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물건에 숨겨진 탄생·진화의 발자취 생생한 기록
통조림 캔·단추·클립 등 일상에서 만나는 물건의 秘史
저자 헨리 페트로스키 '테크롤로지의 계관시인'으로 불려

세 갈퀴와 네 갈퀴 포크가 도입되면서 더 이상 나이프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세 갈퀴와 네 갈퀴 포크가 도입되면서 더 이상 나이프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햄버거 포장은 종이가 상식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 맥도날드사는 햄버거를 종이와 포일로 싼 뒤 붉은 색 상자에 담아 팔았다. 꽤 효과적이었지만 유용한 방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포장하는데 너무 많은 공을 들여야 했고 포장지를 푸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1975년 맥도날드는 폴리스티렌으로 만든 '대합조개껍데기' 모양의 용기를 선보인다. 일단 대성공. 디자이너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내용물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기름기까지 흡수했다. 무엇보다 포장하기 쉽고 열기도 간편했다. 그러나 조개껍데기 포장은 세상에 나온 지 10년도 되지 않아 '과대포장'의 상징으로 비난을 받게 된다. 특히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맥도날드는 종전의 종이포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음식이나 음료수를 담는 편리한 용기로 자리잡은 '캔'도 초기에는 황당한 물건이었다. 양철캔은 필요할 때 마음대로 보존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한 물건이다. 그러나 초창기 발명가들은 '음식을 잘 보관해야 한다'는 목표에만 너무 집중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캔에 든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총검을 사용해야 했고 심지어 총을 쏴서 캔을 열기도 했다. 1824년 북극탐험대 대원이 가져간 캔에는 '끌과 망치로 캔의 위쪽을 삥 둘러 잘라야 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가볍고, 따기 쉽고, 오래 가는 알루미늄캔이 등장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책 표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책 표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김영사 刊)'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숨겨진 탄생비화와 진화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적 공학칼럼니스트이자 과학기술의 '실패 분석'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는 헨리 페트로스키의 대표적 저작이다. "작은 물건에 큰 뜻이 숨어 있다"는 그의 명언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쓸모가 많은 물건들의 발명과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아이의 안전을 고려하여 특별히 제작된 약병이 있다고 하자. 관절염을 앓는 노인층이 보기에는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지적할 것이다. 이상적인 약병은 인간공학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도 완벽해서, 안전하면서도 테이블 위의 과일 접시를 대체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 왜 그렇게 이상적으로 완벽한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실마리를 제공하자는 의도로 쓰였다. 인공물이 실패할 수 있는 길이 많은 것처럼 그 형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길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67쪽)

불편함, 혹은 편리함의 추구는 물건을 탄생시킨 대표적 배경이다. 나이프 2개를 양손에 들고 식사하는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세시대에는 양손에 나이프를 하나씩 들고 식사하는 것이 최고로 격식있는 식사 자리였다. 한 쪽 나이프로 고기를 고정시키고 다른 한 쪽 나이프로 고기를 썰었다. 그런데 불편한 일이 종종 발생했다. 나이프로 고기를 고정시킨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것이다(실제로 양손에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썰어 먹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게 포크다.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그 물건이 상징하는 정치적 배경이 뚜렷한 사례도 있다. 강선을 그냥 휘어 만든 클립이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클립은 1899년 요한 발러라는 노르웨이 사람이 최초로 만들었다. 발명은 노르웨이인이 했지만 특허는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노르웨이 사람들은 독일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옷깃에 클립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비록 보잘것 없지만 그 물건의 기원이 자기 나라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내세우고, '독일을 싫어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물건의 모양과 색깔(디자인)이 물건의 쓰임새(기능)를 좌우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세계 컴퓨터 산업을 선도했던 애플은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협공에 밀려 파산에 직면했다. 애플은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 '아이포드'라는 새로운 디자인의 MP3를 출시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쇠락의 길을 걷던 애플을 구하고 대성공을 거두게 한 비결은 바로 '디자인'이다.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완성한 뒤, 그것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개발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기업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맥도날드의 대합조개껍데기 포장은 햄버거를 포장하는데 아주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결국 예전의 종이 포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맥도날드의 대합조개껍데기 포장은 햄버거를 포장하는데 아주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결국 예전의 종이 포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이처럼 저자가 소개하는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한 갈퀴 나이프가 네 갈퀴 포크로 탄생하기까지, 전장(戰場)에서 총을 쏘아 먹어야 했던 통조림을 집에서 한 손으로 간편하게 열기까지, 추위를 피해 옷을 여미기 위한 동물의 뼈가 진화해 단추가 되기까지, 작지만 위대한 인공물의 역사를 문화·기술·정치라는 '돋보기'로 들여다 본다.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저자는 이러한 물건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기원, 수많은 창조적 발명가들의 일화를 '현미경' 삼아 관찰한 결과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간단해 보이는 인공물의 진화 과정을 추적해 모든 디자인과 발명에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를 밝혀냈던 특유의 공학적 탐구를 좀 더 확대시켜 집필한 역작이 바로 이 책"이라며 "융합적 사고를 일찌감치 유감없이 보여줬던 페트로스키는 인문학적 안목으로 공학기술에 접근해 단순히 사물의 디자인을 분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본성까지 파헤치고 있다"고 극찬했다.

