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핵심 자리 타 부처에 뺏겨 정통 과학기술 관료들 자괴감
"현장에서 경쟁력 찾아 국가적 과학기술 진흥 제역할 다해야"

미래창조과학부(전신 과학기술부) 관료들이 흔들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정통 과학기술처 출신 관료들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MB정권에 이어 '반쪽 과학부'로 연명한 상황에서 현직 기재부 차관이 과학기술 담당 핵심 차관으로 선임되면서 미래부는 그야말로 멘붕(정신 붕괴)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1월 미래부 연구개발정책실장 자리도 방송통신위원회 출신 공무원에 빼앗겨 뒤숭숭한 상황에서 차관 자리까지 외부 출신을 불러들여 낙담하고 있는 분위기다.

전직 과학기술처 차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실장도 뺏기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과학기술 차관까지 외부몫이라니..."라며 "그러지 않아도 IT가 과학기술 안에 있는데도 홀대받는다고 말이 많았는데 이제 유일한 싹마저 잘려버린 기분"이라고 자괴감을 보였다.

기재부 차관의 과학기술 차관 배치는 박근혜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인사를 계기로 미래부는 대표적인 '불임 부처'로 낙인찍히는 모양새가 됐다.

'불임 부처'라는 표현은 자체 기관 내에서 스스로 기관장을 못내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전통적으로 보건복지부, 환경부, 여성가족부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산업자원부와 기획재정부는 내부에서 장관 자리를 뺏기는 경우가 별로 없다. 

미래부의 경우 스스로 장관을 배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동안 차관까지는 배출해 왔지만, 이번에는 그마저 뺏긴 것이다.

내부에서 기관장을 배출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질적으로 다르다무엇보다 유능한 인재가 기관장이 될 가능성이 없기때문에 애초부터 우수한 자원이 유입되지 않게 된다. 조직원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욕을 갖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퍼진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 갈수록 과학기술 관료들의 빛이 시들해 지는 양상이다. 

왜 이렇게 됐나?"경쟁력을 잃다"

과학기술 부처가 '불임 부처'로 위상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기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이유도 있고, 과학기술 울타리에 갇혀 미래 대비를 못하기도 했고, 또한 과학기술 관료들의 능력 부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 관료들의 본분의 역할에 대해 지적한다.

그동안 과학기술 관료들은 국가적으로 거시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들여다 봐야 할 과학기술계를 너무 근시안적으로 접근했다는 평이 많다. 국가적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데 보다는 연구과제 단위의 관리나 평가활동에 중점을 두고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미래부로 개편되면서 오히려 '큰 것은 안보고 세세한 것만 관심갖는' 이같은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도 비일비재하다. 겉으로는 연구기관에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수탁과제를 넘어 연구소 고유 연구과제까지 간섭을 하고 있는 형국. 한마디로 연구자들을 쥐어 짜는데에 비중이 있지, 대국적 관점에서 대내외 협업이나 전략을 세워 과학계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데는 실패해 왔다는 비판이 높다. 이렇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간섭만 하는 과기부가 과연 존재가치가 있느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역량의 문제도 있다. 미래부가 과학기술의 다양한 투자 분야에 대해 국가가 중점적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해서 기재부와 협상하고 예산을 따내야 하는데 그런 힘이 없어 현장에서는 안타까울 때가 적지 않다. 자기 예산 분야만 챙기면 만족하는 상황. 그러면서 연구기관에 대한 관리 권한을 내려놓지 않는 구조적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본래 과학기술 부처는 19674월 출범해 1998년까지 30년 넘게 과학기술처였다. 객관적으로 처 출신 관료들의 직무역량이 기재부나 산자부에 비해 낮았다는 평가다. 과학기술 관료들은 기본적 역량이 떨어지는데다가 예산권에 관해서는 전투력이 없다는게 현장의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강력한 과학기술 부흥 의지를 갖고 움직였던 과거 시절은 과학기술 관료들에게 이미 오랜 향수가 돼버렸다. 오롯이 대통령의 의지에 의해 불임 부처 오명을 씻을 수도 있는 문제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는 형국은 아니다.

1998년 과학기술부로 승격하고, 노무현 정권 때 과학기술부총리제가 출범하면서 한 때 우수 관료들이 수혈되는 듯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역대 정권에서 과학기술 부처가 비중있는 부처로 인식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부총리 시절처럼 잘 나갈 때 제대로 된 과학기술 부처로 장기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야 과학기술 관료들 사이에서는 안일하게 움직여 기회를 놓쳤다는 자성이 나온다. 결국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하지 못해 남에 의해 변화를 강요당한 꼴이 됐다고 자조하고 있다.

일부 과학기술 관료끼리도 '우리는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름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학력과 엘리트들인데 국가의 방향이나 전략을 생각하지 못하고 위에서 시키는 것만 실행하는 작금의 현실을 두고 스스로 내뱉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경쟁력 갖나"연구현장과의 호흡부터"

'불임 부처'라는 오명은 과학기술 관료들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어서 더 심각하다. 연구현장의 분위기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전문성과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과학기술 정책이 더 갈피를 못잡게 될까봐 불안한 모습이 현장 과학자들에게 엿보인다.

현장에서는 과학기술 관료들의 역할에 대해 "하루빨리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기 위해 현장과 호흡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보다 더 연구과제 관리를 디테일하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탁상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는게 아니라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만의 국가적 전략과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까지 과학계에 투자한 돈은 많은데 성과가 저조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 관료들이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하는 과업도 시급하다. 또 정례 행사처럼 장차관이 연구현장 간담회를 하곤 하는데 그도 좋지만, 과학기술 실무 관료들이 과제관리 수준을 넘어 연구자들이 이야기 하는 실질적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을 수렴하는 등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 적지 않다.

특히 국가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부처가 왜 중요하고 과학기술 관료들이 왜 전문성을 갖추고 업무에 임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철저하게 수립해야 한다. 과학기술을 왜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면서 진정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해내야 한다.

과학계가 환골탈태해야 하는 시점이다. 과학계가 함께 배우고 쇄신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과학기술 관료들도 세계 동향을 익히고 과학외교 전략을 튼실하게 정립하는 것도 꼭 실현해야 할 방향타다.

과학기술 관료들이 현장과 호흡하면서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고, 역할을 다하면 불임 부처라는 오명은 조만간 말끔히 씻겨나갈 것이다. 국가와 과학기술계를 위해 과학기술 관료들의 멋진 위기대응 능력을 기대하고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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