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수리공이었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어 내기까지 1000번이 넘는 실험을 통해 유인동력비행기를 만들었다. 저자는 라이트 형제에게서 '엔지니어'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 <사진=책 본문 중>
자전거 수리공이었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어 내기까지 1000번이 넘는 실험을 통해 유인동력비행기를 만들었다. 저자는 라이트 형제에게서 '엔지니어'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 <사진=책 본문 중>

하늘을 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꿈이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받던 새뮤얼 랭글리도 이 꿈에 도전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7년 동안 유인동력비행에 필요한 엔진 개발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론에만 집중했고 실험에는 소홀했다. 결국 1903년 10월 7일과 12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실험을 시도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9일 후인 12월 17일, 두 명의 자전거 수리공이 '플라이어 1호' 비행실험에 도전한다. 이미 1000번 정도의 크고작은 실험을 거친 뒤였다. 날개 12m, 기체 283kg, 그리고 12마력의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이 비행기는 첫 시도에서 12초 동안 36m를 날았다. 마지막 네 번째는 59초 동안 244m를 비행했다. 인류 최초의 유인동력비행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라이트 형제였다.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물리학자이기 전에 발명가였다. 그의 첫 직장은 스위스 특허청.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뒤에도 특허와 계속 인연을 맺었다. 직접 기계장치를 발명해 특허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냉장고와 펌프, 카메라 등 특허권 수는 10개가 넘었다. 아인슈타인은 제자인 실라드르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면서 특허청 입사를 권유했다. 이런 말과 함께. "특허청에서 일하던 때가 나한테는 인생의 최고 시기였어."

'노벨상과 수리공(권오상 지음·미래의 창)'의 화두는 다소 도발적(?)이다. "과학자는 있는 것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엔지니어는 없던 것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저자는 '하나의 신화가 있다'고 말한다. 신화는 실체가 없고 사실 여부와도 관계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비슷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과학이 우선하고 기술, 공학, 엔지니어링 등은 종속되어 있다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공돌이'라는 호칭은 그 신화의 부산물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인류 최초의 유인동력비행기를 만든 것은 과학자인 랭글리가 아니라 엔지니어인 라이트 형제였다. 아인슈타인 역시 과학자이기 전에 엔지니어였다. 바퀴의 진화, 자동차의 탄생, 아폴로 11호의 비밀과 거북선의 실체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뒤에는 엔지니어가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심지어 노벨과학상을 만든 노벨도 엔지니어였다. '엔지니어링'이 세상을 움직이고 바꾼 힘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과학이 엔지니어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 과학을 이끈다."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먼 옛날 공성용 무기(왼쪽)를 만든 것도 엔지니어들이었다. 오른쪽은 책 표지.
먼 옛날 공성용 무기(왼쪽)를 만든 것도 엔지니어들이었다. 오른쪽은 책 표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엔지니어가 사라졌다. 과학자와 CEO만 남았다. 엔지니어는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과학자는 흰색 가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편견의 폐해는 심각하다.

폰 카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렸던 그는 평소 '엔지니어'를 자처했다. 하지만 1992년 그를 기념해 발매된 우표에는 그의 호칭이 '우주과학자(Aerospace Scientist)'로 기록됐다. 당연히 '과학자'라는 칭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의 편견이다. "과학자는 있는 것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엔지니어는 없던 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주인공이 바로 폰 카만이다.

마르코니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선통신을 성공시켰던 인물이다. 엔지니어링적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이론이 말하는 불가능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극복했다. 그 역시 엔지니어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에디슨과의 '전류 전쟁'에서 승리하며 에디슨의 유일한 라이벌로 기록된 테슬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명한 과학자 대부분은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들은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자로 분류됐다. 역사의 왜곡이자 그렇게 해서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지향점은 뚜렷하다. 생각을 뒤집자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을 과학보다 뒤처진 학문이라고 바라보았던 생각, 엔지니어는 단순한 기술자이고 과학자보다 낮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었던 것 중의 상당수가 '엔지니어링'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노벨상도 받을 수 있다. 구체적인 실행방법도 제시한다. 첫째 고교 교육에서 이과와 문과의 구별을 없앨 것, 둘째 초등학교 때부터 엔지니어링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할 것, 셋째 공대 정원을 지금보다 현격하게 줄일 것. 공격적인 제안으로 들리지만 오래 전부터 공감을 받아왔던 내용들이다.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자동차의 발명은 필요에 의해 발전한 엔지니어링의 역사를 보여준다. <사진=책 본문 중>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자동차의 발명은 필요에 의해 발전한 엔지니어링의 역사를 보여준다. <사진=책 본문 중>

'엔지니어링의 도움 없이는 과학도 없다', '과학은 이론에만 집착한다', '과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 '엔지니어링 도움 없이는 과학도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극단적'이다.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에서 '과학'만 강조되고 '기술'은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만 하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나라의 이공계 위기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으로 해석한다면 밑줄을 그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책에서는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경계와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불문명하다. 지금도 어떤 분야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과거에는 더욱 그랬다. 한 때 과학자가 엔지니어였고, 엔지니어가 과학자였다. 책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또 저자가 엔지니어링이 과학의 하위개념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열변을 토했듯 지나치게 과학을 엔지니어링의 하위개념으로 분류하려는 위험한 시도도 엿보인다.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자칫 '과학 폄하'로 곡해될 소지가 있다.      

랭글리는 실패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당시 뉴옥타임스는 "유인동력비행기 개발은 언젠가 가능하겠지만 100만 년 또는 1000만 년 정도는 더 연구해야 가능할 것 같다"며 그를 두둔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반면 라이트 형제는 비행성공 소식을 지역 신문사에 알렸지만 해당 편집장은 이렇게 말하며 그 전보를 버렸다. "인간은 날 수 없고,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은 묻는다.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런 선입견이 사라졌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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