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S, 국내 최고 '스핀들' 기술로 세계시장에 당당히 도전장
잘나가던 은행원서 실직…재취업한 회사는 재정난으로 부도
기술·직원이 가장 큰 자산…"기술지원 도와준 기계연에 감사"

정밀공작기계의 필수부품인 '스핀들'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대덕벤처 RPS 내부 모습. <사진=김형석 기자>
정밀공작기계의 필수부품인 '스핀들'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대덕벤처 RPS 내부 모습. <사진=김형석 기자>

이동헌 알피에스(RPS) 대표는 회의실 불을 켰다. 얼마 전 완공된 만큼 회사 건물도, 회의실도 모두 새 것으로 반짝거렸다. 하지만 가장 반짝거리는 것은 이 대표의 눈빛이었다.

"여기를 꼭 보여주고 싶어요. 남들이 보면 그런저런 회의실이겠지만 저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번듯한 회의실 하나 갖는 게 꿈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연구진과 마케팅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모습을 늘 그려보곤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회의실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런 회의실 하나 갖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희망

RPS는 지난 5월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자리를 옮겨 유성구 신성지구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2005년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만에 '번듯한' 사옥을 갖게 된 것이다. 이 대표에게 지난 10년은 긴 터널과도 같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제 터널 출구는 찾은 셈이다. 실직과 부도의 아픔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 대표에게 신사옥은 단순히 '건물' 이상이다.

"아직 자만해서는 안되구요. 사업 다각화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스핀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처음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새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새로운 회사건물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과 저를 믿고 따라와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신발끈을 조여야죠."

RPS가 생산하는 각종 스핀들 제품(사진 위)과 신성지구로 이전한 사옥에 마련된 회의실. 이동헌 대표는 "이런 회의실 하나 갖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RPS가 생산하는 각종 스핀들 제품(사진 위)과 신성지구로 이전한 사옥에 마련된 회의실. 이동헌 대표는 "이런 회의실 하나 갖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RPS는 스핀들 전문 제조회사다. 에어베어링 스핀들, 볼베어링 스핀들, 웨이퍼 고정용 세라믹진공척 등을 개발·생산한다. 에어베어링 스핀들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자랑한다. 에어베어링 스핀들은 압축공기에 의해 회전축이 부상하는 기술을 응용했다. 비접촉 상태에서 회전축이 구동되는 만큼 마찰에 따른 발열이 없고, 진동이나 소음이 적은 상태에서 고속회전이 가능하다.

특히 RPS는 세계 최초로 강화유리 가공전용 에어베어링 스핀들을 개발·양산하는데 성공했다. 이 스핀들은 현재 스마트폰 터치패널을 생산하는 기기에 사용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RPM의 매출액도 급성장했다.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70억원. 올해도 상반기에만 이미 5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올해 연간 매출 100억원 목표 달성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역경

이처럼 매출액도 오르고, 신사옥으로 이전도 했지만 한 때 이 대표의 삶과 사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은행에 취직해 나름대로 순탄한 삶을 살던 그에게 IMF는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당시 많은 금융권이 그랬듯 이 대표가 몸담고 있던 은행도 파산하고 이 대표는 실직했다. 당시 첫 아이가 막 두 돌을 넘겼을 때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2000년 스핀들 업체의 관리실무자로 취업했지만 2005년 이 회사마저 부도로 문을 닫았다.

"실직에, 부도에 이대로 주저앉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막다른 골목에 섰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남아있던 직원 8명에게 제안을 했죠. 우리끼리 한 번 해보자고."

이동헌 RPS 대표. 잘나가던 은행원에서 하루 아침에 실직자로 전락하고 재취업한 회사가 부도도 났지만 이제는 관련 분야에서의 최고 기업을 꿈꾸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이동헌 RPS 대표. 잘나가던 은행원에서 하루 아침에 실직자로 전락하고 재취업한 회사가 부도도 났지만 이제는 관련 분야에서의 최고 기업을 꿈꾸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이 대표가 믿을 것은 당시 부도난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 그리고 이 대표를 믿고 남아준 8명의 직원 뿐이었다. 하지만 기존 회사의 기술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변변한 매출도 없던 시절, 이스라엘이나 대만 등 해외로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 본인이 직접 가기도 했고 기술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확보한 기술이 에어베어링 스핀들.

