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과학이 빛나는 밤에(추수밭 刊)'
초등학교 교사가 제공하는 과학상식·과학비타민

문과생이었던 만큼 수학을 잘 했을 리 없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나마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수학 때문이었다." 결코 수학 점수가 좋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어(점수는 차마 공개하기 곤란하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을 뿐이다. 어찌됐든 수학 덕분에 그럭저럭 대학을 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 수학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야 할까? 나를 외면하지 않았던 과목에 대한 '의리'? 가끔 수학 관련 교양서를 읽었다. '축구공 위의 수학자(강석진)'나 '수학의 몽상(이진경)'이 그런 책들이다. 물론 삼각함수와 미적분은 나오지 않는다. 수학공식이 가끔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읽으면 되는 문구'였다. 만약 '수학의 정석'으로 미적분과 씨름하고 있던 시절, '수학의 몽상'을 읽었더라면 수학이 좀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그렇게 수학을 다시 만났듯 가끔 과학 교양서를 통해 과학도 재발견한다. 몇몇의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과학은 '블랙홀'이었을 것이다. 그저 실험실 속의 다른 이야기이거나. 다행스러운 일은 이런 과학 교양서들이 더 자주, 더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 과학적 깊이나 출간 의도에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책들도 있지만, 과학 교양서가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꽤 두툼한 책 한 권이 회사에 도착했다. 인천 부평초등학교 이준호 교사가 쓴 '과학이 빛나는 밤에'다.

저자 이름은 초면인데 제목은 왠지 구면이다. 궁금증은 그의 이력을 보고 풀렸다. 저자는 팟캐스트에서 책과 동일한 제목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 고백하지만 그의 팟캐스트 방송을 제대로 들은 적은 없다. 과학 분야 팟캐스트를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하고 '제목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게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두툼한 책으로 다시 만날 줄이야. 다시 검색해보니 '과학이 빛나는 밤에'는 과학분야 팟캐스트 4위(안드로이드용 팟캐스트 앱 기준)에 올라 있다. 첫 방송은 2012년 9월 4일부터 시작됐는데 이미 100회가 넘었다.

저자는 '과학 비타민'을 강조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소식을 자주 접한다. 중력파가 빅뱅이론의 결정적 증거라고 하고, 운석의 가치가 천문학적이라는데 도대체 왜?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데 막상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밤눈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일종의 상식 권장량인 '과학 비타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이런저런 비타민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정량의 '과학 비타민'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초등학교 교사 신분이면서도 과학상식 관련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책까지 펴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저자는 "평생 권장량의 과학상식을 부담 없이 섭취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1장 '거대한 폭발 이후 단 1초 동안 벌어진 일'에서 소개되는 뉴턴의 중력 법칙(사진 가운데)과 중력이 작용할 때 공간의 형태(오른쪽). <사진=책 본문중에서>
1장 '거대한 폭발 이후 단 1초 동안 벌어진 일'에서 소개되는 뉴턴의 중력 법칙(사진 가운데)과 중력이 작용할 때 공간의 형태(오른쪽). <사진=책 본문중에서>

하루나 1개월, 1년도 아니고 평생 권장량이라니. '욕심도 많다'며 책을 펴보니 과장은 아니었다. 천체물리학부터 최근의 뇌과학, 우주의 역사부터 과학의 역사까지 그가 제공하는 '과학 비타민'은 종류도 양도 엄청나다. '권장량'은 욕심이 아니라 오히려 겸양이었다. 평생 이 정도 과학상식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었도 과학자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천천히 섭취하자고 권한다. "'과학을 알면 세상이 달라보인다'는 권유는 물정 모르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중략)때로는 낯선 곳과 맞닥뜨려 당황하기도 하고, 간혹 완만한 경사가 갑작스레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함께 가다 보면 어느덧 작은 봉우리 위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감춰진 세상의 아름다움을, 멋진 풍경과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아름다운 풍경들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밝혀낸 미지의 세계들이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1930년대 은하단을 관측하다가 은하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밧줄로 연결된 것처럼 은하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는 텅 비어있는 게 아니라 뭔지 모를 수수께끼의 물질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또 지구자기장은 불안정하다. 지금도 자기상의 북극은 해마다 20km의 속도로 서쪽으로 이동하고 5%씩 약해진다. 지구가 튼튼한 자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불안정할 수는 없다. 액체의 대류에 의해 생기는 자기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54년 캐나다의 제임스 울즈 연구팀은 쥐의 뇌에 전극을 연결했다. 전극에 꽂힌 부위는 쾌락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는데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쥐는 밥도 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스위치만 눌러댄 것이다. 인간에게도 이런 부위가 있다. 뇌의 깊숙한 중심부에 위치한 '축핵'이다. 이와 함께 케플러는 16년 간의 연구 끝에 지구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 때부터 행성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설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깨지고 천문학 혁명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아인슈타인의 결정론은 양자물리학에 의해 뿌리부터 흔들린다. 우주는 질서도 아니고 혼돈도 아니고 괴상한 짬뽕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아름답고 완벽한 수학적 질서, 그 자체인 우주가 더렵혀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런 게 물리학이면 차라리 구두 수선공이나 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솔베이 학술회의에서 반격을 개시한다.

이처럼 책은 천체물리학과 생물학, 지구과학, 화학, 뇌과학 등 그동안 분야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과학상식을 날줄과 씨줄처럼 엮었다. "이 책을 읽으면 과학이 달라 보인다. 과학이 달라 보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저자의 호언장담처럼 이 책을 읽으면 '과학이 달라 보일지'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과학이 달라 보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에는 기꺼이 동의한다. 비타민 A가 눈을 맑게 하는 것처럼 '과학 비타민'도 분명 세상 보는 눈을 환하게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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