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재단, 기초연구-국가전략기술 매칭 작업 논란
연구현장 '우려'…재단측 "전략과제 중 하나일 뿐"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정부로부터 기술성과에 대한 압박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던 정부가 기초연구와 국가전략기술과의 연관성 평가를 추진한 사실이 알려지자 과학기술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 관련 교수들에 따르면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정민근)은 최근 평가에 참여하는 전문위원에게 기초연구과제와 국가전략기술 120개 간 관련성 매칭·평가에 대한 문건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명 '국가전략기술-기초연구(RB) 매칭 작업'이다. 연구재단은 전문위원들에게 앞으로 기초연구 지원사업의 자료로 삼을테니, 각각 기초연구와 120개 국가전략기술과의 관계성을 1(전혀 관계 없음)부터 5(매우 관계가 크며 필수적임)까지 정량화해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이 엑셀파일에는 120개 국가전략기술의 명칭과 세부기술 등이 적시돼 있다. 또 각 기술과 관련해 세계 1위 국가 기술수준과 우리나라 기술수준의 비교 평가 정도와 경쟁력 순위, 학계의 연구비중 등이 포함돼 있다.

국가전략기술 120개 과제는 특정 과학기술 분야를 선정해 정부가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 사업성과와 개발속도가 강조된다. 때문에 현재 연구재단에서 기초연구과제를 국가전략기술과제와 매칭한다는 것만으로도 연구현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담으로 인식된다.

연구재단은 발송된 이메일 문건에서 "기초연구의 목적성과 전략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확보하고자 하는 국가전략기술 120개 각각에 대응하는 기초연구분야를 식별하고 이를 기초연구지원사업에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매칭 작업의 의미를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기초과학 연구현장에서는 당혹감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국가성장동력을 이유로 기술사업화 성과를 기초연구과제의 평가잣대로 삼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문건을 직접 확인한 P교수는 "연구재단이 창조경제와 기술사업화 정책기조에 맞춰 기초과학 연구과제도 학술 중심에서 사업화나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면서 "기초연구는 근본적으로 자연현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유용하게 쓰일 수는 있지만 기초연구의 취지가 사업화나 기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연구 수탁 또는 과제 진행 중에 국가전략기술과 관련성을 분류한다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연구현장에서는 기초과학은 공학과 달리 독립성과 다양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성과를 거두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하나의 원천기술이 큰 경제적 효과와 반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Y교수 역시 "정치적 이슈에 맞춰 기초과학 연구과제를 사업화와 연계 진행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하고 "연구재단의 과제는 학술적 비중을 높일 때 창의적 연구가 가능하다. 정말 연구과제를 국가 성장동력 연결과제에 맞춘다면 순수 기초과학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구재단 기초연구팀 관계자는 "기초연구 관련 전략연구 과제 중 하나로 검토되는 것 뿐,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기초연구에 대한 연구재단의 입장은 창의적이고 도전적 과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결코 기초연구의 방향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결국 현재 진행 중인 기초연구와 국가전략기술과의 연관성을 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연구재단은 각 연구분야에 대한 흐름도 분석하고 국가 정책방향에 맞춰 매년 시행계획을 세운다"면서 "이를 정책변화로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한 내용을 검토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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