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 여행 중.
그랜드캐니언 여행 중.
6년 반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에서 가장 재미있던 시간은 아마도 가족들과 여행했던 기억이다. 힘들었던 유학생활에서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휴식이자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방학 때 여행을 하기 위해서 매달 조금씩 생활비를 절약해서 여행경비를 마련한다. 유학생활에 시달릴 때도 방학 때 여행할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기도 하였다. 미국 유학에 대비하여 한국의 대학에서 자동차 내연기관을 강의하고 유학기간 동안 내 자동차를 스스로 정비한 덕분에 자동차의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어느 정도는 수리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이 마무리 될 때인 1985년 6월 미국 일주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였다.  미시시피에서 출발해서 서쪽으로 라스베가스까지 2000km를 간 뒤 북쪽으로 옐로우스톤까지 올라갔다가 로키산맥의 덴버를 거처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자동차는 곤충학을 전공하고 있던 후배가 갖고 있던 중형 밴을 이용하였다. 우리식구 3명 후배부부 2명 등 모두 5명이 출발했다. 이중 4명이 운전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8~9시간씩 운전을 하기도 하였다. 20여 일간 먹을 음식재료와 옷 그리고 자동차 정비용 도구까지 싣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미시시피강을 건너 루이지애나 주로 접어들어 미국의 동서를 관통하는 20번 하이웨이를 타고 서부로 향했다. 미국 남부의 날씨는 섭씨 35도에서 40도를 오르내렸다. 특히 뉴멕시코 지역의 사막지대는 섭씨 45도 이상이다. 특히 1살 된 우리 딸까지 타고 있으니 에어컨 없이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집을 떠난지 3~4일 지나자 에어컨에서 드디어 문제가 발생했다. 더운 바람이 나오는 것이다. 에어컨 컴프레서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6월 17일 루이지애나 주 비스티노(Bistineau) 주립 공원의 호수가의 폐차장에서 중고 컴프레서를 40달러에 구입해서 교체 하였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밖에서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작업을 끝내고 냉매를 주입하니 찬바람이 나왔다. 시원하게 텍사스의 사막을 지나 세계 최대의 박쥐동굴로 유명한 칼스배드(Carlsbad) 동굴 국립공원을 6월 19일 방문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많은 박쥐도 우리가 갔을 때는 나오질 않았다. 텍사스 고속도로를 지날 때 비가 폭포처럼 내려 앞이 잘 안 보이는데 윈도브러시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고속도로에 그냥 서있는 것도 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 할 수없이 윈도우부러시를 끈으로 묶은 뒤 앞의 창문을 열고 두 사람이 서로 잡아당기며 창의 빗물을 닦으며 운행을 하기도 하였다.

석회모래 150억 톤이 언덕처럼 쌓여있는 뉴멕시코주의 화이트샌드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의 V-2 미사일 기술자들 104명이 머물던 포트 블리스(Fort Bliss)와 투손에는 있는 피마 항공우주발물관(Pima air & space)도 방문하였다. 이곳에는 150종의 비행기가 야외에 전시되어있고 실내에도 수십 종의 비행기가 전시 되어있어 아마도 세계에서 실물비행기가 가장 많은 곳이 아닌가 싶다. 박물관 주변의 공군기지에는 수천대의 퇴역한 각종 군용기가 있었다. 이곳의 날씨가 사막기후여서 비행기를 야외에 보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후버댐을 방문하였을 때 자동차에 또 문제가 발생하였다. 시동이 결리지 않는 것이다. 경찰의 도움으로 기술자를 불러 시동을 걸고 근처의 정비소에서 수리하였다. 여행하는 것이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이 고장 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 옐로우스톤으로 올라가는데 자동차 엔진 쪽에서 꽝, 꽝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엔진소리에 놀라 근처의 자동차 정비소에 들렸다.  기술자가 소리를 잘 들어보더니 엔진에 문제가 있으니 엔진을 교체해야 한단다. 교체비용은 1500달러 정도라는 것이다. 여행 중 최대의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근처의 모텔에 가서 상의를 하였다. 엔진을 교체할 것인가? 차를 버리고 미시시피로 돌아갈 것인가? 모두들 침통한 얼굴이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 출발하며 엔진오일을 보충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얼른 자동차에 가서 엔진오일을 3~4통 보충하고 시동을 걸으니 엔진 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출발 전에 자동차 정비를 잘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평균해발 2400m의 옐로우스톤을 여행하고 내려오면서 바퀴 4짝도 모두 교체하였다. 새 자동차를 만들며 23일 동안 모두 9000km를 달렸다. 힘들고 어려운 여행이었지만 애리조나의 사막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힘든 일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리더십도 많이 길러진 것 같았다.

◆채연석 박사는

채연석 박사는 200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수장을 지낸 바 있으며, 2005년 KSR-Ⅲ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연구원에서 전문연구위원과 UST 교수로 활동 중 입니다.

채 박사는 로켓 박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우주소년단 부총재로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우주시대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또  '채연석의 로켓과 우주개발'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글로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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