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수·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갑자기 아내와 둘만의 거제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숙소의 베란다에서 보이는 저녁 녘 바다가 아름다웠다. Pentax K-3, 92.5 mm with 70-200 mm macro, 1/25 s, F/5.6, ISO 100.
갑자기 아내와 둘만의 거제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숙소의 베란다에서 보이는 저녁 녘 바다가 아름다웠다. Pentax K-3, 92.5 mm with 70-200 mm macro, 1/25 s, F/5.6, ISO 100.

얼마 전 큰 딸의 시댁에 혼사가 있어 거제도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그런데 아내는 오래 전부터 걱정이었다. 아직 어린 외손녀를 데리고 왕복 6시간 가량의 버스 여행을 하자니 자신이 없고, 또 우리 차를 타고 가자니 내가 하루에 그만큼 운전하는 것 역시 무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 엄마인 둘째 딸에게 대전 집에 와서 애를 좀 보라고 했더니 아이가 워낙 외할머니의 껌 딱지인지라 하루 종일 애를 보는 일이 겁이 났던 모양인지 아예 1박 2일의 함께 가는 여행을 제안하였다. 그렇게 해서 내가 운전을 하고 아내와 외손녀 그리고 둘째 딸이 함께 가는 1박 2일의 여행이 결정되었다. 둘째 딸은 그동안 엄마가 힘들었다고 하루지만 좀 편히 쉴 바다 전망이 좋은 펜션을 물색하여 예약해 두었다고 하였다.

밤에는 벽에 설치된 대형 TV 화면으로 극장에서 현재 상영중인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하였다. 아내가 고른 영화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쉼을 누리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주인공의 일탈은 더 의미 있게 다가와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Pentax K-3, 70 mm with 70-200 mm macro, 1/30 s, F/4.5, ISO 400.
밤에는 벽에 설치된 대형 TV 화면으로 극장에서 현재 상영중인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하였다. 아내가 고른 영화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쉼을 누리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주인공의 일탈은 더 의미 있게 다가와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Pentax K-3, 70 mm with 70-200 mm macro, 1/30 s, F/4.5, ISO 400.

결혼식이 있던 날 아침, 이것 저것 부산하게 아이의 짐을 챙기면서 아내가 외손녀에게 장난 삼아 물어보았다. "서빈아, 오늘 멀리 가야 하는데 엄마 따라 기차 타고 서울에 가서 엄마 아빠랑 놀다 하루만 자고서 내일 내려오면 안될까?" 사실 같은 질문을 며칠 전부터 해보았지만 아이는 아니라고 확실히 대답해왔기 때문에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갑자기 선선히 그러겠다는 것이었다. 몇 번을 '할머니와 떨어져 자고 오는 것'임을 주지 시켰으나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아내와 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예쁘게 인사하는 외손녀와 둘째 딸을 두고 우리는 먼저 출발하였다. 대전에서 통영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차도 별로 많지 않고 아직 더위에 지치지 않은 싱그러운 신록들로 뒤덮인 산들이 가는 길 양 쪽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남쪽으로 가면서 길가에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는 모감주나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한참을 달리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잘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나누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 외손녀를 엄마 아빠에게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과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단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뜨고 보니 새벽 4가 조금 지났다. 외손녀를 데리고 서울로 간 둘째 딸의 전화였다. 창 밖을 보니 벌써 새벽 하늘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새벽 별과 등대의 불빛이 어울린 모습이 아름다웠다. Pentax K-3, 20 mm with 10-20 mm zoom, 0.3 s, F/5.6, ISO 400.
단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뜨고 보니 새벽 4가 조금 지났다. 외손녀를 데리고 서울로 간 둘째 딸의 전화였다. 창 밖을 보니 벌써 새벽 하늘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새벽 별과 등대의 불빛이 어울린 모습이 아름다웠다. Pentax K-3, 20 mm with 10-20 mm zoom, 0.3 s, F/5.6, ISO 400.

결혼식이 끝나고 둘째 딸이 예약해 놓은 펜션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좀 크게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펜션은 크지 않았지만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었으며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우리 차를 빼고는 모두 고급 외제차였다. 방에 들어가 보니 역시 세련된 인테리어와 함께 베란다에는 전용 제트 스파가 설치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 전망이 훌륭하였다.

아내와 나는 베란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뒤 내가 방의 에어컨을 켜기 위해 리모콘을 조작하는 사이 아내는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올려 놓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뒤 뭔가 타는 냄새와 함께 전기 스토브 위에 올려진 주전자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달려가 보니 플라스틱 전기 주전자가 스토브 위해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아내가 무선 전기 주전자를 일반 주전자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주전자 밑 부분이 다 녹아 망가지고 연기 때문에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불이 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저녁 녘 베란다에서 보이는 바다를 카메라에 몇 장 담은 후 가까운 음식점에서 거제도의 특산물인 멍게비빔밥을 먹었다. 밤에는 베란다에서 별을 보면서 스파를 즐길 수 있어 모처럼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 사진을 몇 장 찍으려는데 그만 배터리가 다 닳고 말았다. 아뿔싸. 카메라 가방을 배낭으로 바꾸어 오면서 여유 배터리를 옮겨 놓지 않았던 것이다. Pentax K-3, 16 mm with 16-50 mm, 1/500 s, F/11, ISO 100.
카메라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 사진을 몇 장 찍으려는데 그만 배터리가 다 닳고 말았다. 아뿔싸. 카메라 가방을 배낭으로 바꾸어 오면서 여유 배터리를 옮겨 놓지 않았던 것이다. Pentax K-3, 16 mm with 16-50 mm, 1/500 s, F/11, ISO 100.

