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김두식 형제 교수의 대담집 '공부 논쟁'
노벨상·이공계 기피·국내 과학풍토 신랄한 비판

대담을 나누고 있는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왼쪽)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책 본문 중>
대담을 나누고 있는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왼쪽)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책 본문 중>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 눈치를 챈 것은 전작 '욕망해도 괜찮아'에서였다.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 등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법학자 김두식 교수는 이 책에서 형 얘기를 꺼냈다. 

"지나치게 규범적이어서 좀처럼 '선'을 넘지 못하는 제 삶은 이런 형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매사에 정확히 반대이기 때문입니다(중략). 형은 일탈자로, 저는 도덕적 감시자로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범생이었던 동생에게 형은 "언제나 시한폭탄 같았고, 전략전술이나 동지도 없었으며, 누구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아무 데나 글을 썼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 형을 언젠가 '커밍아웃'시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동생인 김두식의 글은 궁금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고, 동생이 소개하는 형은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방법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예 형과 함께 책을 펴낼 줄이야(나같은 독자가 적지 않았을테고, 출판사 편집자가 그것을 놓칠 리 없다).

'공부 논쟁(창비 刊)'은 괴짜 물리학자인 김대식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삐딱한 법학자인 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형제의 대담집이다. 주로 '삐딱한' 동생이 묻고, '괴짜' 형이 답한다. 자신의 생각은 이미 여러 기회를 통해 밝혔으니 형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동생의 배려가 엿보인다.

제목만 보고 '공부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나 '우리 아이 우등생으로 만드는 비법' 정도를 기대했다면 책을 그냥 덮는 것이 좋겠다. 그런 내용은 없다. 

형제가 확대경을 들이댄 곳은 대학, 특히 이공계와 과학기술계다. 노벨상을 배출할 수 없는 시스템,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대학사회, '비과학적'인 국내 과학풍토와 영재교육 등을 정면으로 다뤘다. 과학자와 법학자의 간극 만큼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지만 형제가 내린 결론은 같다.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형 김대식 교수는 '괴짜 과학자'로, 동생 김두식 교수는 '삐딱한 법학자'로 불린다.
형 김대식 교수는 '괴짜 과학자'로, 동생 김두식 교수는 '삐딱한 법학자'로 불린다.

대한민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 '15대0'이라는 참담한 패배를 안겨준 일본의 비결은 국내 박사를 우대하는 임용 시스템에 있다. 실제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15명 가운데 13명은 일본 내 박사다. 일본은 자기 연구실 출신 박사 가운데 제일 잘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는다. 이른바 '동종교배(inbreeding)'다.   

김대식 교수는 돌직구를 던진다. "서울대 출신들끼리 똘똘 뭉친 엉터리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결된 제대로 된 동종교배가 필요합니다(중략). 우리나라에서는 동종교배라는 말이 주로 국내 박사를 교수로 안 뽑는 정당화 근거로 활용됐어요. 학생들을 대학원생으로 뽑아 박사학위는 계속 주면서, 막상 교수 뽑을 때가 되면 해외유학 박사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해요. 꼬드겼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공계 위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공계 위기의 핵심은 전교 1등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를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교 1등'이 이공계를 지원한다고 훌륭한 과학자나 공학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학생이 아니라 교수가 문제다. 전에는 전교 수석을 신입생으로 받았는데 지금은 그게 안되서 교수들이 안타까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공계 위기론에는 자기 명예를 걱정하는 교수의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엘리트주의에 불을 지핀 또 다른 고정관념은 '1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주장이다. 형제는 결코 동감하지 않는다. 발견이나 발명의 일반적인 실상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엘리트주의에 물든 우리의 대표적인 오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우연성'에 기초하는 과학에서는 10억원을 1명에게 몰아주는 것보다 10명에게 1억원씩 나눠주는 게 더 필요하다. 

저자 김대식·김두식 교수와 책 표지(오른쪽).
저자 김대식·김두식 교수와 책 표지(오른쪽).

저자들은 이제 '진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과학분야에서는 '장원급제DNA'가 아니라 '장인DNA'를 가진 사람들이 우대받아야 한다. 김두식 교수는 "장원급제한 선비가 영의정을 꿈꾸는 것처럼 그런 과학자들이 인생의 후반부에 장관, 총리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과학분야까지도 장인DNA가 아니라 장원급제DNA를 가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둘은 다르면서도 꽤 닮았다. 괴짜 과학자인 형 김대식 교수는 젊은과학자상, 서울대 학술연구상, 한국과학상을 수상한 동시에 국내 포경수술의 실태를 고발한 논문으로 국제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공직에 출마하는 선배 교수의 휴직기간 연장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골칫거리' 교수다.

삐딱한 법학자인 동생 김두식 교수는 검사로 임용됐지만 사표를 던지고 유학가는 아내를 따라 외국으로 갔다. 한국 법조계의 실상을 파헤친 '헌법의 풍경'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그는 이제 본업보다 글쓰기에 더 열심이다. 둘 모두 자기가 속한 곳으로부터의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하지만 둘은 사실 철저히 '주류'다. 명문대를 나오고 해외유학도 다녀왔으며, 무엇보다 대학 교수다. 이과와 문과에서 각각 최정상에 길을 밟았다. 뼛속까지 엘리트인 그들이 '엘리트의식'을 비판하고 나섰으니 '누워서 침뱉기'라는 비난도 들을 것 같다.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들은 영락없는 '용감한 형제'다.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그래도 다른 길이 있다' 등 김두식 교수의 책은 꽤 여러권 샀다. 주로 선물용이었다. 책을 덮으면 주고싶은 사람이 떠오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공부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지인이 한 명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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