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⑨]관료 출신 곳곳에 …끊이지 않는 '낙하산' 논란
신생기관·사업단·센터·감사 등에도 포진…'원전 마피아' 문제도 여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관피아' 논란이 뜨겁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정도는 덜하지만 과학기술계 역시 '관피아'의 폐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 <사진=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관피아' 논란이 뜨겁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정도는 덜하지만 과학기술계 역시 '관피아'의 폐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 <사진=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폐해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학기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기술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산하기관 규모가 크지 않고, 이권보다는 비교적 '전문성'에 무게가 실린 만큼 관피아의 폐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어느 자리는 어느 부처의 몫', '어느 자리는 퇴직관료가 2~3년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오래된 관습은 과학기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본지는 과학기술 분야의 '관피아' 실상을 집중 진단한다. [편집자 주] 

#1.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A기관. 지난해 후임 기관장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적임자가 누구냐'가 아니라 '어느 부처 출신 관료가 올 것이냐'가 논란이 된 것이다. 이 기관은 미래부로 소관이 바뀌었지만 역대 기관장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2. 미래부 산하의 또 다른 B기관. 역시 '적임자' 보다는 '적당한 퇴직(혹은 퇴직을 앞둔) 관료'가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이 기관의 경우 '고유업무와 특성'을 이유로 미래부 관료 출신이 기관장으로 오는 것이 관례였다. 

#3. 과학기술계 C단체는 의례적으로 관료 출신이 사무총장을 맡는다. 이전에는 과학기술부, 최근에는 미래부 출신 관료가 부임하면서 '관료의 자리'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미래부 산하 D기관은 아예 고위관료들이 10년 넘게 돌아가며 기관장을 맡고 있다. 이 곳 역시 현직 관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A, B기관의 기관장 선임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논란 끝에 A기관은 미래부 관료 출신이 기관장으로 선임됐다. 대신 B기관은 기재부에서 미래부로 옮긴 관료가 기관장으로 임명됐다. 해당 기관과 과학기술계 안팎에서는 "부처간에 조율이 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처럼 과학기술계 역시 '관피아'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여러 부처로부터 간섭을 받는다. 부처의 예산과 정책적 지원에 따라 연구개발(R&D)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차라리 한 개 부처 눈치만 보고, 한 개 부처 관료들만 상대했으면 좋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기관장 코드인사부터 퇴직 관료에 대한 전관예우, 낙하산 등 투명하지 않은 인사 관행에 따른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과학기술계 낙하산 논란은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눈에 보이는 자리보다 '안보이는 자리' 많아

미래부의 대표적인 산하기관은 출연연이다. 출연연 원장 자리에 관료 출신들이 직접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24개 미래부 산하 출연연 가운데 15개 기관장이 연구원 내부에서 발탁됐다. 나머지도 대부분 대학 교수들이다. 최근 관피아 논란의 발원지인 해수부의 경우 산하 공공기관 14곳 가운데 11곳의 기관장이 관료 출신이라는 점과 큰 대조를 보인다.

이처럼 출연연 기관장에 관료출신이 진입하기 어려운 것은 '전문성' 때문이다. 원장 선출시 해당 분야의 경력이나 연구실적, 해당 분야 기관운영이 가장 큰 지표가 된다. 관피아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으로는 적절치 않은 셈이다. 

출연연 기관장처럼 '눈에 보이는 자리'는 어쩔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는 관료들의 다양한 '재취업' 수단이 되고 있다. 

실제 올해 초 미래부 산하 출연연인 E기관의 한 사업단 사무국장에 미래부 공무원이 임명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이 자리는 교육과학기술부 시절에도 해당 부처 관료가 내려오려다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사업단 사무국장 자리는 당연히 소관부처 관료의 몫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연구노조는 "부처가 책임성을 갖고 투명하게 연구개발사업을 관리·감독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당 사업단의 연구개발 임무에 관련 부처 공무원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모르겠다. 승진적체 인사들을 출연연 감사나 사업단의 사무국장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공공기관 정상화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신설기관·연구센터·감사 자리는 대표적 재취업 자리

이렇게 논란이 불거진 것은 그나마 검증 시스템이 나름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검증 과정조차 밟을 수 없는 곳은 그야말로 '최고의 자리'로 꼽힌다.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데 새로 설립되는 기관이 대표적이다.

