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으로 보는 조선 해군의 군사과학
'必死則生' 불굴의지에 적 압도하는 군사력
화포 탑재한 최강 전투함 '판옥선'으로 왜군 격파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그리고 조선의 군사과학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판옥선에 탑재된 화포들이 보인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그리고 조선의 군사과학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판옥선에 탑재된 화포들이 보인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명량'은 야구로 치면 직구와 같다. 불필요한 설명과 대사는 과감히 생략했다. 당시 역사적 배경이나 조선을 둘러싼 정세 등은 관객들의 '역사 상식'을 믿고 최소화했다. 쟁쟁한 조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연기와 역할조차 제한적이다. 딱 할 만큼만 하고 명멸한다. 오직 이순신과 12척의 배로 330척의 배를 격퇴시킨 명량해전만 있을 뿐이다. 

여기 고뇌하는 한 장수가 있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임금께 글을 올렸지만 본인도 안다. 12척의 배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병력만 모자란 게 아니다. 눈부신 승리에도 상 대신 벌을 내렸던 임금, 바다를 포기하자는 참모, 죽음을 직감하고 탈영하는 부하, 귀향을 청하는 아들. 어쩌면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必死則生 必生則死)'이라는 포효는 이런 고뇌를 물리치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이자 결의였으리라.

마침내 전투가 벌어지고 승리한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과 물길의 흐름까지 분석한 철저한 준비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명량해전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또 다른 결정적 비결은 바로 조선의 '군사과학'이다.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단기간 1000만 관객 돌파'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명량을 통해 조선해군의 우수한 군사력을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해전 장면(61분)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조총이 무섭겠는가…막강한 화포가 있는데

해전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이 가운데 핵심은 역시 화력이다. 당시 해전에서는 화포가 승패를 좌우했다.

조선해군의 화포에 파괴되는 왜군의 배(왼쪽). 당시 왜군은 조총을 앞세워 조선을 공략했지만 해전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선해군의 화포에 파괴되는 왜군의 배(왼쪽). 당시 왜군은 조총을 앞세워 조선을 공략했지만 해전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에서 보면 왜군도 화포가 있었지만 조총을 주로 사용한다.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은 수군의 움직임을 크게 둔화시킨다. 하지만 조총은 기본적으로 보병에게 적합한 무기다. 당시 일본이 즐겨 쓰던 '제대별 일제사격 후 돌격' 전법은 지상전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멀리 있는 배를 파괴할 수 있는 화포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순신은 이미 해전에서 화포의 강점을 어떻게 할용할 지 아는 장군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14세기 고려시대 화포를 만들었다. 왜구들은 끊임없이 한반도를 노렸다. 수시로 출몰해 약탈을 일삼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퇴치하기 위해서는 화포가 필요했다. 최무선은 당시 몽골군이 사용하던 화약제조법을 입수해 자체적으로 질산칼륨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화약을 이용해 화포를 만들고, 화포를 탑재한 군선 개발에도 주력했다.

이런 군사과학을 계승한 조선해군은 이미 다양한 화포를 해전에 적용했다. 실제 영화에서 나오는 현자총통은 기동성이 뛰어나 근접전에서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다. 가장 강력한 화포로 원거리의 적선을 제압할 수 있는 천자총통도 맹위를 떨쳤다. 여기에 지금의 함대함 미사일을 연상시키는 대장군전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영화에서는 조란환도 등장한다. 왜군들이 배에 오르려 하자 구슬이 한꺼번에 날아가 해치우는데 이 때 쓰인 탄환이 조란환이다.

◆숫자만 많다고 두렵겠는가…최강의 전투함이 있는데

영화에서 이순신은 거침없이 배를 몰아 적진으로 들어간다. 이른바 충파(衝破). 배를 직접 부딪혀 적선을 파괴시키는 전법이다. 사료에도 나오는 전법으로 30km의 물살을 이용해 엄청난 힘으로 달려가면 상대가 맥을 못췄다고 한다. 물론 적선을 향해 돌진하면서도 화포는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이러한 전법이 가능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배가 상대보다 크고 튼튼할 것. 당시 조선수군의 배는 왜군의 배를 압도했다. 거북선도 있었지만 주력 '전투함'이었던 판옥선은 당시 최강이었다. 속도에서는 다소 떨어졌지만 방향전환 등이 쉬워 기동성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판옥선은 왜군의 주력 전투함이었던 '안택선(安宅船)'에 비해 견고했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大洋)이라면 몰라도 연안의 해전에서는 그야말로 대적할 적이 없었다. 

조선해군의 주력 전투함이었던 판옥선의 위용(위). 왜군은 300척이 넘는 배로 공격했지만 배와 화포의 위력은 크게 떨어졌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선해군의 주력 전투함이었던 판옥선의 위용(위). 왜군은 300척이 넘는 배로 공격했지만 배와 화포의 위력은 크게 떨어졌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렇게 배가 크고 견고하다 보니 실을 수 있는 화력도 왜군의 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본의 안택선이 1~3대 정도의 화포를 실을 수 있었던데 반해 판옥선은 무려 24대 이상 탑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는 조선해군의 배가 제자리에서 돌며 화포를 쏘는 장면이 나온다. 다소 과장도 섞였겠지만 판옥선의 강점과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12척의 배로 333척의 일본수군을 격파한 명량대첩은 세계 해전사에 남을 만한 전투였다. 기적같은 승리 뒤에는 조선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최강의 전투함이 있었다. 

◆정보전의 승리…"이겨놓고 싸웠다"

그리고 명량해전은 정보전의 승리이기도 했다. 다양한 '탐망'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파악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고 명량해전은 정보전의 승리이기도 했다. 다양한 '탐망'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파악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순신의 전적은 23전 23승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사 전문가들은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했고, 사실상 이겨놓고 싸웠다"고 말한다.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의 명량해협(울돌목)은 물살이 거칠고 험하기로 유명하다. 거센 소용돌이까지 치니 조금만 방심해도 바다에 휩쓸린다. 영화에서는 이곳의 거센 물살을 표현하기 위해 음향효과를 사용했는데 그 소리가 사뭇 공포스럽다. 이순신은 이곳으로 적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밀물과 썰물의 시간대를 정확히 파악해 공격하고 방어했다. 조선의 연안이 낯선 왜군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탐망(探望)'. 지금으로 치면 정보전에 탁월했다. 심지어 적진에 첩자를 심어 정보를 빼내고 동태를 파악했다. 적병과 적선의 규모와 숫자는 물론 언제 공격할 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실상 이겨놓고 싸웠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전투는 오후 7시경 결국 막을 내린다. 조선해군의 승리였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라는 필요조건과 우세한 군사과학이라는 충분조건의 결합. 승률 '제로(0)'라는 의심과 두려움을 불식시키고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격퇴시킨 명량해전의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아들이 묻는다. "아버님은 왜 싸우시는 겁니까?" 이순신은 이렇게 답한다. "의리 때문이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라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의리.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그 의리를 지켰다. 어쩌면 영화 '명량'에 환호하는 이유는 그런 의리와 '이기는 것'에 대한 갈증일지도 모른다. 이와 별개로 영화속에 등장하는 우수했던 우리의 군사과학에도 마음껏 자부심을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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