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방향 재해재난에 초점 맞추고 소통 강화
정부, 재해·재난 예산 늘리고…과기계, 자발적인 참여로 의식 변화

팽목항 곳곳에 걸린 기적을 바라는 리본들<사진=대덕넷 자료>
팽목항 곳곳에 걸린 기적을 바라는 리본들<사진=대덕넷 자료>
세월호 참사 100일째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을 감시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각종 기구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학기술계는 이번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의 안전과 국민행복지수 향상을 위한 역할에 보다 집중하는 등 안전한 사회를 향한 연구개발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내년 예산안부터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사회재난과 자연재해예산을 각각 합산해 따로 관리하기로 했다.

세월후 사고 이후 기재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재난관리 예산은 9684억원으로 1조원이 안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재난·재해 예산을 모두 합칠 경우 약 3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올해 총예산(355조8000억원)의 1%를 넘는 규모다.
 
당초 정부는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재난 관리 예산을 연평균 4.9%씩 줄여, 2017년까지 8040억원으로 감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재난·재해 대응에 대한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관련 예산을 늘리고 지원을 확대키로 한것.

또 재난대응시스템 구축, 재난대응 교육·훈련, 새로운 재난대응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과 장비 투자 등에도 지원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관련 예산은 내년부터 반영될 전망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마련한 '창조경제 추진현황 및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재난재해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내년부터 대폭 늘리기로 했다. 그동안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아 예산이 크지 않았던 것에 비해 앞으로 중요도를 높이고 예산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상목 미래부 차관이 이같은 계획을 엔지니어클럽 주관 '과학기술산업 포럼'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차관은 "재해재난 관련 육상, 해상교통 등은 패턴이 존재한다"면서 "사고유형이 전형화 돼 있어 우리가(과학기술) 사전 예측하고 예고하는 등 문제를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음에도 그간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고 말하며 대응 기술 개발을 강조했다.

◆국가적 재난·재해에 적극 나서는 등 변화…다양한 의견 제시

과기계 현장에서는 안전과 국민행복을 키워드로 한 포럼과 토론회를 열고 의식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과기계 내부의 자성과 함께 역할 강화의 목소리도 높이며 이번 참사와 같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본지에서 짧은 시간에 실시한 '긴급설문 조사'에도 100명 이상의 과학기술인들이 설문에 적극 참여하며 재난·재해시 과학기술인의 역할과 필요한 과학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개진했다. 그동안 국가적 재난과 재해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던 과학기술계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설문 참여한 한 과학자는 해양 사고는 해양관련 연구원에서 안전대응 기술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인명구조 대응책을 세우게 해야 한다며 관련기술 개발 시에는 로봇기술, 항공기술, IT 기술 등 필요한 기술을 가진 해당 출연연과 연계해 중대형 과제로 현장 적용이 가능한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또 다른 설문 참여자는 "각 분야 관련 과학기술인의 인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국가재난 시 신속하고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가도 관련 과학기술인에게 자료를 신속하게 송부해서 정확한 아이디어를 구하고 재난에 조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시한 과학자도 있다. 무인 로봇의 탐색과 구조활동에 대한 자문을 하고 산소공급 방안을 즉시 해결해 파도에 구애받지 않고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 줘야 한다 것.

비행기처럼 선박 비상 탈출장치 설치를 비롯해 전복 시 탈출과 진입을 위한 비상구 설치, 선박 침수 시 순간적으로 대량의 공기를 생성시키는 기술, 에어포켓이 자동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하는 밀폐기술 등 다양한 연구개발 제안도 나왔다. 

◆과기계 현장의 목소리…각종 포럼과 세미나 통해 솔선수범 안전 문화 확산

'제47회 과학의 날·제59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이부섭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장은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과학기술인들이 솔선수범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 참석한 과학자들의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은 STEPI '안전 한국을 위한 과기역할과 과제'포럼에서 재난재해에 있어서 과기계의 역할로 ▲과학기술의 쉬운 구현성 ▲빅데이터 활용▲ 인문사회와의 연계 필요성 ▲개방형연구와 정보관리 중요성 등을 꼽았다.

그는 재난재해 상황이 평범한 일상이 아닌 생존과 결부된 극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만큼 기술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현장에서 점검하고 사용자 참여를 통한 필요기술 개발과 실증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문일 연세대 교수는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사고를 대처하는 방법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엔 자연적인 현상으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다가, 나중엔 사고를 예측하고 미리 바꾸게된다. 그 다음은 나 스스로 안전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인데, 법으로 강압적으로 안전을 강요 하는 것은 후진국 스타일이다.

문 교수는 "우리 스스로 우리 팀이 안전을 생각하는 것이 선진국형이다. 선진국형 안전문화 자리를 잡아야한다.세월호 사고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 현장이 다 긴장 중이다. 하지만 긴장은 풀리기 마련. 시스템적으로 변화가 있어야한다. 특히 안전문화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안전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강조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본지에서 주관한 좌담회에 참석한 과학자 대부분도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서야 함을 주장했다.

진항교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안전연구평가센터장은 "재난 사고의 수습을 총괄하는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더 나아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까지 재난 상황에 대비한 법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정작 과학기술계를 총괄하고 있는 미래부는 연구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며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 가서 협력할 수 있는 것이 없겠느냐고 물어야 한다. 공무원들은 현업에 바빠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눈길을 돌리기 힘들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비관할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지금도 '국민들의 안전'을 정치권에서만 소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도력을 탓하기 전에 과학기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닥쳐올 재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화두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과학기술계가 시스템적으로 재난을 해결할 수 있구나'라는 아젠다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적으로만 소모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민들의 안전을 대변해 규제-제도개혁, 상시-비상시 점검에 있어서 과학기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사회안전시스템 운영체계가 과학적으로 어떤 개선점이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적 입장을 이 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김병진 쎄트렉아이 공동대표는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각 기관의 현실 역시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여수 기름 유출 당시 고해상도 영상을 재난안전연구원에 제공하려고 했지만, 국내법상 보안처리없이 영상을 제공할 수없어서 4m 영상보다 화질이 떨어지는 것을 줄 수 밖에 없었다"며 "적어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여전히 실종자로 남은 10명의 발굴을 위해 최근 전자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자코란 단백질 등 물질이 부패할 때 생기는 인 등 냄새유발 인자를 그래프로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분석결과가 표층수와 다른 것은 바닷물이 아닌 다른 요인이 냄새에 섞여 있다는 의미다. 음식물 등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실종자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지 24일로 꼭 100일이다. 곳곳에서 관련 모임으로 사고를 기억하며 안전 문화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그러나 희생자 10명이 여전히 실종상태로 가족들의 슬픔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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