물건은 불완전함, 혹은 실패의 피조물이다. 실제 인공물의 형태는 잠재되어 있거나 실제로 드러난 결함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실패에 대응하려는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이 원칙이 모든 발명, 기술혁신, 창조를 지배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발명가, 혁신가, 엔지니어들을 이끄는 힘이다. 결국 완전한 물건은 없다. 심지어 '완전하다'는 생각조차 불완전하다. 어쩌면 물건은 인간의 특성과 너무도 닮았다. 이인식 소장이 "단순히 사물을 분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본성까지 파헤치고 있다"고 극찬한 이유이기도 하다.

페트로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완전한' 인공물은 어디에도 없다. 미래의 완전함이란 시제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 실체가 될 수 없다."

그나저나 책 제목처럼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음식을 손쉽게 먹기 위해서. 최초의 포크는 고기와 같은 특정 음식을 먹을 때만 사용됐다. 하지만 포크의 사용이 서서히 '진화'하면서 심지어 완두콩까지 포크로 먹게 됐다. 수저와 젓가락, 심지어 나이프의 역할까지 맡게 됐다. 당연히 쓰임새가 많아지면서 갈퀴도 늘어나게 됐다. 두 갈퀴에서 네 갈퀴로 늘어난 것은 포크의 영역확대와 진화의 산물인 셈이다.

'백과전서'에 실린 이 삽화는 판자를 쪼개고 있는 2인용 틀톱을 보여준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백과전서'에 실린 이 삽화는 판자를 쪼개고 있는 2인용 틀톱을 보여준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플러스 추천, 과학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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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확신'이란 느낌의 허상을 지적한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연구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 섬광기억을 연구한 심리학자 울릭 나이서가 챌린저호 폭발과 관련해 106명의 학생에게 기억을 적으라고 했다. 2년 6개월 뒤 다시 그 정확성을 확인해보니 25% 학생의 기억은 적은 내용과 깜짝 놀랄 만큼 달랐다. 오직 10%의 학생만 세부사항을 정확히 기억했다. 이 책은 이러한 맹목적 확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방식의 본질과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일으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콜롬버스의 교환
(황상익 / 을유문화사)

EBS 인기 명강 '역사특강-질병과 인간, 의학과 문명'을 책으로 만난다. 저자 황상익 교수(서울대 의과대학)는 의학, 문명, 역사라는 코드로 20여 권의 책을 낸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질병과 문명의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인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의 질병과 의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다. 세계대전보다 더 큰 사상자를 내곤 했던 질병과의 일방적인 전쟁에서 반전을 일으키고, 이제는 팽팽히 맞서고 있는 흥미진진한 의사(醫史)서이다. 책의 마지막 3분의 1은 우리나라의 의료사를 기록했다. 근대 의료의 도입과 발전 과정을 다루며 전통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인들의 건강과 질병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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