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환 ETRI 박사 "獨 산업계 힘은 프라운호퍼…배경을 배워라"
"연구자율 협정 전제조건은 출연연 뼈를 깍는 각성부터"
연구성과 70% 사업화 비결은?…"자율·경쟁·유연성"

22일 본지 회의실에서 조영환 ETRI박사의 강연이 열렸다. 그는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해곤 기자>
22일 본지 회의실에서 조영환 ETRI박사의 강연이 열렸다. 그는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해곤 기자>

7월 들어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공식출범하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교체되면서 제2기 창조경제를 이끌 과학팀이 꾸려졌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정책을 챙기고, 통합연구회는 출연연 역할을 정립하고 비전 제시를 담당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벤치마킹 모델로 삼은 독일 연구시스템을 외관만 옮겨올 것이 아니라 그 과정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통합연구회와 출연연을 믿고 5년간 믿어주는 신사협정을 맺자는 제안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영환 ETRI 박사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과 관련해 기초기술과 산업기술을 구분해 운영하는 독일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면서도 "연구회가 통합되면서 운영방식으로는 프라운호퍼를 배워야 한다. 모양만을 베낄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창조경제 성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독일의 이면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라운호퍼는 산출된 연구성과의 70%가 산업화로 연결된다. 2012년 기준으로 독일 기업들이 발표한 700여 개 신제품 중 70%에 프라운호퍼 기술이 쓰였다. 이 연구소에서 스핀오프된 기업의 성공률이 무려 90%에 육박한다.

표면적으로는 출연연의 중소기업 지원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현 정부의 창조경제 구호와 일치한다. 하지만 우리 출연연은 기술사업화가 저조한 것이 현실이다.

◆"기술사업화는 억지…기업에 필요한 연구 생태계로 변화해야"

조영환 박사는 그 차이를 운영체계에서 찾았다. 프라운호퍼의 미션은 '공공·기업·사회를 위한 혁신적 연구'다. 공공과 사회적 서비스를 수행한다는데 대한 연구원들의 자긍심도 높지만, 기업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조영환 ETRI 박사. <사진=이해곤 기자>
조영환 ETRI 박사. <사진=이해곤 기자>

조 박사는 "기업으로부터 1원의 과제를 수탁받아 오면 정부가 1원을 지원하는 식이다. 2012년 기준 예산이 2조2000억원이었지만 기업에서 30%의 예산을 조달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25대 55'라는 법칙이 존재한다. 기업 수탁과제를 중시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원들이 이에 집중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 연구를 55%로 제한한 규정이다. 25는 공공을 위한 연구를 25% 이상 수행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정부의 창조경제를 출연연 성과 사업화로 연결시키는 시각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하이나크법을 선언하면서 연구소에 자율을 줬고, 기업 과제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덕에 성과의 70% 사업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업의 연구역량이 강화된 이후, 상호 단절된 채 지내다 보니 출연연에서 생산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또다른 생존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자성이자 지적이다. 또 기업 측면에서도 일정 비용을 지불할 때 기술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기관 법인격 통합하면 융합 저절로 될 것…출연연 뼈 깎는 쇄신 노력도 필요"

또 하나는 연구를 대하는 정책집단의 철학의 차이다.

프라운호퍼 역시 미션에 정해진대로 정부 과제도 수행한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 정도지만 산하 연구조직들의 컨소시엄과 경쟁을 통해 수주한다.

조영환 박사는 독일의 하르나크법을 소개하며 "독일 정부는 연구에 대해 베이스펀딩만 제공할 뿐, 연구기관의 자율과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면서 "자율성이 보장되는 만큼 연구과제나 이슈에 따라 연구조직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라운호퍼 산하 연구조직은 법인격이 없다. 때문에 매년 프라운하퍼 조직도에 표기된 연구기관의 수가 65~67개로 유동적이란 설명이다.

하아니크법은 프라운호퍼 헤드쿼터를 관리감독하는 감독이사회에도 적용된다. 28명의 이사 중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당연직 7석과 원로급 연구원 3명은 반드시 포함된다. 나머지는 최대한 연구조직에 부여된다.

이런 배경이 연구원들의 과제 수탁 관행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7월 출범한 통합연구회의 경우, 이사회를 20명 선으로 구성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확정된 10명은 당연직 정부관료 5명, 교수 3명, 산업계 2명 등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없다.

조 박사는 독일을 벤치마킹 하면서 시스템뿐만 아니라 과정과 철학도 함께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해곤 기자>
조 박사는 독일을 벤치마킹 하면서 시스템뿐만 아니라 과정과 철학도 함께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해곤 기자>

조 박사는 "독일은 정부가 프라운호퍼 헤드쿼터에 관리권 등을 일임한 만큼 연구원들이 예산을 위해 담당 공무원을 만날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원들이 담당부처 공무원을 만나 직접 과제를 수탁한다"면서 "또 담당공무원은 성공률 95% 이상의 과제만을 요구한다.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 박사는 끝으로 올바른 연구시스템 마련을 위해 출연연이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연구를 위해서는 예산의 정부 의존성, 인력구조 등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통합연구회 발족 이후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평가 개선이다. 기초연구에 대한 평가, 산업기술에 대한 평가를 달리 보자. 기술사업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출연연이 기업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탁하게 하고 평가도 기업에 맡겨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박사는 "통합연구회 출범을 계기로 5년간 신사협정을 맺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이 관리와 평가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상호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과학기술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과학자들을 믿고 맡겨달라는 당부다. 더불어 출연연도 이런 믿음에 화답하기 위한 내부 자정능력을 기르고 성과 도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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