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 정초록 박사, 인간생체와 100% 유사한 인공장기시스템 구현 목표

정초록 박사가 프로토타입의 시제품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정초록 박사가 프로토타입의 시제품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수 십 마리의 토끼들이 실험실 안에 있었다. 차가운 플라스틱 네모난 상자 안에 몸을 구겨넣고 머리만 밖으로 내놓은 채였다. 토끼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약물 실험의 대상이 됐다. 영국의 한 제약회사 실험실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동물 생체실험 모습이 공개되면서 잔인한 충격을 안겼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까진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금지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관건은 실험동물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다. 동물실험이 아무리 유용하다 할지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100% 대체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수요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오태광). 정초록 박사는 이 곳에서 실험동물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생체유사 세포·조직 배양 원천 기술 확립을 통한 인공실험체 구현'이다.

"의약품 개발부터 코스메틱 제품까지 동물 실험을 안하는 것이 없다. 사람한테 하지 못하니 동물한테 하는 건데, 만약 인간과 유사한 시스템이 있다면 실험에 투입되는 동물의 숫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동물실험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 반면, 규제는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체 수단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독성시험 연구에서보다 기초 연구에서 동물실험의 수요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연구목적에 부합되는 인공실험체 개발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정 박사가 추구하는 기술의 핵심은 생체와 유사한 인공 장기를 시스템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포 배양은 2D가 대부분이다. 납작한 플레이트에 셀을 집어 넣는다. 평면에서 셀을 키우면 납작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 그러나 생체는 3D이기 때문에 지금의 생체배양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게 정 박사의 의견이다.

그는 "간 세포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간 안에는 여러 세포가 있다. 혈관세포, 기질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이 간이라는 조직 안에서 구성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라며 "미세 환경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걸 하겠다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고 설명했다.

모든 디바이스는 정 박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중소기업과 협력해 장비를 구체화시켜나갔다.
모든 디바이스는 정 박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중소기업과 협력해 장비를 구체화시켜나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순환'이다. 2D 방식으로 하나 하나 떨어뜨려 놓고 배양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순환 시스템의 구현은 먼 이야기다. 그러나 정 박사의 연구에서는 순환이 가능하다. 장기 유사체를 엮겠다는 것. 그는 "아이폰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통화기능, 카메라기능, 사진기능 등은 기존에도 다 있었다. 단지 아이폰은 그것을 하나로 엮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따로 따로가 아니라, 미세 환경을 구현하기 위한 환경을 3D로 조성한다는 말이다.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양한 기관이 함께 존재하는 고기능 유사기관을 제작, 인간의 생체와 최대한 유사한 기관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포부였다.

프로토타입의 시제품도 만들어져 있는 상태다. 인체 유사 환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배양 디바이스는 일종의 층층 서랍처럼 구성돼 있다. 각각의 셀이 특허 준비 중인 플레이트에서 배양돼 디바이스 각각의 층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다양한 세포들은 배양액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정밀순환배양 시스템을 통해 몸처럼 순환하며 작동하게 된다.

정 박사는 "기관 창의과제로 하고 있는 연구이기 때문에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완료가 되는데, 새로 과제를 따서 연구를 키워보려고 한다"며 "아직까지 검증은 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 중 가장 큰 과제다. 생체 유사도 검증을 해야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여부를 알 수 있다. 검증이 면밀해야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이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본 조사까지 꼼꼼히 마친 상태다. 정 박사가 논문과 특허를 조사한 결과, 발표 건수가 많지 않고 논문보다 특허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아 기술의 활용가치가 클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생체모사를 이용한 인공실험체 기술은 활용가치가 크면서도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도전은 정 박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치고 디바이스를 직접 개발하려는 사람이 없는데, 정 박사는 그게 답답했다고 했다.

"강아지를 두 마리 키우고 있다. 원래 동물 실험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최근에는 동물 실험에 대해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험동물 대체 기술의 개발은 빨리 이뤄지면 이뤄질수록 좋다."

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정 박사의 주변은 도와주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관련 전문가 10명이 함께 할 예정이다. 전공도 다양하다. 유전자 기능검증 및 신약개발, 면역학, 줄기세포학, 약동력학, 후성유전체학을 전공한 원내 박사들과 대학과 중소기업에서도 함께 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출연연, 대학, 기업이 협력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정 박사는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인체를 구현하는 것은 100% 힘들다는 것이다"며 "최대한 근사치까지 가는 게 목표다. 개발이 되면 다양한 생명현상과 질병의 기전연구, 환자 맞춤 진단·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체들이 목숨을 잃지 않도록 과학자들의 노력이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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