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 선재 전문회사 KAT "초전도체가 구리 대체하는 세상을 꿈꾼다"
핵융합장치 KSTAR와 시작…기술없이 도전 이젠 ITER국가들 무한신뢰

초전도 선재 전문 벤처기업 KAT의 생산현장 모습. 기술보안 문제로 사진촬영은 일부 모습만 허락됐다. <사진=김형석 기자>
초전도 선재 전문 벤처기업 KAT의 생산현장 모습. 기술보안 문제로 사진촬영은 일부 모습만 허락됐다. <사진=김형석 기자>

"지금 사용되고 있는 구리선이 모두 초전도 선재로 바뀌는 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꿈이라구요?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도 모두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초전도 선재 전문 벤처기업 '케이에이티(KAT)' 한상덕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담담하게 말했다.

전도체인 구리를 초전도체로 대체한다고? 초전도는 온도를 극저온(-270℃)으로 감소시킬 때 전기저항이 제로(0)에 가까워진다. 쉽게 말해 -270℃의 환경이 아니라 상온에서도 전기저항이 0에 가까워져야 구리를 대체할 수 있다. 한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이제 겨우 실험실에서만 -200℃ 정도를 돌파했을 뿐이다.

전도체인 구리를 초전도체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 지금으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난 2004년 설립해 10년 동안 '초전도 선재'라는 한 우물을 판 대덕벤처 KAT는 지금 기적을 꿈꾸고 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그 기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 뿐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없었다

KAT는 남들과 다른 길을 밟았다. 보통은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낸다. 창조경제 시대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기술사업화나 기술창업도 이런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술 지원도 해당 기업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를 자문하고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초전도 선재 원자재. <사진=김형석 기자>
초전도 선재 원자재. <사진=김형석 기자>

초전도 선재 제조 모습. <사진=김형석 기자>
초전도 선재 제조 모습. <사진=김형석 기자>
 하지만 KAT는 아예 기술이 없었다. 물론 선재 기술은 있었지만 첨단기술이 융합된 초전도 선재와는 다르다. 회사를 설립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제품 개발에 성공할 지, 성공하더라도 시장에서 통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하는 사업이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 구축사업이 한창이었다. 여기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자재가 초전도 선재였는데 당시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해외에서 사온 선재에 크롬 도금을 해 사용하는 수준. 핵융합연과 당시 이 일을 맡던 고려제강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초전도 선재 기술의 자립화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KAT다. 당시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는 초전도 선재 전문회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사 기술진과 핵융합연 연구진이 매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반복됐죠. 우리 기술진을 믿었습니다. 제가 할 일이라고는 기술진이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일뿐이었죠."

경영학을 전공한 한 대표는 '기술에는 문외한'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다. 하지만 기술진들과 함께 밤을 새우고, 매일 토론하면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초전도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그렇지만 지금도 기술적인 문제는 철저하게 기술자와 연구자에게 맡긴다. "제가 아무리 관심이 높고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아졌더어도 전문가들보다 더 많이 알 수는 없으니까요."

초전도 선재의 생명은 균질성. 그런 만큼 수없이 많은 공정과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사진=김형석 기자>
초전도 선재의 생명은 균질성. 그런 만큼 수없이 많은 공정과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사진=김형석 기자>

완성된 초전도 선재 제품. <사진=김형석 기자>
완성된 초전도 선재 제품. <사진=김형석 기자>

◆지금도 없다

KAT는 최근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이 조달하고 있는 37억원 규모의 TF도체 제조·납품을 수주했다. 핵융합실험로 TF도체는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밀폐하고 평형을 유지하는 초전도 자석 제작을 위한 핵심부품이다. 당초 일본 도시바가 전량 납품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수주 물량의 일부를 KAT에 맡겼다.

이처럼 KAT는 ITER 사업에서 핵심적인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문제가 생기면 '한국의 KAT라는 회사가 있으니 맡겨보라'는 얘기를 회원국들이 공공연히 할 정도다. '아무도 안하던 분야'에 뛰어들어 10년 만에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인공태양' 분야에서 KAT의 기술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ITER에 들어가는 초전도 선재 가운데 한국에서 맡은 조달분량 93톤의 납품을 지난해 말 완료했다. ITER는 규모와 기간의 특성상 회원국에서 분담해 조달하는데 초전도 선재 납품을 완료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제품의 완성도가 높고 불량률이 적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신반의하던 회원국들도 이제는 '한국이라면 믿는다'며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ITER에는 여러가지 부품이나 자재를 국가별로 분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제품에 대한 검사 기준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그 잣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반품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맡은 분량을 다른 나라보다 먼저 납품 완료했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다른 나라의 기술력이 낮다기 보다는 우리의 기술력이 그들을 앞질렀다는 얘기죠."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들었고, 이제 관련 분야에서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정상급에 올라섰다. KAT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히든챔피언'을 향해 오늘도 한걸음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없다

기술진들의 작업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한상덕 대표. <사진=김형석 기자>
기술진들의 작업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한상덕 대표. <사진=김형석 기자>
한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생산현장에 들어서자 기술진보다 많은 첨단기계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계와 기술진이 거의 동수.

현장 안내를 맡은 홍진철 팀장은 "초전도 선재라는 것이 워낙 까다로운 제품이라 거쳐야 하는 공정이 많다"며 "해당 공정마다 필요한 첨단기계를 설치하다보니 기계와 기술진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기술개발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을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초전도 선재는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 강력한 자기장을 만드는 핵융합 장치의 핵심부품인 초전도 자석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된다. 정밀한 제조공정과 까다로운 품질 관리 때문에 초전도 선재를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10곳 안팎에 불과하다.

얼마나 가늘고 길게 만드냐가 관건이다. KAT는 0.8mm 이하의 초전도 선재를 18km 이상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또 하나는 균질성. -270℃에서 3만 암페어의 엄청난 전류가 흐르게 되는데 초전도 선재가 조금이라도 균질하지 않으면 초전도가 유지되지 않는다.

생산현장 촬영은 극도로 제한됐다. 홍 팀장은 "최근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공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며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공정을 거쳐야 우리같은 제품이 나오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기술력이 생명인 만큼 기술유출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공장을 둘러보다 한 대표를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최근 KAT가 신시장 개척분야로 주력하고 있는 MRI 마그넷 제조 장면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기술자문을 위해 바다를 건너 온 해외 연구진과 KAT 기술진이 MRI 마그넷을 둘러싸고 실험을 반복하며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대표는 앞으로도 KAT가 잘 할 수 있는, KAT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래서 도전장을 던진 분야가 MRI 마그넷이다.

"10년 동안 출연연과 함께 초전도 선재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해 왔고, 또 어느 정도는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이 사회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회사의 수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차세대 먹거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핵융합 분야 만큼이나 먼 미래를 봐야 하는 투자지만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KAT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어야죠."

KAT의 생명은 끊임없는 R&D와 기술투자에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KAT의 생명은 끊임없는 R&D와 기술투자에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홍진철 팀장이 초전도 선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홍진철 팀장이 초전도 선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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