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혁신 시스템 마련에 장관 도와 총력"
기재부 경험 살려 과학계 활성화에 혼신의 힘 다짐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후임 인사가 지난 25일 단행됐다. 이날 인사에서 가장 이례적이고 과학기술계에서도 의외로 받아들인 대목이 미래창조부 제1차관에 이석준 전 기재부 2차관이 임명된 것.

기재부 2차관 당시 이석준 미래부 1차관. <사진=기재부>
기재부 2차관 당시 이석준 미래부 1차관. <사진=기재부>
산업부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다른 부처는 다 해당부서 출신이 차관으로 임명됐는데 미래부는 기재부 출신이 발탁된 것. 과기계에서는 동종분야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거부 반응을 보였고, 일각에서는 기재부 출신이 대거 차관 및 차관급으로 낙점되며 모피아의 낙하산이 더 넓게 펼쳐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과학계의 궁금증이 커지고 여러 반응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석준 차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일요일 전화 통화에서 이 차관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과학기술혁신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생각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과학계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과학계와의 인연에 대해서는 "업무적으로 예산실과 정책조정 관리관 등으로 근무하며 R&D사업과 출연연 평가 등에 있어 관여한 경험이 있다"고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아직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 만큼 과기계 원로 등으로부터 두루 듣고 배우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임명 배경에 대해 "미래 성장동력이 안보이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고,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이 과학기술계 혁신"이라며 "창조경제가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일인데 이를 제대로 하라고 임명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 차관은 최양희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 "임명된 이후 계속 말씀을 나누고 있다"며 "최 장관이 갖고 계신 뜻을 제대로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앞장서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숲길을 헤쳐나가는 역할을 하겠다"고 궂은 일을 자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래창조부의 업무와 관련해서는 "미래부가 다른 부서와 협력할 일이 많은데 비해 경험이 부족한 듯하다"며 "기재부에서의 업무 경험을 활용해 의견을 조정하고 도움되도록 하겠다"고 기존의 과학관련 출신 관료에 비해 보다 폭넓게 움직일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과학기술 혁신이 비즈니스 혁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취약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과학계 원로와 현장 과학자, 기업인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과학기술이 국가 혁신의 견인차가 되도록 하는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0여년의 공무원 생활 가운데 가장 뼈에 깊이 새겨진 일이 과장 때인 1997년의 외환위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재정적으로 '나라가 망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사회와 기업, 개인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이 지금의 공무원 생활에서도 중요한 지침이 돼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미리 대처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기재부 제 2차관에 이어 미래창조부 차관이 된 것을 공무원 인생의 '덤'으로 생각해 마지막 공무원 생활로 생각하고 전력투구하겠다"며 "지금 과학계 일부에서 걱정이 있으신데 임무가 끝난 다음에는 과학기술인 명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

청와대는 임명과 관련한 자료에서 이석준 차관에 대해 "예산 재정 금융 관련 다양한 정책 경험을 갖고 있고 정책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뛰어나고 대외 정책조정능력을 갖추어 창조경제의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적임으로 기대해 발탁했다"고 밝힌바 있다.

현장 반응?"창조경제 탄력" vs "지나친 단기성과 치중 안돼"

"기재부 차관 출신이기에 아무래도 거시적 안목에서 창조경제 정책을 실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학벨트처럼 국가적 R&D예산 문제도 슬기롭게 풀 적임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장기적 안목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단기성과나 효율성 위주로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할까봐 우려된다."

신임 이석준 미래부 1차관에 대한 연구현장에서의 평가는 '모 아니면 도'식이다. 현장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수퍼갑 차관으로 통하는 기재부 2차관 출신이기 때문에 과학계의 숙원이나 시급한 과제들의 해결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경제적 논리나 효율 잣대로 과학계를 단기 성과 중심으로 이끌까봐 우려하는 반응으로 갈리는 모양새다.

한 출연연 단장급 중진인사는 "미래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그는 "미래부 차관이 반드시 과학기술인이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과학기술이 갖는 중요성과 현장을 잘 이해한다면 더욱 활발한 연구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과학자들의 특성 중 하나가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만 박사란 점"이라며 "핵심 부처에서 역할을 한 만큼 타부처나 다른 분야와의 관계에 있어 과학기술계의 입장에 힘을 실을 수 있길 바란다. 그 부분을 가장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덕의 한 기업 CEO"창조경제는 과학과 경제의 결합으로 완성될 수 있는 만큼, 그동안 기술사업화 등에서 성과가 미흡했다고 판단된 것이 이번 인사를 통해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한다"고 해석했다.

기대가 큰 반면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 과기특성화대 교수는 "우선 잘 모르는 인사라 기대나 평가가 어렵다"면서도 "장관과 2차관이 ICT 전문가인 상황에서 1차관마저 경제·정책 전문가가 왔다는 점에서 기초과학 분야가 홀대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출연연 한 연구원은 "과학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공무원 자리돌리기식 인사"라고 못박고 "예산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과연 얼마나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현장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 과학자는 "과학기술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투자와 계획 수립보다 현 정부 임기 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우려했다

출연연 한 인사는 "최근 세월호 사고 등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가 육성이 화두가 된 시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범정부차원에서 보는 시각은 장점이 있겠으나 장기적 시각과 가치관이 중요한 과기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추진을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런 가운데 연구현장에 대대적인 쇄신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관측하는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과학계와 별로 연관이 없는 이 차관이 출연연에 본격적인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차관은 출연연 평가 경험이 있고, 공공기관 평가툴 개발에도 참여해 왔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는 출연연의 구조적인 변화의 실마리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과학기술 선진국이나 우리의 50년 근대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되었듯 과학기술 정책은 중장기적 안목으로 추진돼야 한다"라며 "기재부 출신이든 과기부 출신이든 중요한 것은 연구현장과 제대로 소통하며 국가적 비전과 희망이 담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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