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화제의 연구실…박용근 교수와 제자들
세계 과학저널에 학부생 논문 연이어 게재…소통·자율성·독립성이 만들어낸 성과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와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바쁜 시험기간 중에도 힘든 내색 없이 시종일관 웃으며 이야기가 오갔다. 박 교수는 자기를 인터뷰 하려면 한사코 제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모인 그들의 모습에서 교수와 제자의 관계라기 보다는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한 선후배의 모습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격이 없었다. 교수와 제자의 상하관계가 아닌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동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스스럼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다. '어떤 교수와 제자들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하고 질문이 떠오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KAIST에서 대학원생도 한 번 게재하기 어렵다는 세계적 과학 저널에 연이어 논문을 발표해 화제를 모은 학부생들은 모두 박 교수의 제자들이다. 학부생 위치에서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내도록 만든 박 교수의 지도 철학이 KAIST 뿐만 아니라 연구현장에서 신선한 자극제로 확산되고 있다.

"저는 참 운이 좋았어요. 행운이죠.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실력을 가진 학생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 교수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감사해 했다. 그의 지도를 받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 3명이 연이어 세계적 과학저널에 논문을 발표했고, 세계 최고 명문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큰 성과들이 줄을 이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별로 한 게 없다고 말했다.

박용근 KAIST교수는 항상 제자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용근 KAIST교수는 항상 제자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굵직한 성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묻자 학생들의 끈기와 노력을 가장 먼저 손꼽았다.

"학생들의 열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연구가 막힐 때 포기하지 않고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 주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성과가 잘 나타나줘서 매우 기쁩니다."

그는 "연구라는 것이 잘 안 될 때는 정말 힘들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즐겁게 연구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시간 할애…소통으로 방향성 제시

'단일 박테리아 광 산란 분석기술'로 최근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논문을 게재한 조영주 학생은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박 교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단다.

"교수님은 커뮤니케이션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죠. 그런 격없는 소통의 시간을 통해서 저희들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주셨습니다. 학생들의 교육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그런 분위기가 최고 수준의 연구실을 만드는 것 같아요."

조영주 학생은 기존의 생화학적 방법으로는 며칠씩 걸리던 박테리아 분석 방법에 빛을 사용, 단 몇 초 안에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연구에는 새로운 방향이나 방법, 시각이 필요하고 우연한 기회에 정답을 얻기도 한다"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아주는 교수님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

이에 박 교수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결과는 연구가치가 없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과가 나온다"며 "학생들의 연구도 그 과정에서 많은 방향전환과 조건이 변하는데, 학생들이 방향을 잘 잡고 열심히 했다"고 제자들의 노력으로 공을 돌렸다.

지난 3월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지방소립세포기관 관찰' 논문으로 한국광학회 우수논문상을 받은 생명과학과 이서은 씨도 박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그녀도 연구실의 분위기가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박 교수와 학생들은 1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인 소통모임을 갖는다. 일정이 변경되는 일이 있어도 건너뛰는 일은 없다. 물론 박 교수 방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우리 연구실은 구조적으로 매우 잘 돼 있습니다. 연구와 토론, 미팅 등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이런 바탕 위에서 체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져요."

이 씨는 원래 생명과학 전공이다. 관련이 없는 이 연구실을 찾은 것은 바로 이런 박 교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생물과 빛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던 그녀는 박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연구실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올해 콜럼비아 의대 생명과학 박사과정으로도 진학 예정이다. 석사 과정 없이 해외 박사과정으로 가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박 교수님은 다양한 학생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해주시죠. 교수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워요. 직접 가르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보고 배우는 것이 더욱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생은 대학원생의 어시스트? 독립적인 연구하면 누구나 성과 만들어

박 교수의 제자들 가운데 세계적인 저널에 무려 2번이나 논문이 게재된 조상연 씨도 화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현미경에 관심이 많아 박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오게 됐다.

그는 2012년 2월, 기존 현미경으로는 관찰할 수 없던 말라리아를 영상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연구 논문이 셀 지에 처음으로 실렸다. 이후 지난해에는 초고해상도 현미경 관련 연구가 네이처 자매지에 연이어 실렸다.

이제 졸업을 앞둔 그는 이런 연구 성과들을 인정 받아 하버드-MIT 연합 의공학대학원, 하버드, 스탠포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캘리포니아 공대에 동시에 전액작학생으로 합격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곳에 온 이후 연구자가 가질 수 있는 기쁨을 알게 됐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1년 첫 연구 결과가 나올때였어요. 결과를 밤새 기다리고 있었죠. 새벽 6시쯤 결과가 나오자마자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아이까지 데리고 한걸음에 연구실로 달려나오셨어요. 그 때 연구자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알게 됐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게 해주신거죠."

학부생 때부터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결과를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원생들의 연구가 우선적으로 진행되거나 학부생들은 그 연구의 서포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서은 씨는 "학부생은 연구에 있어 대학원생들의 어시스트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또 학부생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리스크가 높은 편이지만 믿고 맡겨주며 스스로 책임감을 다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 학부생, 대학원생 구분을 짓지 않는 것도 이런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상연씨도 연구실의 분위기가 큰 성과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이 곳은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보통 대학원생들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고 학부생들은 독립 연구가 힘든 것이 현실이죠. 개별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물론 그 모티베이션은 교수님을 통해서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수님의 넘치는 에너지를 많이 보고 배웠죠."

(왼쪽부터)조영주 학생과 이서은 학생, 그리고 조상연 학생. 박용근 교수의 제자들인 이들은 학부생으로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
(왼쪽부터)조영주 학생과 이서은 학생, 그리고 조상연 학생. 박용근 교수의 제자들인 이들은 학부생으로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

◆혼자 하는 연구?시너지를 내는 협업이 필수

비단 박 교수만 학부생들과 소통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들도 이 분위기에 동참, 학부생들과 함께 하는 연구에 익숙해져 있다고 했다.

서로의 연구는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부족한 부분, 방향성에 대한 소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서로가 소통하는데 있어 교수와 대학원생, 학부생의 구분이 없다.

이런 분위기는 박 교수가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연구실에 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평가할 때 욕심과 열정을 가장 먼저 본다고 했다.

"잘해보고 싶다. 멋지게 해보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줍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전 단지 그런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준 것 뿐이죠."

함께 하는 연구에 대한 그의 철학은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생각한 것이다. 그의 지도 교수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연구와 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다른 교수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박 교수를 기다려줬다. 이런 경험이 지금 그의 지도 방법에 녹아 들어 있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프로의식에 대해 강조했다.

"학부생, 대학원생 할 것 없이 프로의식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야 합니다. 연구실도 엄연한 직장이며 확실한 구분과 결과에 대한 철저한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죠. 이런 마인드가 앞으로의 연구에도 꼭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박 교수지만 학생들은 그의 건강이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워낙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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