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 연구한 김상태 박사
"경쟁력 원천은 실험공동체적 문제해결 시스템"

"대덕 구성원들은 대덕특구를 창조경제, 혁신 최적지라고 자부한다. 난 반대다. 실제 대덕이 가진 혁신어드벤티지는 크지 않다."

정부는 물론 대전시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바탕으로 국가적 정책목표인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나온 색다른 평가다.

더욱이 대덕단지에 지난 40년간 국가R&D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돼 있음을 상기하면, 다소 현실을 망각한 이야기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지난 2005년부터 5년간 미국에 거주하며 '샌디에고 바이오클스터'를 연구한 김상태 도시계획·정책학 박사의 의견은 다르다.

김 박사는 "대덕에 좋은 연구기관과 인력들이 모여 있고 R&D에 강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좋은 기관과 인력이 있다고 혁신에 유리할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라고 단언했다.

◆취약한 산업기반…샌디에고 성공을 이끈 비밀 '커넥트'

김상태 도시계획·정책학 박사는 대덕이 가진 혁신 어드벤티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리더십의 부재다. 그는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 발전을 이끈 커넥트를 소개하며 발굴과 연계, 중재를 위한 리더십그룹 형성을 조언했다. <사진=최동진 기자>
김상태 도시계획·정책학 박사는 대덕이 가진 혁신 어드벤티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리더십의 부재다. 그는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 발전을 이끈 커넥트를 소개하며 발굴과 연계, 중재를 위한 리더십그룹 형성을 조언했다. <사진=최동진 기자>
그는 박사과정에 연구했던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가 성공한 이유로 '강한 리더십'을 꼽으며, '커넥트(CONNECT)'를 언급했다.

특히 샌디에고는 연구 경쟁력은 상당한데 비해 산업기반이 취약했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기업 유치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점에서 대전과 유사하다. 샌디에고는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대기업 유치를 시도하다 실패한 뒤 철저히 바이오 중소기업 발굴과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커넥트'는 샌디에고주립대학이 주도해 1985년 조직된 리더십 그룹이다. 샌디에고를 생명산업과 첨단산업의 허브로 키우는 기반이 됐다. 그들의 역할은 이름 그대로 과학자와 투자자, 연구기관을 발굴해 연계해주는 것.

김상태 박사는 "무엇보다 커넥트 결성 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성장은 지역의 기술이전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 창업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고 "그 이면에 헌신적인 리더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초대부터 1999년 사망할 때까지 커넥트를 이끈 윌리엄 오터슨(William Otterson)이다. 컴퓨터 부속 생산업체 CEO였던 그는 항암투병 중 봉사·헌신의 뜻에서 1986년 보수 없이 커넥트 CEO를 맡았다. 그가 UCSD로부터 보장받은 것은 교수식당 무제한 이용권과 주차권 무한 발급 정도.

하지만 그는 수시로 기업가들을 불러 대학 연구진과의 네트워크를 넓혀갔는데, 기업인 초청이 얼마나 활발했는가는 오터슨이 1년간 지불한 교수식당 밥값이 1억원을 넘었다는 에피소드를 통해 알 수 있다. 또 기업인들을 초청해 과학자들이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Meet the Scientist'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이것이 향후 창업 활성화와 기술사업화의 초석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커넥트는 ▲벤처·스타트업을 멘토링하는 스프링보드 ▲기술이전을 지원하는 TTR ▲초기 창업기업 투자유치를 위한 벤처라운드테이블 ▲경영과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CEO전략포럼 등 10여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성과도 눈부시다. 커넥트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스프링보드를 졸업한 205개 창업기업이 1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고, 이 중 65%는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이처럼 기술과 기업의 연계가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역 내 투자그룹 등도 자연적으로 발생했다. 커넥트는 이런 투자그룹을 발굴해 기업에 연계시켜주면서 점차 시장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김상태 박사는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의 성공 원인으로 '커넥트'를 꼽았다. '커넥트'는 샌디에고주립대학이 주도해 1985년 조직된 리더십 그룹이다. 사진은 2010년 6월 29일 열린 커넥트 설립 25주년 기념식 모습. <사진=김상태 박사>
김상태 박사는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의 성공 원인으로 '커넥트'를 꼽았다. '커넥트'는 샌디에고주립대학이 주도해 1985년 조직된 리더십 그룹이다. 사진은 2010년 6월 29일 열린 커넥트 설립 25주년 기념식 모습. <사진=김상태 박사>

◆주변 여건 조직화 힘쓰는 미국 VS 서비스 직접 지원하는 한국

김상태 박사는 대덕의 리더 부재 외에도 정책적 접근의 차이도 지적했다. 가장 큰 차이는 '컨트롤(직접 관리)'과 '커넥트(중재·연계)'다.

