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과학기술력이 국가 운명 좌우
긴장하고 상황 주시하며 실력 배양 힘써야

일본이 전쟁가능한 나라가 됐다. 이를 두고 각국의 반응이 다르다. 피해 경험이 있는 우리는 일단 비난한다. 중국은 반발한다. 자신들의 패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까. 미국은 환영한다. 중국의 부상이 부담인데 일본이란 우군이 생긴 셈이니. 그런 가운데 유럽은 제 3자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라고. 아마 이 시각이 객관적이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전쟁가능한 나라 일본'이란 대목은 이 나라로 인해 지난 역사에서 엄청난 피를 흘린 천추의 한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긴장하고, 주목하며 대응책을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 특히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과학기술력의 차이로 승패가 갈렸고, 우리의 운명이 비참해졌기 때문이다.

전쟁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왜 일본이 전쟁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신경 써야하나?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전쟁이 가능한가, 아닌가? 
우리 헌법에 보면 우리는 자위권을 갖고 있고 침략적 전쟁이 아닌 한 전쟁이 가능하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라는 구절이 있고, 제5조 1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다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일으킨 적이 없다. 아니 일으킬 수 있는 물리력과 국민적 결기가 없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땅에서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조선 이후부터만 보아도  420여년전의 임진왜란, 370여 년 전의 병자호란, 60여년전의 6.25 등 우리가 당사자가 된 전쟁이 있었다. 이외에도 120년전의 청일전쟁과, 110년 전의 러일전쟁 등 우리와는 관계도 없는 싸움의 격전지가 되기도 했다.

생각해 보자, 우리 집에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들이 문 부수고 들어와 가재도구를 박살내고 식구들을 다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떠하겠는가?
한마디로 참담할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 집에 와서 쌈질이냐고 항의하면 다 된 것일까? 사전에 들어올 엄두를 못 내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저 집 들어가면 다친다는 생각을 하면 들어올까?
다른 말로 하면 싸움터로 안방을 내준 우리도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비난이나 항의 이전에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자세는 어떤가? 혹 싸움을 일으킨 사람과 남의 집에 쳐들어온 사람을 욕하는데 보다 비중을 두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방비하고 힘을 키우는데는 소홀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 등등 이전의 전쟁이 일어났던 상황들과 비슷하다. 우리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기류의 변경으로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과 정확히 같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란 세계 양대 세력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는 가운데 자신들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칼을 빼 들었던 일본과 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무력으로뿐 아니라 경제력으로 우리를 자신들의 세력권아래 두어왔던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한국에 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편이 되라고 한다.

우리에 비해 일본은 전쟁을 일으켜 본 경험이 많다. 임진왜란이 그렇고,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 등등. 싸움이 일상인 나라이다. 그 전쟁들은 다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됐다. 이런 과거를 지닌 나라가 전범국가에 대한 징벌로 한동안 전쟁을 못하게 됐다가 하게 되니, 앞날이 어떨지 예상되기에 우리로서는 긴장해야하는 것이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가운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특히 과학기술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나는 역사 및 상황에 대한 직시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등의 전란이 사전 예고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통신사나 외교 사절, 직접적인 압박 등등을 통해 예후가 전달되고, 느껴졌다. 그런 징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비하면 피를 덜 흘리지만 무심하게 넘어가면 나중에 꼭 대가를 치른다고 역사는 알려준다. 이번 일도 우리가 일과성으로 넘어가고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중에 큰 후회를 할 날이 올 것이다.

과거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과정으로 전개됐으며, 그런 가운데 얼마나 피를 흘렸는가, 후유증을 극복하는데 어떤 시련이 있었는가 등을 꼼꼼히 알아야 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반복하며 되새겨야 한다. 이는 문과고 이과고 상관없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다. 나만, 내 가족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은 성립이 안된다. 이웃이 피 흘리는데 나만이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특히 해야 할 것은 전쟁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이다. 임진왜란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조총이었다. 병자호란은 홍이포란 대포가 있어 강화도가 함락됐고 남한산성에서 결국 손을 들었다. 동학농민전쟁과 일본군이 대치한 공주 우금치 전투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무라타 소총과 개틀링 기관포였다. (동학군 섬멸시킨 개틀링 기관포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SWL&fldid=4rf3&datanum=2359압도적인 무기의 차이와 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국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고, 패자들은 비참한 운명에 처해야 했다.(관련 기사-중국의 우주 도킹 성공과 한국의 운명 http://hellodd.com/news/article.html?no=36020)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과학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역사적 사례를 보아 과학기술을 중시한 나라는 흥했지만 경시한 나라는 망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프러시아, 영국, 미국, 일본 등이 전자의 사례이고, 스페인과 독일 나치즘이 후자의 사례이다. 사회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함과 함께 당사자들인 과학기술자들도 국가 공동체와 공동 운명체임을 인지하고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경우 과학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전공에는 높은 실력을 갖고 있지만 역사라든가, 사회 흐름 등에는 다소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나라가 됐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 특히 과학기술자들이 크게 긴장하고 대비해야 하는 소식이다. 일본의 호전성을 비난만 해서는 해답이 안 나온다. 일본이,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중국이나, 미국 등이 우리를 종속 변수로 놓거나 흥정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하려면 결국 우리들의 실력을 높이는 것 뿐이 없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말한다. 한 나라가 전쟁 억지력을 갖거나 중립국이 되려면 주변 나라의 최소 30%의 국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는 중국의 8분의 1이고, 일본의 5분의 1이다.아직 우리가 독립변수로서의 역할을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가 갈 길이 아직도 멀다. 과거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던 시기에 비해 분명 풍요로워지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주변국들은 여전히 우리보다 강하고 최근 들어 그 발전 속도도 우리보다 빠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중단 없는 학습이고, 실력 배양이다. 자강불식이 필요한 것이다.
힘센 사람을 비난하는 데 신경쓰기 보다는 이 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

이공계는 국가 장래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지식인 집단이라고 역사는 말해준다. 과학기술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적다는 자괴감을 갖기보다는 자존감과 책임감을 갖고 미래를 개척해나가 국가 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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