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경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토종 동굴전문가가 밝혀낸 고기후의 비밀…기후변화 연구의 폭 확장
급변하는 기후…인류재난 대처 위한 국제 공동연구 필요

며칠 동안 깎지 않아 덥수룩해진 수염. 불그스름하게 충혈된 눈. 티셔츠 하나 걸친 편한 옷차림. 

'인디아나 존스'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조경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첫 인상은 영락없는 탐험가였다. 그의 모습에서 탐험가의 대명사 '인디아나 존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 강원도 지방대생, 토종 동굴박사 '고기후 전문가'로

영락 없는 탐험가의 모습을 보여준 조경남 박사. 토종 동굴박사인 그는 기후변화 연구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영락 없는 탐험가의 모습을 보여준 조경남 박사. 토종 동굴박사인 그는 기후변화 연구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조경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명 '동굴 박사'다. 그는 강원도에서 모든 학위를 받았고, 대학 1학년 시절부터 동굴탐험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지난 20년 동안 강원도에 있는 동굴은 거의 다 가봤다. 지금까지 가봤던 동굴이 얼마냐 되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동굴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동아리 시절부터 꾸준히 다녔는데 200개까진 세어본 것 같아요. 그 이후론 세어보지 않았습니다. 항상 동굴에 갔다오면 기억에 오래 남아요. 동굴 안에서 먹고 자기도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죠."

일반인들에게 동굴은 무서운 공간이다. 어두운 동굴 안을 생각하면 공포심부터 생긴다. 실제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동굴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다.  

"동굴안은 습도가 100%에 달해요. 저체온증에 걸리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좁은 곳에 끼어 꼼짝 못한 적도 있고, 3~4m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동굴에 들어가면 밖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동굴을 계속 찾을 수밖에 없죠."

동굴에 대한 무한 애정과 관심은 그를 동굴 박사의 삶으로 이끌었다. 동굴에서 고기후를 연구하던 중 그는 결국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아열대와 열대 기후에서만 발생한다고 여겨지던 '시소현상'이 우리나라가 속한 온대기후, 그리고 중위도 지방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열대와 아열대 지방은 상대적으로 강한 태양에너지를 받게되는데, 여기서 발생한 열에너지는 에너지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를 시소현상이라고 한다. 이 시소현상은 지금까지 열대와 아열대에서만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조 박사는 이 시소현상이 온대기후에서도 발생한다는 증거를 동굴에서 찾아냈다. 동굴 안 종유석과 유석(동굴 벽면에 남아있는 흔적)을 채취, 이 시료들의 연대를 측정하고 기후변화의 모습을 찾아냈다.

조 박사는 아열대와 열대 기후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진 시소현상이 온대기후 지역에서도 발생했다는 증거를 밝혀냈다.
조 박사는 아열대와 열대 기후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진 시소현상이 온대기후 지역에서도 발생했다는 증거를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앞으로 기후변화 연구의 폭을 크게 넓혀주는 단초가 된다. 에너지의 이동 현상이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과거 55만년 북반구-남반구 중위도 지역의 수리학적 변동(Mid-lattitudinal interhemispheric hydrologic seesaw over the past 550,000years)'이라는 제목으로 네이처에 등재됐다. 국내 연구진의 기후변화 연구결과가 등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특히 상대적으로 분야가 생소한 지질분야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 기후변화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 

동굴에서 고기후의 흔적을 쫓아 다니는 조 박사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기후는 말 그대로 오래전 기후를 연구하는 분야다. 이 고기후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 기록에서 앞으로 다가올 기후변화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기후현상에는 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 흑점의 주기는 11년이고 엘니뇨는 4~7년을 주기로 돌아옵니다. 이 주기를 파악할 수 있다면 기후변화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의 백룡동굴에서 석순과 유석을 조사 중인 조 박사.
강원도 평창의 백룡동굴에서 석순과 유석을 조사 중인 조 박사.

기후변화를 예측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난이다. 태풍이나 폭우, 기온변화 등은 인간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몇 년 전 서울에 폭우가 내렸을 때 한 기상예보관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상관측 이래로 보유한 데이터에서 이런 특수한 현상을 예측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후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선 자료를 모으는 것이 필수입니다."

올해 초 강원도에 내린 폭설도 기상 관측 사상 유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지구의 역사에 비춰보면 우리가 기후변화를 기록한 100년 남짓한 기간은 너무나 짧다. 해외 기후변화 자료 조사의 역사도 길어야 200~300년 사이라고 한다. 그 속에서 일반적으로 긴 주기를 가진 기후변화의 데이터를 뽑아내기란 쉽지 않고 자료의 양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고기후에 대한 연구다.

그는 "기후변화는 결국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 먹거리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며 결국 문화의 변형을 가져온다"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기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국제적인 연구가 필수다. 이번 연구도 해양수산부(장관 이주영)와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원장 임광수)의 지원 아래 대규모 국제 시추프로그램인 IODP(국제해양탐사프로그램, International Ocean Discovery Program)를 통해 진행됐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내의 지속적인 연구는 물론 IODP와 같은 대규모 국제 공동연구가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
 
◆ 기후변화 표준 데이터 구축이 목표

동굴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조 박사.
동굴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조 박사.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몇 번의 태풍을 경험하게 될까. 조 박사는 이와 관련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와 관련된 자료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 세대 혹은 일생동안 겪는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는 것은 앞으로 연구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Intergoverment Panel on Climate Change)는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3.7℃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변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빙하기와 간빙기는 지구 역사에서 계속 있어왔습니다. 지금의 간빙기가 지나면 언젠가 빙하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알 수 있다면 대비할 수 있습니다."

기후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이 변화를 예측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변화 예측에 신뢰성을 더해줄 자료를 찾기위해 조 박사는 다시 어두운 동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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