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⑥]사고 해역 바다 위 '이어도호·장목1호' 직접 타보니
재난 상황시 과학기술 중요성 실감

오전 7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들이 있는 팽목항을 지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있는 서망항으로 향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서망항에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팽목항이 실질적인 항구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도 VTS를 보자 세월호 사고 초기 어른들의 무능함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10여분을 기다렸을까, 멀리서 서망항으로 한 척의 배가 들어왔다. 그리 크진 않지만 날렵한 움직임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배의 앞부분에는 장목1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어도호와 함께 조사 중인 장목1호. 40톤급 장목1호는 높은 기동성으로 사고 해역 주변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이어도호와 함께 조사 중인 장목1호. 40톤급 장목1호는 높은 기동성으로 사고 해역 주변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원장 강정극)의 연구선인 장목1호는 사고 당일 곧바로 진도로 급파됐고, 줄곧 사고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덕넷은 사고 해역에서 지원을 맡고 있는 장목1호와 이어도호에 직접 승선해 그들의 치열한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 바다의 정확한 정보는 구조작업 기초자료로 활용 

장목1호에 오르자 최동림 해양과기원 남해연구소장이 반겼다. 그 뒤로 정섬규 해양방위센터 박사와 박요섭 박사가 있다.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취재팀과 연구원들이 들어가자 순식간에 배 안이 가득차버린다. 3~4명이 서기에도 부족하지만, 이 연구실이 장목1호의 가장 중요한 공간.

장목1호의 멀티빔을 이용한 지층탐사기로 조사한 사고 해역 자료. 실시간으로 조사한 자료는 정확도를 높이는데 활용된다.
장목1호의 멀티빔을 이용한 지층탐사기로 조사한 사고 해역 자료. 실시간으로 조사한 자료는 정확도를 높이는데 활용된다.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와 노트북에서는 쉴 새 없이 자료가 오르내린다. 배 아래 장착된 멀티빔 지층탐사기로 배가 지나가는 해역의 수심과 지형, 조류 등이 실시간으로 파악된다.

최동림 소장은 "해저지형과 깊이를 음파를 이용해 분석하고 있다"며 "측면과 평면 등 다양한 각도로 해저를 탐사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말했다.

기계가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장비 조작과 수집된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맵핑하는 것은 연구원의 몫이다. 완벽하게 지형을 그리고 분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해저 조사 장비를 이용해 연구원 창업까지 한 박요섭 박사는 해저장비 관련 연구에서 최고로 불린다고 한다. 그는 "장비를 정확하게 큐레이션하지 않으면 부정확한 데이터를 얻게 된다"면서 "지금 바닥에 가라 앉은 세월호의 모습을 분석 중이며 이는 구조 작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정보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요섭 박사가 장목1호의 멀티빔 지층탐사기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모니터에 나타난 색깔은 수심을 나타낸다.
박요섭 박사가 장목1호의 멀티빔 지층탐사기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모니터에 나타난 색깔은 수심을 나타낸다.

수심이 평균 40m인 사고 해역의 정확한 조사는 구조작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몰한 세월호의 정확한 위치와 모습을 구조대원에게 전달하는 것은 빠른 조류와 시야 확보가 어려운 해저 상황에서 수색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는 기초 정보가 된다. 사고 해역에 정박한 바지선의 위치도 이런 데이터를 통해 결정됐다.

해양과기원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 긴급회의를 열어 장목1호와 이어도호의 파견을 결정했다. 강릉에 있던 장목1호는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고, 서해에 있던 이어도호도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진도로 향했다. 지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장목1호와 이어도호는 50여일을 머물며 현장 수습을 지원했다. 

최 소장은 30년을 바다 연구에 몸바쳤다. 정 박사와 박 박사도 모두 20년과 10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장목1호에 실려 있는 포터블 연구장비.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게 바다를 조사할 수 있다.
장목1호에 실려 있는 포터블 연구장비.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게 바다를 조사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상 위의 작업은 쉽지 않다. 끊이지 않는 파도 여파로 하루가 지나면 녹초가 된다. 그만큼 바다 위의 연구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더 오래 연구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했다.

정 박사는 "한시라도 빨리 더 정확한 데이터를 대책본부에 넘겨주고 싶다"면서 "재난과 재해 대비 그리고 대책 마련에 과학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장목1호의 연구현장을 둘러보는 사이 어느새 이어도호에 도달했다. 연구원들은 장목1호에 비하면 이어도호는 호텔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 "일년이 450일이었으면..."

이어도호에 승선하자마자 취재팀은 음식재료 중 하나인 진도의 '대파'를 승조원들에게 건넸다. 배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이어도호에서 식재료가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전국적으로 이름난 진도의 대파를 가져갔다. 한 연구원은 "배 위에서 가장 많이 먹는 것이 라면이라 파도 많이 넣어 먹는다"며 웃어넘겼지만 바다 위 연구현장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양과학기술원의 이어도호. 640톤급 이어도호는 해양조사선으로 수심 6000m까지 조사기기를 인양할 수 있는 대형 윈치를 탑재하고 있으며 30여 명의 연구원과 승조원히 탑승하고 있다.
해양과학기술원의 이어도호. 640톤급 이어도호는 해양조사선으로 수심 6000m까지 조사기기를 인양할 수 있는 대형 윈치를 탑재하고 있으며 30여 명의 연구원과 승조원히 탑승하고 있다.

