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학계 리더에게 듣는다]한국고분자학회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R&D 드라이브 통해 연구 경쟁력 높여…"연구만이 해답, 화학연 역할 중요"

"R&D 지원체계가 변화해야 한다. 예산의 사회주의가 팽배해져있다. 모두가 똑같이 지원받는 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같이 살아보자는 식의 분배의 평등으로는 특화된 성과가 없을 수 밖에 없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의 일침이다.

그는 차별화된 기술과 제품만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계가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화학산업계에서 뼈가 굵은 허 사장은 특히 국가 화학R&D에 대해 "첨단 소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좀 더 차별화된 성능을 나타낼 수 있는 쪽으로 집중을 해야 한다"며 "어느 주체보다 화학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화학분야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산학연과의 융합을 이끌어 창조경제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해결사, 맹장 등으로 불리는 인물. 그는 실적 부진에 빠진 롯데케미칼을 일으킬 구원투수 격으로 지난 2012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롯데케미칼은 2011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1조4701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나 이듬해 영업 이익이 약 75%가 급감하면서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허 사장이 취임한 후에도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단기간에 회복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보란듯이 그의 해결사 본색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2013년 롯데케미칼은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31.1% 늘어난 4874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워낙 실적이 안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동종 업계 기업들의 실적이 대부분 악화된 것과 비교해보면 의미있는 결과다.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는 평이다.

그런 그가 국가 화학산업을 위해 화학연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허 사장은 "화학연에 대해서는 짠한 부분이 있다. 화학이라는 게 보통 제품이 나올 때 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 또 화학 쪽이 투자가 만만치 않다. IT 쪽과는 다르다"며 "오래 걸리다 보니 기업에서 화학연의 연구에 대한 부분을 함께 하기가 어려웠다. 또 정체성도 다르다. 기업은 성질이 급하다. 그래서 석유화학기업들이 직접 연구소를 운영하려는 경향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학연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된 정체성을 정립하는 게 먼저라고 못박았다. 국가에서 확실하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라는 말도 강조했다.

허 사장은 "대기업의 지원이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며 "화학 쪽은 기술 장벽도 높고, 라이센스 장벽도 높다. 하나 만들려면 투자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기업 연구소 시설이 화학연 못지 않다. 함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재산권의 문제가 생기겠지만, 논의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학연의 상황이 안타까운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그는 "화학연이 레벨이 높은 원천기술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정부에서 투자하는 연구비 규모는 커지겠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원천분야 연구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는 하나…창조적 혁신기술 뿐"

석유화학업계에서 손꼽히는 맹장으로 꼽히는 허 사장. 최근 한국고분자학회장까지 맡으며 범화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분자산업은 우리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용품과 의류를 생산하는 주요 대체소재 생산산업이며,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 나노기술(NT), 생명공학기술(BT), 환경공학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등의 첨단산업기술의 핵심 소재로도 자리잡고 있다. 다른 과학기술과 산업분야와의 융·복합기술로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창조적 혁신 소재로서의 연구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허 사장은 "세계적으로 글로벌 마켓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2014년은 본격적으로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정책에 발맞추어서 본 학회도 그에 합당한 기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사장은 1976년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롯데대산유화 대표, 케이피케미칼 대표를 지냈다. 케이피케미칼 재직 당시에는 2조원대 매출을 4조원대로 두 배 이상 끌어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와도 인연이 깊다. 그가 기업 내에서 꾸준히 R&D 드라이브를 하는 이유와도 직결된다. 5년간 대덕에서 연구소장직을 경험했던 그는 "세계적으로 글로벌 마켓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는 창조적 혁신기술일 수 밖에 없다"며 "글로벌 리더의 양성과 기술력 양성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R&D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허 사장은 "우리나라의 범용석유화학산업은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이미 일본을 능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석유화학의 원천기술 면에서 또는 정밀화학이나 첨단 신소재 분야에서도 과연 그러할까 의문"이라며 "중국의 경우 엄청난 물량 공세로 우리를 바짝 쫓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들의 기술 장벽과 중국의 대규모 물랑공세에 끼어있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말처럼 최근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제품가격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내수시장 기반이 협소하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고, 원료에 대한 해외 의존도 역시 높은 산업구조 상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크게 반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은 가동중단, 사업철수 등을 고려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그는 "올해 세계 경기가 3%대의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어 더욱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북미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한 제품과 중국의 석탄화학에 기반에 둔 저가 제품의 출현으로 경쟁구도의 재편 등 경영환경 패러다임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허 사장의 행보가 기대되는 건 그가 취임 초기 내걸었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취임 초, '2018년 매출 40조원, 아시아 톱3 화학그룹'을 내걸었다.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더욱 공격적인 행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올해 허 사장은 셰일가스 기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그는 "원료부문의 신증설 없이는 획기적 매출 성장이 어렵다"면서 "북미에서 셰일가스 기반의 사업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이미 건설 단계에 들어간 우즈베키스탄 합작사업은 공장이 적기에 완공될 수 있도록 건설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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