학, 수의 확률 이론, 모델과 슈퍼모델 발견자들, 경제와 미시경제 이론의 창시자들, 슈퍼컴퓨터와 유전 알고리즘의 고안자들이다.

수학자 알랭 콘. 그는 수학자에게 두 가지 면모가 있다고 말한다. 증명하고 확인하는 역할에 필요한 강한 집중력과 날카로운 이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확실성보다 시적인 이끌림에 가까운 비전. <사진=책 본문 중에서>
수학자 알랭 콘. 그는 수학자에게 두 가지 면모가 있다고 말한다. 증명하고 확인하는 역할에 필요한 강한 집중력과 날카로운 이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확실성보다 시적인 이끌림에 가까운 비전. <사진=책 본문 중에서>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이자 '패셔니스트 수학자'로 불리는 세드릭 빌라니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글에서 이런 기대감을 표출했다. 

"이제 2014년 호랑이를 닮은 유서깊은 한국에서 열릴 세계수학자대회를 기다린다. 그때 다뤄질 주제는 무엇일까? 이번에는 누가 또 제물로 바쳐질까? 수천 명의 수학자들이 늙은 호랑이에게 존경을 표할 것이다. 그들은 구불구불한 호랑이의 실루엣을 탐구하고 완벽한 대칭성을 공리화하며, 항상 변화하는 우발성을 시험하고, 줄무늬의 반응확산계를 분석할 것이다."

그의 헌사는 계속된다. "수염에 미분 연산 수술을 시행하고, 날카로운 발톱의 곡선을 측정할 것이며, 양자 잠재력의 우물에서 호랑이를 꺼내줄 것이다. 호랑이와 함께 수염을 털어가며 신성한 끈이론 담배를 피울 것이다. 며칠 동안 힘센 호랑이는 꼬리 끝에서 코끝까지 수학자로 변신할 것이다."

'수학자들' 책 표지.
'수학자들' 책 표지.
◆세계수학자대회 참석 수학자들의 못다한 이야기

잔치는 끝났지만 남은 얘기들이 많다. 못다한 얘기도 많다. 그들이 과연 호랑이의 털과 수염에서 수학공식을 찾아냈는지는 알 수 없다(다만 많은 담배와 많은 수다가 오갔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수학자들(궁리 刊)'은 세계적 수학자 54명이 쓴 수학 에세이다. 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번 세계수학자대회에 강연자나 토론자로 직접 참석했다. 대회가 열리기 전 이 책을 접했다면 그들의 메시지가 또 다르게 들렸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육성을 들은 뒤 텍스트로 다시 접할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못다한 수다를 듣는 것도 반갑다. 원래 수학이란 과목이 그렇지 않은가. 예습도 중요하지만 복습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과연 수학자는 누구일까? 역시 필즈상 수장자인 마이클 아티야는 그 건조한 질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답한다. "밝은 대낮에 수학자는 개울가의 돌을 하나씩 뒤집어보듯 정확성을 기하며 그가 만든 수식과 그 증명을 확인한다. 별 사이를 두둥실 떠다니며 천상의 기적에 감동한다. 수학자는 바로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다. 꿈이 없다면, 예술도, 수학도, 삶도 없다."

그렇다면 수학은? 마틸드 랄랭은 '보물찾기'에 비유한다. "수학은 몇 가지 차이점만 빼면 보물찾기와 같다. 우선 끝나는 법이 없다. 보물을 찾는 것보다 수학문제의 답을 찾았을 때 느끼는 전율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또 수학에서 찾을 수 있는 보물은 그 수가 무한대인 데다가 각각의 보물에는 다른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 수학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프랙탈한 보물찾기가 아닐까."

수학자들은 언제든, 누구와도 수학으로 대화를 나눈다.  수학을 얘기하다 보면 말로는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할 때가 온다. 그때 볼펜이 등장한다. 냅킨이나 지하철 표 한 귀퉁에 갈겨쓴 공식 하나가 뒤엉킨 말의 실타래를 풀면 대화는 다시 시작된다. 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수학 공식들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종이쪽지가 작아져 버리면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분필을 잡는다.

수학자 알랭 콘(왼쪽)과 자크 티츠. <사진=책 본문 중에서>
수학자 알랭 콘(왼쪽)과 자크 티츠. <사진=책 본문 중에서>

실비 페이샤는 '보물찾기'에 성공했을 때의 희열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칠판에 머물던 시선들은 마침내 만족감으로 반짝반짝 빛나며 서로 마주본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바로 이거거든! 칠판에 남아 있는 수학적 교류의 흔적을 백지 위에 남긴다. 그것은 백묵으로 적은 강렬한 교류의 마지막 잔해이다. 내일이면 청소부 아줌마에게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학 에세이' 혹은 수학을 주제로 한 '포토 에세이'

영화 '굿 윌 헌팅'이나 '뷰티풀 마인드' 등 수학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모습 그대로다.

MIT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윌 헌팅은 우연히 복도 칠판에 적힌 수학문제를 발견하고 천재성을 발휘한다. 그 문제는 이 대학 교수이자 필즈 메달 수장자인 램보 교수가 제자들에게 낸 문제였다. 윌 헌팅은 한 순간의 막힘도 없이 문제를 풀어간다. 실비 페이샤의 표현처럼 '칠판에 머물던 시선은 마침내 만족감으로 반짝반짝 빛난다(영화에서는 문제를 푼 윌 헌팅이 아니라 문제를 낸 램보 교수의 눈빛이 그랬다)'.

실존인물을 다뤘던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시도 유리창이든 벽이든 틈만 나면 수학공식을 적는다. 마틸드 말랭이 말한 것처럼 수학이 프랙탈한 보물찾기라면, 수학자는 빈 공간에 그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자들'에 어려운 수학공식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수를 해독하는 자들'의 일상, 수학에 대한 흥미로운 추억과 일화, 수학자들이 직접 털어놓은 헌신과 열정, 희열과 좌절에 대한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글들이 가득하다.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 그는 책에서 "밝은 대낮에 수학자는 개울가의 돌을 하나씩 뒤집어보듯 정확성을 기하며 그가 만든 수식과 그 증명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 그는 책에서 "밝은 대낮에 수학자는 개울가의 돌을 하나씩 뒤집어보듯 정확성을 기하며 그가 만든 수식과 그 증명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은 고뇌하는 수학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작가인 장 프랑수아 다르스가 찍은 160여 장의 사진에는 수학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칠판 빼곡히 공식을 써내려가며 열변을 토하는 수학자, 그 동료의 설명을 토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수학자, 홀로 연구실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진 수학자. 그의 사진은 수학자가 누구인지, 수학이 무엇인지를 그 어떤 설명보다도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수학자들이 쓴 '수학 에세이'이자 수학자들의 모습을 담은 '포토 에세이'이기도 하다. 

잔치는 끝났다. 그래도 수학의 여운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조반니 란니의 말처럼 진리(답)를 찾아 떠다는 수학자들의 여행도 계속된다. 

"마침내 베일을 벗을 황홀한 신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줄 아주 조그만 단서라도 찾으려고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곳의 불을 밝히는 행복한 수학 여행자는 '진리'의 부분을 드러나게 하고, 홀로 느끼는 순수한 기쁨의 순간을 보상 받는다."

'수학자들'은 일종의 포토 에세이다. 사진작가 장 프랑수아 다르스가 찍은 160여 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수학자들'은 일종의 포토 에세이다. 사진작가 장 프랑수아 다르스가 찍은 160여 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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