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브라질 우승을 축하하는 거리의 행렬들.
2002년 월드컵 브라질 우승을 축하하는 거리의 행렬들.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낙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회이다 보니 각자 여러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쉽게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4년을 기다려 온 승부. 선수들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무대다.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플레이, 강한 팀워크로 무장한 협동 플레이, 강자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약자 앞에서 자만하지 않는 정신력, 새로운 스타의 탄생, 피파 랭킹을 뒤엎는 약체 팀의 반란. 이러한 기대가 월드컵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두번째는 국가대항전. 월드컵이 국가대항전이 아니라면 광화문 거리응원은 성립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지네딘 지단 팬이라 해도, 프랑스와 상대팀으로 맞붙게 된 이상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프랑스 팀을 응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물어보지 않고도 대한민국의 승리를 함께 기대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2002년 한일월드컵. 필자는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열광하며 거리 응원을 즐겼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 다녀올 일이 있어,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열기가 한창이었던 월드컵 현장을 벗어나야 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다소 기가 꺾였던 독일과의 4강전과 터키와의 순위결정전은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고나 할까.

그 당시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던 (대전 엑스포 남문광장과 궁동 사거리에서의)거리 응원 열기를 잊지 못해 프랑스에서도 '독일 vs 브라질'의 결승전 거리 응원을 수소문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조별예선에서 1무 2패로 탈락했으나, 다행히도 월드컵 열기는 여전했다. 워낙에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이 아니던가.

파리 시청 앞. 광장이 가득 찼다. 경기 시작 전부터 요란한 나팔 소리, 가로등 꼭대기마다 판다처럼 매달린 아이들, 브라질 국기를 몸에 두른 미녀들. 자국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 많은 사람이 모였을까. 유럽에선 월드컵 결승전이라면 자국 경기가 아니라도 이 정도 관심과 기대가 있는 걸까.

경기가 시작되자 점차 상황이 드러나 보였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관중들은 압도적으로 브라질을 응원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결승에 올라온 팀에 걸맞은 전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으며, 6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골잡이 호나우두, 항상 웃는 표정으로 중원을 지배하는 재간둥이 호나우지뉴 등 브라질을 응원할 이유는 많았다.

프랑스 파리 시청 앞에 2002년 월드컵 결승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들.
프랑스 파리 시청 앞에 2002년 월드컵 결승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들.

그러나 매력으로 보자면 전차군단 독일도 만만치 않았다. 머리만 대면 골을 넣는 클로제의 골세리머니도 인기였지만, 압도하는 인상으로 최고의 활약을 보인 야신 올리버 칸이 독일의 수문장이었다. 골키퍼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골키퍼가 제일 인기다. 멕시코의 오초아, 코스타리카의 나바스, 독일의 노이어, 브라질의 세자르, 나이지리아의 옌예마, 미국의 하워드….

제3자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떠올려 보지만, 파리 시청 앞에 모인 군중들이 브라질을 응원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단지 브라질이 '독일' 팀의 상대였다는 것.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같은 이야기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과연 승리의 여신은 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당시 브라질 팀에는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히바우두, 카를로스가 있었다. 호나우두가 독일을 상대로 2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고 골든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경기에서 독일의 클로제가 넘는 공중제비를 보지 못했고, 올리버 칸의 거미줄에도 구멍이 뚫렸다.

파리 시내에 어스름이 지고 밤이 될 때까지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무리들의 소란이 계속됐다. 서울의 광화문대로에 해당하는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는 차들은 경적 소리로 팡파레를 울렸다. 세느 강변의 도로는 사람과 차가 한 무리가 되어 행렬을 이뤘다.

이번 2014년 브라질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과 브라질이 맞붙게 되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경험한 2002년 한일월드컵 결승전의 리턴매치가 되는 셈이다. 이번에도 파리의 시민들이 브라질을 응원하기 위해 거리로 나올지, 브라질의 공격수 네이마르가 8강전에서 입은 척추 부상으로 이번 월드컵을 접어야 한다는 소식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정원 선임연구원은

이정원 선임연구원은 책과 사람에 쉽게 매료되고, 과학과 예술을 흠모하며, 미술관과 재즈바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펜탁스 카메라로 순간을 기록하고, 3P바인더에 일상을 남깁니다. 시스템과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습관과 절차 자동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연구원은 이정원의 문화 산책을 통해 자연과 인류가 남긴 모든 종류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정원 연구원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에서 의용생체공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현재 ETRI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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