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플러먼의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유유 刊)
공학과 잇는 역사·문학·철학·미술·음악 5개의 다리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괴테의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수로를 건설하고 땅을 간척하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완전한 만족의 순간을 발견한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괴테의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수로를 건설하고 땅을 간척하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완전한 만족의 순간을 발견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젊음, 지식, 마법 같은 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을 비롯한 갖가지 쾌락으로 파우스트를 유혹한다. 그런데도 파우스트는 불만을 떨치지 못한다. 이런 파우스트는 평생 추구한 완전한 만족의 순간을 결국 발견한다. 수로를 건설하고 땅을 간척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순간이었다. 해석에 차이가 있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그 일은 '공학'에 가깝다.

카프카 역시 '성(城)'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그것은 갈등과 구원이다. 주인공 K는 산꼭대기에 있는 수수께끼의 '성'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좌절된다. 혼란에 빠진 K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사실은 자신이 성의 위계에서 특별한 자리에 임명되었다는 점이다. K는 구원받기 위해 재치와 힘을 총동원해 임명을 승인받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직업은 다름 아닌 '토지 측량사'였다.

이 책의 저자인 새무얼 플러먼(Samuel C.Florman)은 이렇게 해석한다. "카프카는 인간이 정직하고 생산적인 작업을 꾸준히 지망하면서 구원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중략). 괴테의 파우스트는 천상과 지상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결국 공학 작업에서 구원을 찾았다. 그런데 그것은 개척가의 무심한 작업도, 물질주의자의 냉담한 작업도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을 염려하는 마음과 우주의 조화를 섬기는 마음을 통해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신한 공학이었다."

◆엔지니어의 결핍은 어디에서 오는가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유유 刊)'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다.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공학과 인문학을 잇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봄으써 '두 문화' 사에 자연스럽게 흥미와 관심의 다리를 놓는 것, 인문학의 속성과 내용을 폭넓고 간략하게 훑어봄으로써 평범한 엔지니어가 기억을 '되살리도록' 돕는 것. 그리고 끝으로 엔지니어가 세계를 더 깊이 여행하도록 이끌고 그때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을 추천하는 것. 

저자가 보기에 엔지니어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절망이 널리 퍼진 세상에서, 엔지니어는 건설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 속에서도 낙천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과학혁명의 복잡성에 혼란스러워하는 시대지만, 엔지니어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기술적 사건들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소양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갈수록 소외되는 처지라고 하지만 엔지니어는 다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여전히 개인의 삶도, 사회적 역할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런 불만은 전문가인 엔지니어가 갖는 일종의 결함과 관계가 있다. 엔지니어의 잘못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그 결함은 엔지니어가 직업의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하느라 '균형' 잡힌 인간이 되지 못하는 데서 온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엔지니어가 결핍과 불만을 느끼는 것은 폭넓은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엔지니어에게 교양을 가르치는 교육이 엔지니어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공학의 건전한 발달에 기여하고 사회를 보존하고 살찌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학(과학)과 교양(인문학)의 두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양쪽을 잇는 다리가 있어야 뒤로 돌아 공학을 점검할 수 있고, 앞을 보며 장차 탐구해야 할 세상을 볼 수 있다. 두 영토의 유사상을 관찰할 수 있고,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인간의 모든 고귀한 노력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그런 다리를 새로 지을 필요는 없다. 이미 다 지어져 있으니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그 다리는 바로 공학과 역사, 공학과 문학, 공학과 철학, 공학과 미술, 공학과 음악이다.

◆공학과 교양을 잇는 다섯개의 다리  

예를 들어 공학과 철학을 잇는 다리에서는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집단으로서의 엔지니어는 어떤 특정한 철학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엔지니어는 스스로 관찰한 모습 그대로의 물리적 세계를 받아들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적 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이컨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현실에 적용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규칙이 이론에서도 가장 진실하다." 무엇이든 가장 잘 작동하는 게 '진리'라는 것이다. 

공학과 음악을 잇는 다리에 관련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는 엔지니어가 쾌적한 소리를 장려하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될 방법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또 불쾌한 소리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물론 이런 문제에서 엔지니어게게는 최종 권한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영향력이라도 조화롭고 사랑스러운 소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는 교차로나 인도의 작은 광장을 설계할 때 분수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큰 광장에 연주용 단상을 설치한다. 공업단지가 새들의 서식지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일부를 보존한다. 도시 재생계획에 종탑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음악에 민감한 엔지니어는 아름다움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책은 '르네상스인을 꿈꾸는 공학도를 위한 필수교양'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러한 필수교양(인문학)은 비단 엔지니어에게만 요구되지 않는다. 반목과 갈등이 반복되고 상식과 몰상식, 세련됨과 천박함이 수시로 충돌하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진정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한 대기업 회장의 일침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문성밖에 없는 전문가는 최고 관리자 지위에 올라갔을 때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런 위치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들을 풀려면 폭넓은 상식, 개방성,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인간의 취약에 대한 통찰, 공정성, 명료한 사고 등이 필요하다. 그런 자질은 대체로 교양을 통해 길러진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