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이 만든 '빛의 물리학(해나무 刊)'
'빛'이라는 키워드로 상대성이론·양자역학 등 물리학 탐험

모든 것의 시작에 빛이 있었다. 빛을 찾은 선구자들은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사진=책 본문중>
모든 것의 시작에 빛이 있었다. 빛을 찾은 선구자들은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사진=책 본문중>

어느 어두운 밤, 한 남자가 산에 오른다. 산꼭대기에서 등불 하나를 켰다. 건너편 산에도 등불을 가진 조수가 서 있었다. 그는 빛의 속도를 재고 싶었다. 실험은 간단했다.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를 재려면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된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빛의 속도를 잴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남자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였다. 갈릴레오는 산꼭대기에서 불빛을 주고 받으며 그 사이의 시간을 쟀다. 시간을 거리로 나누면 빛의 속도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했다. 빛의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붉은 유리를 통과한 빛은 붉게, 파란 유리를 통과한 빛은 파랗게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의 백색광이 땅에 내려와 굴절하거나 반사하면서 색깔이 생긴다고 믿었다. 색깔은 흰색 빛에 어둠이 섞여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과학자는 이런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주인공은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2년여 동안 빛에만 몰두했다. 너무 오랫동안 햇빛을 바라보는 바람에 실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빛의 속도는 1초에 약 30만km, 지구를 1초에 일곱바퀴 반을 돌 정도로 빠르다. 갈릴레오는 빛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등불로 빛의 속도를 재겠다는 그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다. 빛은 순식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속도를 갖고 온다는 사실이다. 뉴턴은 빛 속에 색깔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색광 속에는 모든 색깔들이 혼합되어 있으며, 색깔별로 고유한 굴절률을 갖고 있다. 뉴턴의 이 발견으로 빛은 본격적으로 과학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갈릴레오나 뉴턴 만이 아니다. 빛은 아주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앰페도클레스라는 고대 과학자는 눈에서 빛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안에 색이 들어 있어서 빛이 없어도 색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유클리드는 멀리 있는 물체가 가까이 있는 물체보다 작아 보이는 이유는 눈에서 나온 빛이 직선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입증했다. 데카르트는 빛이 물체에 닿았을 때 변형되어 생성된다고 생각했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한 '빛의 물리학'.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한 '빛의 물리학'.
태초에 빛이 있었듯 과학의 시작에도 빛이 있었다. 무엇보다 빛은 현대 물리학의 거대한 문을 여는 열쇠였다.  

'빛의 물리학'은 당초 'EBS 다큐프라임'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9월, 2주간에 걸쳐 방영됐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히는 갈릴레오, 뉴턴, 맥스웰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의 발자취를 따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소개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의 모토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물리학을 설명한다'였다. 같은 제목의 신간 '빛의 물리학(해나무 刊)'은 이 다큐멘터리의 텍스트 버전이다.

가장 큰 세계와 관련된 상대성이론과 가장 작은 세계와 관련된 양자역학. 제작진은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을 설명하기 위해 '빛'을 키워드로 삼았다. 왜 빛인가? 방송에서도 이런 나레이션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책에 실린 '인트로(intro)'는 빛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빛을 만들어 이용하는 존재다. 누군가 저 빛이 무엇이고 얼마나 빠르게 우리에게 오는지 궁금해했다. 거기에서 빛의 과학이 탄생했다.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빛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색은 빛 속에 있는 것일까? 무수한 물음과 답을 향한 걸음들이 세상을 밝혔다. 처음은 한 개의 불빛으로 시작했다." 

실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대한 과학자들은 운명처럼 빛에 빠져들었다. 빛이 무엇인지(무엇으로 구성됐는지) 알기 위해 시작한 그들의 지적 탐구는 사물의 운동법칙과 이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그 작업은 의문투성이였던 '하늘'의 빛을, 관찰할 수 있고 해석 가능한 '땅'으로 가져오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갈릴레오는 빛의 속도를 재기 위해 등불을 들고 산에 올랐고, 뉴턴은 빛의 정체를 밝히려다 시력을 잃을 뻔했다. 빛은 아인슈타인을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이끌어주었고, 일반상대성이론도 태양을 지나는 별빛의 휘어짐으로 입증했다. 빛의 본질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데카르트는 빛을 순간적으로 전파되는 압력이라고 생각했고, 로버트 훅은 빛을 파동이라고 보았다. 반면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주장(이 주장은 또 뒤집힌다)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책으로 옮겼기 때문일까? 빛을 따라 물리학을 탐험하는 여정은 눈으로 보듯 생생하다. 뉴턴이 망원경과 프리즘을 통해 빛을 탐구하던 현장을 살펴본다. 1905년 베른의 특허국에서 물리학 논문을 읽곤 했던 아인슈타인도 만나고, 그에게서 가장 큰 세계와 시간과 공간의 얘기를 듣는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있는 코펜하겐으로도 떠난다. 그들에게서 가장 작은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질문도 던진다. '두 개의 세계는 왜 다른가요?'

책은 빛과 시간(특수상대성이론), 빛과 공간(일반상대성이론)으로 시작해 빛의 추적자들을 소개한다. 이어 빛과 원자, 빛과 양자의 세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빛과 끈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빛의 본질에 대한 논쟁부터 입자론과 파동론, 전자기파, 상대성이론, 양자물리학, 초끈이론 등 어렵고 딱딱한 물리학의 역사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이 빛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왜 빛인가? 저자들(제작진)은 말한다. "모든 것의 시작에 빛이 있었다. 빛은 종교, 지혜, 감정, 문명이었다. 빛을 찾은 선구자들은 우리에게 과학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먼 곳을 보게 하고, 더 넓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는 궁극적인 것의 처음과 끝을 찾고 있다. 이것은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이야기하고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때때로 우리를 기이한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빛은 과거로부터 온 소식이다. 가볼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품고 우리에게 온다. '현재'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늘 '미래'를 꿈꾸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빛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험난하다. 누가 그랬다던가? 상대성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10명인데, 양자역학은 1명도 없다고. '누구나 알기 쉽게'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을 설명했다지만 책으로는 '알기 쉽게'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본방사수'에 실패했던 다큐멘터리 '빛의 물리학'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빛은 우리를 기이한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사진은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촬영된 개기일식. <사진=책 본문중>
빛은 우리를 기이한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사진은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촬영된 개기일식. <사진=책 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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