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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 10주기… "연구자의 길, 화려함이나 안이함 찾지 말라"

[가상인터뷰]故 최형섭 전장관 "부단히 지식 쌓고 국가에 기여해야"
"과학기술 발전위해 '아는 교육'에서 '하는 교육'으로 바꿔야"

<고 최형섭 박사의 10주기를 맞아 가상인터뷰를 준비했다. 기사는 고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일부 대화내용은 현실에 맞게 첨삭했다.>

故 최형섭 박사.<사진=KIST 제공>

"과학은 조국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자기 조국에 명예를 바칠 수 있는 과업에 전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연구하는 사람의 성실하고 올바른 사고와 자세, 행동을 주축으로 하는 연구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언제나 첫 새벽이 될 때까지 그의 실험실은 불이 꺼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회고록 제목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 붙여졌다.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늘 훌륭한 연구는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겠다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후배 과학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최 전 장관은 인터뷰 중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았다. 고령에도 깔끔한 흰 색 셔츠와 자주빛 넥타이, 스트라이프 양복이 멋지게 잘어울리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이겨온 강직함과 온유함이 함께 묻어나왔다.

최 장관의 회고대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 결과는 일목요연하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과학기술계의 다양한 연구 성과로 국가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1960년대 초 한국의 과학기술에서 불과 4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금도 과학기술인들의 열정과 의지는 세계 최고를 향해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짧은 기간 내 이룩한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현재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 장관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세우고 초대소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오늘을 구축했다.

연구의 자율성과 초기 연구환경 조성, 해외 과학자 영입 등을 통해 국내 과학기술 발전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과학기술처 장관 재임 기간 중에는 기술개발촉진법, 기술용역 육성법 등 관계법령 제정을 통해 과학기술개발의 기반을 튼튼히 다져온 과학계의 '큰 별'이다.

과학기술계의 주요 현안들이 국가적 이슈로 떠오르고, 이에 따른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요즘, 국가 경제, 산업 발달의 산증인이자 오늘날 과학기술의 기틀을 마련한 최형섭 장관을 만나 미래의 핵심, 과학기술계의 발전과 위상확립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최 장관은 "연구자들이 늘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연구자는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스스로 정신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일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자들은 끊임없는 창의와 밤잠 안자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개인의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겨 스스로 새벽녘까지 연구소의 불을 밝히며 진리를 탐구해온 연구자이자, 한국 과학발전의 기틀을 잡은 정책가, 국가 과학기술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인 최형섭 장관. 그의 연구 인생은 오늘날 대한민국 과학계 젊은 종사자들의 거울이 되기에 충분하다.

Q. 최 전 장관은 남다른 카리스마와 열정, 추진력으로 대한민국 과학계를 일궈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터인데.

<사진=KIST 제공>

A.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시작하긴 했지만 KIST를 설립해 오늘날과 같이 자리를 잡게 했고,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현실화했다. 특히 연구의 생활화, 과학기술의 국제적 협력기반 마련, 산학협력, 과학교육 의식 개혁을 위해 많이 고민했다.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저해요인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동시에 국가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해결책이 바로 과학기술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과학기술이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결실을 맺을 수 있기만을 바라며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과학기술정책 설정과 개발 계획에 참여해왔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해왔다. 과학기술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1960년대부터 국가 과학기술정책 설정과 개발계획에 참여했으며,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많은 과학자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가야할 길도 멀다. 과학기술과 더불어 겪어온 모든 경험과 교훈들이 한국 과학기술의 장래를 책임질 후배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Q. 최근 과학기술계에 여러가지 이슈가 점철하고 있다. 많은 변화 속에서 연구자들이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A. 연구하는 사람이 가는 길은 화려하거나 안이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도 안된다. '돈'을 번다는 것과 '연구'한다는 것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중간하게 연구하며 돈도 벌어보자고 하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연구는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겠다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나온다.

미국의 과학자 윌리엄 쿨리지 박사는 최초로 X선 장치를 발견한 사람인데 이 발명을 도입한 전기기기 제조업체 GE사가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당시 GE사는 쿨리지 박사의 공을 생각해 그에게 당좌수표를 백지로 위임해 마음껏 쓰게 했는데, 그는 대학교수들이 받는 최소 봉급만큼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연구자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의 직책에 충실해야 하며, 시간 관념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 자세가 생활이 되어야 하며, 학문에는 종점이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학문을 하는데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지식보다 앞서 검소, 근면, 겸손, 성실, 의욕과 열의를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겸손한 연구자는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신념을 고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부단히 새로운 지식을 쌓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나가야 할 것이다.

Q.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세계를 앞서나가기위해 지금 이 시점에서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A.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모방의 단계에서 벗어나 창조의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모방에서 벗어나 개량을 하려면 역시 창의력이 필요하며, 창의력을 발전시키려면 기초과학 육성과 기초연구의 강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산·학·연이 협동하는 일괄 연구개발은 필수적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를 하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기업에 공헌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연구는 학구적인 것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야 한다. 연구하는 사람도 이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이와 다르다. 공부한 사람들, 특히 외국에서 학위를 딴 사람들은 역시 학구적인 것을 좋아한다. 초창기 연구소의 경영진들은 이러한 사회의 요구와 연구원의 대응을 현실에 맞게 조화시키는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Q. KIST 초대 원장으로 한국 과학계의 초석을 다져왔다. KIST를 설립하게 된 계기, KIST의 설립 방향, 초기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무엇이었는가.

