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문학동네)'
생물학적 지식·과학적 수치로 살펴본 사람의 생로병사
죽음을 주제로 했지만 메시지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처형하려고 기다리는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은 뒤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오스카 와일드는 파리의 한 초라한 호텔에서 죽어가며 말했다. "나는 벽지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나겠다." 칼 마르크스는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허튼 소리 말고 나가시오. 유언은 충분히 말을 못 한 바보들이나 남기는 것!"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말은 그들의 유언이 됐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중세 유럽의 수도승들은 이런 인사말을 나눴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예외없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구나 영원히 살 것 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만의 경고다. 더 겸손하게, 더 충만한 삶을 살자는 그들 스스로의 각오였으리라. 동시에 '삶을 사랑하라'는 말로도 들린다. 삶과 죽음은 '이음동의어'란 사실을 그들은 알았던 거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지음·문학동네 刊)'는 '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의 결말을 다룬 책이다. 프롤로그의 한 대목은 어떻게 글이 전개되는지 엿볼 수 있다. "한 판 시합을 시작해보자. 내 이야기 대 내 아버지의 이야기. 이것은 내 몸의 자서전이고, 내 아버지 몸의 전기이고, 우리 두 사람 몸의 해부학이다." 

◆인류 보편의 결말,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 영국의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언제일지 몰라도 반드시 때가 온다. '안녕'이 반기는 인사가 아니라 작별 인사가 되었구나 깨닫는 때가 온다. 그리고 죽음, 그것은 삶이라는 임시직 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다. 이제는 애써 고개를 틀지 않고는 반대쪽을 바라볼 수가 없으니,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 얘기부터 시작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와 산모는 산모가 아기에게 공급하는 영양소를 놓고 무의식적으로 승강이를 벌인다. 임신은,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가 말했듯이, 줄다리기이다. 양쪽이 기를 쓰고 잡아당기기 때문에 줄 중앙에 묶인 깃발이 거의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생존은 전쟁이다(21쪽).

그런 전쟁을 통해 세상에 나온 아이는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한다. 손톱의 경우를 보자. 아이의 손톱은 일주일에 1mm쯤 자란다. 발톱이 자라는 속도는 손톱의 4분의 1 정도로 한 달에 1mm쯤 자란다. 피아니스트나 타자를 많이 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손톱이 빨리 자란다. 손톱은 11월에 가장 빠르게 자라고, 7월에 가장 느리게 자라며, 밤에는 덜 자란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의 손톱은 더 늦게 자란다. 30세에서 80세가 되는 동안 손톱 성장 속도는 50% 줄어든다.

그리고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나이를 쉽게 먹지 않는 동물은 포유류보다 좀 더 진화가 덜 된 상어나 악어, 갈라파고스 거북 등이다. 사람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과학적 이론이 있다. DNA 전사 과정에 생기는 오류가 유전적 이상으로 이어져 죽음을 앞당긴다는 이론, 엔트로피 생성 인자가 세포를 망친다는 이론, 노화 속도는 종마다 각자 유리하도록 발달했다는 이론. 어찌됐든 사람은 태어나 삶을 유지하고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걷는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우리 몸의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죽음의 순간은 '생물학적'으로 이렇다. 몸의 피가 극도로 산성이 되어 근육들이 경련한다. 세포의 원형질은 더는 생명을 지탱할 능력이 없다. 가쁜 숨을 여러 차례 몰아쉬기도 하고, 후두 근육이 팽팽해져서 기침하는 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 가슴과 어깨가 한두 번 들썩이며 짧게 경련한다. 눈알은 통통한 모양을 유지해주던 피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평평해진다. 속설과 달리 죽는 순간에 몸무게가 21g 줄어드는 일은 없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해도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241쪽).
 
◆죽음을 기억하라…그리고 운명을 사랑하라

책은 '유년기와 아동기'를 시작으로 '청소년기'와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와 죽음'까지 총 4부로 구성됐다. 과학적 수치와 통계를 바탕으로 각 연령대별 육체적 변화를 설명한다. 하지만 딱딱한 과학서적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과학적 사실들을 양념으로 곁들인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러티브로 삼아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들을 정리한 보고서다.

죽음을 부정하는 100세 아버지와 죽음을 직시하는 50세 아들(저자)의 이야기를 과학적 수치나 물학적 탐구와 적절히 섞으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기보다 더 건강하고 의욕에 찬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에 대한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결국 아버지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어조는 무미건조하다. "인간은 25만 년 전부터 존재했다. 그동안 900억 명이 살고 죽었다. 당신은 현재 지구에 있는 65억 인구 중 한 명이고, 당신의 유전자에서 99.9%는 남들의 유전자와 같다. 사람의 차이는 나머지 0.1%에서 온다. 뉴클레오티드 염기 1000개 중 하나 꼴의 차이에서 온다." 결국 인간이란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진 말자. 40대의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삶은 내가 10세부터 줄곧 말해온 대로 무지무지하게 흥미롭다. 44세인 지금의 삶은 24세일 때보다, 굳이 말하자면, 더 빠르고, 더 통렬하고, 뭐랄까, 더 절박하다. 나이아가라를 향해 달려가는 강물처럼."  지금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나 늙고 죽기 때문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욕심내고,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고, 막을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는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사실을 망각한다. 

어찌됐든 우리는 결국 언젠가 죽는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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