김 박사는 커넥트를 비롯해 샌디에고에 있는 네트워크에 대해 "공통된 관심에 대해 함께 학습하면서 기업발굴, 코칭, 투자 등의 체계가 만들어졌다. 또 이들은 주변에 산재해 있는 여러 자원을 발굴하고 조직화해 힘을 응축시킬 뿐"이라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중재 역할을 할 뿐이란 설명이다.

반면 한국은 지원기관이 모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한다. 각 기관 내 창업센터 등도 기관의 기술을 토대로 직접 창업하는 방향을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원기관이 직접 지원하기 때문에 타 기관은 물론 민간과도 경쟁관계가 된다. 또 지역에서 투자 등 전문서비스 네트워크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현재 연구기관, 대학별로 운영 중인 BI를 연구단지중심지에 콤플렉스 공간으로개편해 집적화, 네트워킹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유사 분야의 집적의 의미에 대한 이해차이다. 이 차이는 개방성과 폐쇄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박사는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와 실리콘밸리 등을 '공동체'로 정의한다. 전문 분야는 물론이고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기업가 정신 등에 대한 관심이 형성되고, 불특정 다수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단지성이 발휘돼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샌디에고의 하이브리텍에서는 2008년까지 약 175개 바이오 관련 기업이 창업해 분사했다. 잠재적 약품을 발견하고 고객과 시장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가르너(Garner)에서는 8개의 제약전문회사가 생겨났고, 학술저널에서 유망기술을 발굴해 과학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아발론벤처스는 50개 이상의 바이오기업을 만들어냈다.

반면 대덕특구는 여전히 폐쇄적 느낌이 강하다고 했다. 최근들어 포럼 등이 많이 생겨났지만, 비슷한 그룹이 모여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관심 분야에 대한 학습에 머문다는 지적이다.

전문 분야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지역 사회 문제와 기업가 정신 등 공동체적 이슈에 대한 고민이 짙어질 때 비로소 집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샌디에고의 바이오비치 조성도. 과학-연구 지구 조성계획에 따른 것으로 연구 실험실, 지원 시설, 이와 관련된 사무실 등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많은 시설들이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밀집해 있고, 개방성도 뛰어나다는 분석이다. <출처=San Diego Union-Tribune. June 17, 2008>
샌디에고의 바이오비치 조성도. 과학-연구 지구 조성계획에 따른 것으로 연구 실험실, 지원 시설, 이와 관련된 사무실 등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많은 시설들이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밀집해 있고, 개방성도 뛰어나다는 분석이다. <출처=San Diego Union-Tribune. June 17, 2008>

◆"대덕이 왜 판교·구로에 밀릴까?…비즈니스 환경 분석하라"

김상태 박사는 수도권 R&D클러스터 활성화와 더불어 최근 제기되고 있는 '대덕 위기론'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대덕은 분명 R&D에는 최적화된 것이 맞지만 기업이나 사업화에 적합한 환경인가는 돌아봐야 한다."

그는 우선 지리적 문제를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연구단지와 대덕TP 등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생각하는 데 대해 "그 정도 거리는 집적이 아니라 격리된 것이다. 기술벤처들은 연구소와 도보로 5~10분 이내에 위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공간 재구성을 강조했다.

경쟁자와 다른 분야 기업가·혁신가를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적·사회적 구성이 필요하고, 그것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본질이란 의미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삼각지 재개발 사업을 구상 중인 노스캐롤라이나 사례도 소개했다.

더불어 7월 있었던 '도룡동벤처포럼'에 참석했던 느낌을 전하며 "창의성과 혁신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샌디에고의 커넥트가 여실히 보여준다"며 "그런 모임이 하루에도 2~3개씩 진행돼야 한다. 대덕의 기술로 수도권에 가서 창업하는 이유도 초기 창업가들이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이곳보다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태 박사는 끝으로 "대덕에는 분명 R&D 관련 인재들이 풍부하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한 번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요인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결국은 사람이다. 한국 최고의 스타 앙뜨프러너를 모셔와 리더로 삼자.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리더그룹을 통해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태 박사는 1998년부터 중기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UCI에서 유학하며 '샌디에고 바이오클러스터' 연구를 통해 도시계획·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기청 유통상생팀장으로 있다.

대덕특구 전경(맨위)과 최근 과학기술 클러스터로 부각되고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아래 왼쪽)와 판교테크노밸리 모습. <이미지=김상태 박사>
대덕특구 전경(맨위)과 최근 과학기술 클러스터로 부각되고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아래 왼쪽)와 판교테크노밸리 모습. <이미지=김상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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