밤에는 벽에 설치된 대형 TV 화면으로 극장에서 현재 상영중인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하였다. 아내가 제목과 그 밑에 적혀있던 간단한 설명을 보면서 고른 영화는 “리스본 행 야간열차”였다. 그런데 아내는 이 영화가 힐링 여행이라는 설명을 보면서 정말 여행을 통한 힐링이 되는 편한 영화라고 생각하여 골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가벼운 여행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였다.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일상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초로의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자살을 하려는 듯 다리 난간에 서 있던 낯선 여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붉은 코트와 오래된 작은 책 한 권, 15분 후에 출발하는 리스본 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수업도 팽개친 채 아무런 준비나 계획도 없이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 행 야간열차를 타게 된다. 이때부터 '인생은 정해져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지루하고 평범하게 살아왔던 그가 가슴 뛰는 일탈의 신선함을 경험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번 사진공감은 거제여행을 주제로 하려던 계획에 그만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나머지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이것 또한 일상적으로 해 오던 방식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시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갤럭시 S3, 1/2000 s, F/2.6, ISO 80.
이번 사진공감은 거제여행을 주제로 하려던 계획에 그만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나머지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이것 또한 일상적으로 해 오던 방식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시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갤럭시 S3, 1/2000 s, F/2.6, ISO 80.

영화는 포르투갈 독재 정권을 종식 시킨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70년대 초반과 현재를 넘나든다. 레지스탕스로 반독재 활동에 참여했던 의사출신의 프라두와 그 주변 인물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 감동하면서도 그들의 마음 속에 맺혀있던 오해와 갈등을 풀어주는 힐링 여행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지루해서 아내도 떠나버린 주인공의 인생 또한 힐링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같은 이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섬세하고 철학적인 대사들이 영화 전체에 흐르고 있고,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 평범한 주인공의 삶과 그가 만났던 책 속 인물들의 격동적인 삶이 대조를 이루며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쉼을 누리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주인공의 일탈은 더 의미 있게 다가와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본 후 베란다에 나가 편안한 의자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정말 얼마만의 여유였던지….

단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뜨고 보니 새벽 4가 조금 지났다. 외손녀를 데리고 서울로 간 둘째 딸의 전화였다. 걱정했던 사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아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함께 호텔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잘 놀고 함께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중간에 깨어 울면서 할머니를 찾으며 집으로 가자고 해서 새벽 3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아 할 수 없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잠이 덜 깬 채로 아내는 외손녀와 통화를 하면서 한참을 달래고 날이 새면 곧 가겠노라고 약속을 하여 조금은 진정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농소몽돌해수욕장에 들러 잠시 파도에 몸을 부딪혀 노래하는 몽돌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감상한 후 외손녀를 만나러 집으로 출발하였다. 갤럭시 S3, 1/1100 s, F/2.6, ISO 80.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농소몽돌해수욕장에 들러 잠시 파도에 몸을 부딪혀 노래하는 몽돌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감상한 후 외손녀를 만나러 집으로 출발하였다. 갤럭시 S3, 1/1100 s, F/2.6, ISO 80.

나도 잠이 깨어 창 밖을 보니 벌써 새벽 하늘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 사진을 몇 장 찍으려는데 그만 배터리가 다 닳고 말았다. 아뿔싸! 카메라 가방을 배낭으로 바꾸어 오면서 여유 배터리를 옮겨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진공감은 거제여행을 주제로 하려던 계획에 그만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다른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특별한 배터리여서 현지에서 충전을 하거나 카메라에 맞는 배터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나머지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이것 또한 일상적으로 해 오던 방식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시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농소몽돌해수욕장에 들러 파도에 몸을 부딪혀 노래하는 몽돌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잠시 감상한 후 외손녀를 만나러 집으로 출발하였다. 짧지만 우연과 작은 사건들이 만들어준 특별했던 이번 여행은 '리스본 행 야간 열차'의 사유적이고 철학적인 명대사들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날 때 우리의 일부를 남긴다. 우리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거기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무언가가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의 작은 부분만을 살아 볼 수 있다면, 다른 나머지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인생은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발견일까 아니면 창조일까?"

짧지만 우연과 작은 사건들이 만들어준 특별했던 이번 여행은 '리스본 행 야간 열차'의 사유적이고 철학적인 명대사들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짧지만 우연과 작은 사건들이 만들어준 특별했던 이번 여행은 '리스본 행 야간 열차'의 사유적이고 철학적인 명대사들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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