 

(좌)1966년 2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최형섭 박사에게 KIST 초대소장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우)KIST 초창기 연구원들.<사진=KIST 제공>

A. KIST의 설립 목적은 학문을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학문을 토대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 특히 공업화와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KIST 설립 이전에는 우리나라 산업계에 R&D라는 인식 자체가 결여돼 있었고, 공업화에 따르는 공장건설과 이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KIST 초대 소장으로 임명됐지만 돈도 없고, 직원도 없고 막막했다. 파리가 들끓고, 칸막이도 없어 처량한 은행 2층 사무실에서 초라하게 집무를 시작해야 했다. 파리가 들끓는 곳에서 도저히 외국 손님을 맞을 수 없어 종로에 있는 기독교 청년회 사무실로 옮겨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때였다. 그래서 설립초기의 핵심과제는 '어떻게 하면 산업계와 연계를 갖도록 할 것인가'였다. KIST 창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기술다운 기술도 없었고, 업계에서도 연구보다는 현장 기술지도자를 더 선호했다.

과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는, 사람들이 나를 'KIST 장관'이라고 불렀다. 장관실 문을 열어놓고 연구소의 연구실장이나 대학 교수가 쉽게 출입하며 상의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기처 관리들의 불만이 팽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기처에서 일하는 목적은 과학기술행정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많이 배출되는 바탕을 만들어주고 이들이 불철주야 연구에 전념해 성과를 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을 지원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특히 초반에 해외 과학자 유치를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고국 근대화를 위해 나와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의 옥토를 버리고 척박한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 과학발전에 온 몸을 던졌다. 이것이 결국 한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이들에게는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연구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한편, 사회적 인식도 높아지자 연구원들이 보람을 느끼면서 아주 열심히 일을 했다.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고 불리기도 했다.

Q. 한국의 과학기술개발 성공사례를 모델로 삼기위한 개도국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A. 과거 우리나라도 미국 등 선진국의 도움을 받았다. 타이,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정치학·사회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동남아시아 각국은 과학기술 개발 추진을 위해 한국을 모델로 삼고자했다. 한국의 성공사례가 그들에게도 적합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과학기술 자문을 시작한 것은 1981년 3월 타이에 가서 과학기술 개발계획안을 마련해준 것을 시작으로 1991년 7월까지 10년 동안 해외에 나간 것이 무려 65회나 된다. 평균 1년에 6회 이상 나간 셈이다.

과학기술 정책 밑 전략에 대한 국제 회의를 주재하기도 하고, 초청강연과 기조연설, 기술자문, 과학기술 정책 수립 및 계획 작성의 지도 등을 맡아서 해왔다.

나는 한국에서 스파르타식으로 일을 추진해나갔다. 우리나라 사례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개발정책을 어떻게 수립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에 옮겼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공업화를 위한 기술개발대책, 과학기술 인력양성방안, 과학기술을 뿌리내리기위한 풍토조성방안, 과학기술진흥법 등에 조언을 해줬다.

이후 중국과 중동,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기술협력도 이어졌다. 한국의 개발 모델은 당시 큰 이슈가 됐었다. 만일 일이 잘 안되면 우리나라 체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라 제대로 된 것을 남기기위해 전력을 다했다. 매일 여러 차례 이어지는 강연들로 때론 고단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험을 애써 들으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열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Q. 생활 속의 과학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관심이 요구되는가. 과학정신의 국민의 생활방식, 의식구조에 자연스럽게 흡수돼야 할 것 같은데.

A. 매년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과학기술 관계 유관기관과 단체들의 협조를 얻어 범국민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전 국민의 과학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과학화 습성을 익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과 과학교육, 사회환경 교육 등을 통해 어린이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합리화하고 과학화하는데 주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면 과학을 '아는 교육'에서 '하는 교육'으로 바꿔야 하며,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자격을 따는 교육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지속적 공감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Q. 국가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과학 역사의 시작점을 열었고, 현장을 지켜봐왔다. 앞으로 연구자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나, 미래를 이끌어나갈 주인공들에게 당부를 한다면.

A. 국가를 이끄는 핵심도, 연구 생산성 향상의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요소도 곧 사람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과학기술인들이 으뜸이라는 이야기다. 국가는 이들에게 자율성을 주고 연구에 지장이 없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통제'가 아닌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단 후배 과학자들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후배 과학자들이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국가 발전과 연구에 매달려왔다. 이와 같은 스스로의 다짐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오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요, 지침서이기도 하다. 늘 마음속에 새기며 고민했던 당부의 이야기를 후배 연구자들도 꼭 가슴에 새기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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