이어도호에 승선하자 가장 먼저 안전교육이 이어졌다. 취재팀도 승객으로 분류돼 철저한 안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세월호도 승선 당시 보다 철저한 안전교육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더해졌다.

640톤급인 이어도호는 장목1호에 비하면 매우 크다. 30여 명의 승조원과 연구원이 지내고 있으며 지난 1992년 해양조사를 위해 건조됐다. 20년 동안 우리나라 해역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이어도호는 최고 수심 6000m까지 조사가 가능하며, 해상의 연구작업을 위해 내항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설계됐다. 실제 초저속운항이 가능하며 가변 프로펠러를 달아 조종 성능도 크게 높혔다.

24일 소조기를 맞아 어느때보다 잔잔했던 바다. 이어도호에서 바라본 침몰 사고 현장. 이어도호는 사고 현장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투입됐다.
24일 소조기를 맞아 어느때보다 잔잔했던 바다. 이어도호에서 바라본 침몰 사고 현장. 이어도호는 사고 현장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투입됐다.

이외에도 수중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물체를 촬영할 수 있는 '고해상도 사이드스캔 소나', GPS의 정확도를 한단계 발전시킨 'DGPS', 해저지형 및 수심측정기, 초음파 해류계, 기상관측장비 등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런 이어도호를 향한 지원 요청은 매년 450일에 달한다. 그 가운데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매겨 연구를 진행한다.

최 소장은 "연구선의 수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일년이 365일이 아닌 450일 이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연구선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2005년 건조된 장목1호에 이어 2012년 장목2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형 선박의 필요성도 그만큼 절실한 상황이다.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은 다반사다. 김영준 해양과기원 선임기술원도 취재팀 방문 전날 한 시간의 쪽잠을 잤다고 했다.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은 다반사다. 김영준 해양과기원 선임기술원도 취재팀 방문 전날 한 시간의 쪽잠을 잤다고 했다.

이어도호에 들어서자 장목1호에 비해 넓은 연구실이 눈에 띈다. 빽빽하게 장비들이 들어차 있다. 한창 연구를 진행하던 김영준 해양과기원 연구지원실 선임기술원은 지난 밤 한시간을 잤다고 한다.

"다른 연구원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기 위해선 시간이 생명입니다. 신뢰도가 높은 자료를 대책본부에 전해줘야 보다 안전하게, 그리고 보다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어도호의 연구 장비는 쉴새 없이 바다 밑을 오간다.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쉴틈이 없다.
이어도호의 연구 장비는 쉴새 없이 바다 밑을 오간다.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쉴틈이 없다.

취재팀과 이야기를 마친 뒤 김 연구원은 곧바로 조사 장비를 바다로 내리기 위한 채비를 했다. 실시간으로 조사되는 해저의 자료 외에도 유속이나 수질, 수온 등도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 과학이 재해 재난 대처에 앞장서야

바다는 여전히 밝혀진 곳보다 미탐사 지역이 많다. 정확한 해저지도가 갱신된다면 무한한 자원을 가진 바다를 활용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재난·재해 상황에서 큰 빛을 발휘할 수 있다.

부표가 떠 있는 곳이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 24일 유속이 느려진 소조기라 파도가 잔잔해 보이지만 바다 속 상황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부표가 떠 있는 곳이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 24일 유속이 느려진 소조기라 파도가 잔잔해 보이지만 바다 속 상황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과학이 긴급상황에서 앞서 움직이고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고 연구원들은 입을 모았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크랩스터(Crabster)도 해양과기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해저탐사형 로봇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분명 국가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최 소장은 "재해대책본부에 장목1호와 이어도호가 사고 해역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며 "과학 기술의 발전은 국가를 위해 사용돼야 하고 이런 움직임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도호 복도에 붙어 있는 현장대응 자료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조사하고 이를 사고대책본부와 공유하고 있다.
이어도호 복도에 붙어 있는 현장대응 자료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조사하고 이를 사고대책본부와 공유하고 있다.

통곡의 바다 위 연구현장은 말 그대로 치열했다. 따가운 햇살에 모두들 시커멓게 그을렸고, 며칠동안 깎지 않은 수염에서 그들의 피로감이 한눈에 느껴졌다. 비록 하루 정도의 짧은 동행이었지만 그들도 사고 현장에서 누구보다 큰 열정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이어도호에서 내려 팽목항으로 들어서자 다시 가슴 아픈 사연들이 곳곳에서 전해진다. 앞으로 이런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가 이뤄지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과학의 미래에 그 답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팽목항에는 희망의 메시지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온국민의 바램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팽목항에는 희망의 메시지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온국민의 바램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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