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 컨소시엄,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 수주
계약금액 260억원 2017년 완료예정, 유럽진출 교두보 마련

네덜란드 델프데 공대 연구로 (HOR) 전경 부지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네덜란드 델프데 공대 연구로 (HOR) 전경 부지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막판까지 유럽의 원자력 선진국인 프랑스와 독일 컨소시엄이 치열할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압니다. 2주 전에 우리나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의 신청 기간이 있어 발주처에서도 엠바고를 강하게 요청해 왔습니다. 그만큼 기술이나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가리기 어려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드디어 원자력 선진국 유럽을 누르고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연구개발(R&D)기술을 도입한지 55년만에 처음으로 유럽 원자력 기술 사업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김종경·이하 원자력연)과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으로 구성된  원자력연 컨소시엄이 네덜란드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델프트 공대 연구로 출력 증강 및 냉중성자 설비 구축사업(이하 OYSTER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사업은 네덜란트 델프트 공대에서 현재 운영중인 연구로의 열출력을 기존 2메가와트(MW)에서 3MW로 증강하는 것으로 오는 2017년 말까지 냉중성자 연구설비 구축을 완료하게 된다. 계약금액은 한화 260억원(1900만 유로) 규모다.

원자력연에 의하면 전세계에 '냉중성자 설비'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에 7개 국가에 불과하다. 이번 국제입찰에는 원자력 선진국인 프랑스(AREVA), 독일(NUKEM)-러시아(NIEKET) 컨소시엄이 참여해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김학노 원자력연 부원장은 "1년반전부터 네덜란드 국제입찰을 준비해왔다. 우리나라는 미국 원자력기술 기준으로 연구개발을 해왔기에 유럽의 기준을 알기위해 독일의 자료를 구해 공부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면서 "프랑스는 기술면에서 독일은 원자력 기준 등에서 세계 최고다. 그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성과는 우리나라가 우수한 기술력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의미가 남다르다"며 그간의 일정을 소회했다.

◆이의신청도 없어 완벽한 승리…하지만 유럽 기준 넘어야

보통 원자력 프로젝트 국제입찰은 컨소시엄 사업자가 입찰에 참여하면 기술과 가격 등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다.

우선협상대상자는 종합평가에서 1위에 오른 것으로 계약 협상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최종낙찰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발주처인 네덜란드에서 이의 신청 기간인 2주동안 철저한 엠바고를 요청해 왔다.

김 부원장은 "2주간의 엠바고 기간동안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슴을 졸였다. 프랑스와 독일이 원자력 선진국이다보니 네덜란드에서도 긴장을 했던 게 사실이다. 오늘(24일) 새벽에 어떤 이의 신청도 없었다는 메일이 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자력연은 이번 사업 수주을 위해 4개부서의 40여명이 TF팀을 구성해 1년반동안 준비를 해왔다. 유럽 프로젝트 경험이 없어 기술, 기준 등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따랐다.

김 부원장은 "유럽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설계요건을 파악하고 가격을 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서류를 작성해 직접 네덜란드에 들고 갔다. 그쪽 관계자에 의하면 서류 양은 독일이 가장 많고 그다음 한국, 프랑스 순이라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에도 신경이 쓰였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원자력연 컨소시엄은 오는 7월안에 계약을 체결하고 2017년까지 냉중성자 실험시설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해말까지 기본설계를 마치고 내년부터 기자재 등 발주를 진행할 예정이다. 극저온 헬륨냉동기 등 일부 완성품 기기를 제외하고는 설계, 제작, 설치, 시운전 등 엔지니어링 전 과정을 국내기술로 하게된다.

계약이 체결되고 본격 사업이 진행되면 새롭게 넘어야할 산이 많다. 우선 우리나라의 원자력기술은 미국이 모태다. 설계나 제작 모두 미국 기준에 익숙하다. 그동안 수주한 해외 원자력 프로젝트도 미국의 설계요건이 대부분으로 유럽 설계 기준이나 기술 기준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 부원장은 "최근 벌어전 국내 원전 부품 비리사건도 협상과정에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부품하나도 대한민국을 대신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번 OYSTER 사업 수행을 통해 우리나라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유럽 원자력 분야 사업 수행 경험을 쌓아 향후 유럽을 포함한 세계 원자력 시장 진출의 튼튼한 교두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냉중성자 원자로, 생명공학 분야 핵심 수단

우리나라는 그동안 ▲하나로(30MWt) 자력설계·건조·운영(95년) ▲UAE 상용원전(1400MWt) 수출(09년) ▲요르단 연구로 시스템(5MWt) 일괄수출 달성(09년) ▲수출용 신형 연구로(20MWt급) 구축 착수(12년∼) 등의 사업, 말레이시아 연구용 원자로 디지털 시스템 구축 사업 등 꾸준히 원자로 기술 확보와 수출을 진행해 왔지만 원자력 기술 수출 대상국은 중동, 동남아 등에 한정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성과로 프랑스(ILL), 독일(FRM-2) 등 세계 최고 성능의 연구로가 존재하는 유럽지역에 국산 연구로 기술을 수출하게 됐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 받게 됐다데 의미가 남다르다.

김 부원장은 "이번 입찰과정에서 원자력연이 OYSTER와 같은 고방사선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냉중성자 설비를 설치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했다는 점에 많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앞으로 국제 입찰예정인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건설사업(PALLS) 입찰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것으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냉중성자는 연구로에서 생산되는 열중성자를 영하 250도의 액체수소로 된 감속재를 통과시켜 차갑게 해 움직임을 둔화 시킨다. 냉중성자는 4~20옹스트롬의 파장을 갖고 있어 1~100나노미터(nm) 영역의 물질 구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

냉중성자 연구로는 X선이나 레이저와 달리 살아있는 세포 생체 물질을 파괴하지 않고 원자, 분자, 바이오 물질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 생체 재료 내에서 약물이 전달되는 물질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에 활용될 수 있어 신약개발에 획기적인 기회가 될 전망이다.

김 부원장은 "보통 중성자는 빠르게 움직인다. 속도를 낮추기 위해 감속재나 냉매가 사용되는데 냉중성자는 일종의 빔형태로 X선보다 투과 성능이 우수하다"면서 "원자력연은 2003년부터 396억원을 투입해 냉중성자 연구시설을 구축하고 2011년에 완료해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개방해 왔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사업은 당초 연구로 개선과 냉중성자 설비구축사업을 포함해 500억원의 사업으로 시작됐지만 네덜란드의 자금 사정에 의해 우선 냉중성자 설비 구축사업만 260억원 규모로 계약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연구로 개선 사업도 우리나라가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 유럽 진출의 실질적인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14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운영중인 246기의 연구로 중 60%는 40년 이상 경과되었고 향후 20년 내 신규와 노후화된 연구로 대체수요는 30~50기로 추정되는 등 시장이 유망한 상황이다. 앞으로 사우디, 남아공, 네덜란드, 베트남 등 40여개 국에서 수요가 발생할 예정으로 우리나라는 이같은 움직임에 주시하며 향후 수주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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