하지만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했던가. 2008년부터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금융위기가 또 한 번 이 대표와 RPS를 흔들었다. 실직과 부도에 이어 또 한 번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에어베어링 스핀들을 갖고 있었지만 이것을 필요로 하는데가 없었던 겁니다. 답답했죠."

◆기회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유럽의 한 휴대폰 제조회사가 국내의 한 업체에 부품가공을 맡겼는데 납기일을 어긴 것이다. RPS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혹시 휴대폰을 가공하는데 쓸 수 있는 스핀들을 만들어줄 수 있겠냐고. 직원들과 밤낮없이 매달린 결과 한 달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해당 기업은 대만족을 표했다. 종전에 비해 가격은 낮아지고 성능은 우수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이 이동했다. 드디어 RPS의 에어베어링 스핀들 기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가장 먼저 시장이 열린 곳은 중국이었다. 2010년 한 해에만 중국과 10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결과 RPS는 설립 5년 만에 '1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한다.

특히 에어베어링 스핀들 분야는 국내에서 여러 기업이 개발과 상품화를 시도했지만 RPS만이 유일하게 해외 경쟁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협력업체가 되려면 까다로운 품질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하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에서 RPS의 스핀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할 정도다. 중국에서는 RPS의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한 '짝퉁 스핀들'이 나올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처럼 RPS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연구개발(R&D)에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이 대표는 자평하고 있다. 실제 RPS는 회사 설립 후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2008년 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매년 매출액의 10% 정도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또 해당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고급 연구인력이 포진하고 있다.

RPS의 각종 첨단 장비들. <사진=김형석 기자>
RPS의 각종 첨단 장비들. <사진=김형석 기자>

한국기계연구원 패밀리기업에 가입한 것도 RPS가 튼튼한 기술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 됐다. 이 대표는 어려울 때마다 자기 일처럼 팔을 걷고 도와주는 기계연과 소속 연구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언젠가 선거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객 업체로부터 우리가 납품한 제품에 대해 크레임이 들어왔는데 원인을 못찾겠는거에요. 염치불구하고 저희 업체의 테크노닥터를 맡고 있는 기계연 박사님께 전화를 했죠.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고 불량을 해결했습니다."

◆도전

'아무리 힘들어도 직원들을 굶기지는 말자.' 실직과 부도의 아픔을 딛고 이 자리까지 온 이 대표의 경영철학에는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월급을 제대로 주자는 소극적인 뜻이 아니다. 회사의 성장동력이 어려웠던 고비마다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직원 복지나 수익 분배에 무엇보다 신경을 쓴다. 그래서 성과급도 분기별로 준다. 한 번 맺은 인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실직도 해보고 다니던 회사의 부도도 겪어보니 알겠더군요. 회사가 단순히 일하고 월급받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크든 작든 회사에서 나와 길거리에 나오는 순간의 절망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몰라요. 이런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회사 구석구석을 보여주던 이 대표는 회사 옥상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40여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아담한' 식당이 카페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소규모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식당까지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의 특성상 야근과 밤샘작업이 많은 직원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무리'를 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직원들을 굶기지 않겠다'는 이 대표의 경영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언제 시간되시면 여기와서 점심식사 같이하시죠. 많은 분량이 아니다보니 음식맛이 아주 좋습니다."

RPS는 매년 국내로 가던 전직원 워크숍을 2년 전부터 동남아시아로 가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유럽이나 미주 등 더 먼 곳으로 전직원 워크숍을 떠날 수 있는 날을 그린다. 자신을 믿어준, 그리고 자신이 믿는 직원들과 함께 강소기업으로 향한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RPS는 최근 대덕구 대화동에서 유성구 신성지구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 건물 옥상에는 구내식당과 직원들을 위한 휴게시설도 마련했다.
RPS는 최근 대덕구 대화동에서 유성구 신성지구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 건물 옥상에는 구내식당과 직원들을 위한 휴게시설도 마련했다.

RPS는 최근 대덕구 대화동에서 유성구 신성지구 신사옥으로 옮겼다. 건물 옥상에는 직원들을 위한 구내식당과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RPS는 최근 대덕구 대화동에서 유성구 신성지구 신사옥으로 옮겼다. 건물 옥상에는 직원들을 위한 구내식당과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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