최근 신설된 미래부 산하 출연연 F기관에는 부처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관료 등 6~7명이 내려왔다. 행정직 책임자가 관료 출신이다.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알고, 그 기관의 출범부터 관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명분이다. 하지만 결국 올해 초 '전횡을 일삼는다'는 내용의 투서가 미래부 등 중앙에 전달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논란이 불거진 후에는 미래부가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과학기술계 인사는 "관료가 산하기관에 어떻게 재취업하는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다. 우선 이런저런 필요성에 의해 새로운 산하기관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부처 관료들이 기관 설립을 주도한다. 만들어진 뒤에는 설립을 주도한 관료나 인사적체에 의해 마땅한 자리가 없던 공무원이 그 기관에 내려온다"고 말했다. 

출연연 산하의 연구센터 등도 최근 관료들의 '관심대상'이다. 해당 분야의 연구분야 정책이나 과제, 동향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하게 되는데 사실상 부처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성격이 강하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인선해 센터를 운영한다. 그러다가 센터가 활성화되고, 나름대로 덩치가 커지고, 예산규모도 늘어나면서 관료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다. 

감사 자리 역시 관료들의 대표적인 재취업 수단이 되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이 '보은 인사'를 통해 내려오기도 하지만 반발이 심해지자 퇴직관료들이 심심치 않게 자리를 꿰차는 모양새다. 지난해 인건비를 직원 성과급 등으로 지급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돼 논란을 빚었던 미래부 산하 G기관의 감사는 여러 부처를 거친 퇴직관료 출신이다.

◆그들만의 리그 '원전마피아'도 다시 도마에

'원전 마피아'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꼽힌다. 원전 마피아는 관련 부처는 물론 학계, 연구계, 사업자들이 연결된 거대한 고리다. 지난해 불거진 원전 비리와 관련돼 기소된 피고인은 200여 명에 육박한다. 원자력과 원전을 둘러싼 구조적인 비리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원전 마피아는 일반적인 관피아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전문성이 더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외부에서의 진입이 어렵고, 내부적으로는 더 공고하게 연결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 내부에서도 만약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세월호 참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섞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원전 사고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국내 원자력계의 폐쇄적인 유착관계 때문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유승희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 9곳 중 8곳의 감사가 대부분 관료 출신으로 이뤄져 있어 사실상 출연연이 낙하산 관료들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며 "심지어 안전행정부, 해양환경 분야, 교육 분야 등 과학기술과 거리가 먼 분야의 경력을 가진 감사들도 있다. 과학기술인이 아닌 관료 출신이 임명된 것은 전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관료·부처 중심의 과학기술에서 벗어나야"

이처럼 과학기술계가 관피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관료 중심, 부처 중심이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정책과 방향 수립부터 예산책정, 지원, 관리가 모두 소관 부처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예 관련 부처 관료가 조직에 있는 것이 일하는데 편한 면도 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출연연 관계자는 "현재의 과학기술계 상황에서 무조건 관료 출신이다, 아니다라는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일부 불가피한 면이 있다면 결국 '인물'과 '능력'으로 평가하는 시스템과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관료출신이라고 무조건 거부할 수 없겠지만 관료출신이라고 무조건 용인된다는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과학기술계 원로는 "비단 관료사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전문성도 없는 관료들이 '전문적인 자리'까지 차지하는 것은 분명 문제지만 전문성을 갖췄다고 퇴직 후에도 계속 '자리 욕심'을 내는 사람들도 문제"라며 "관피아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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