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최초 게임으로 박사학위 박태우씨…게임에 빠져 재수로 입학
12년만에 늦깎이 '박사모'…일상생활과 접목한 신개념 게임 개발

게임광 박태우 씨는 12년 만에 KAIST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임광 박태우 씨는 12년 만에 KAIST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임에 푹 빠져 대학입시도 실패했던 학생이 게임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NASA 입사까지 앞두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KAIST 전산학과 박태우 씨. 그는 21일 열리는 학위수여식에서 12년 만에 늦깎이 졸업생으로 박사모를 쓴다. 박 씨는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2002년 KAIST에 입학, 좋은 않은 성적 때문에 4년 후에야 같은 과 대학원에 간신히 들어갔다.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탓에 남들은 2년에 마치는 석사과정을 2년 반이나 걸려 수료했다.

박 씨는 "박사까지 마치는 데 12년 걸렸다. 행정상으로는 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4년을 따지면 10년이다. 빠른 친구들은 7~8년이면 박사학위를 딴다. 정규학기를 다 끝내고 한 졸업이니 좀 늦긴 했다"며 멋쩍어했다.

이처럼 그를 늦깎이 졸업생으로 만든 주범은 게임이었다. 7살 때부터 시작한 게임은 그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어 놨다.

그는 "동네 형 집에 놀러갔다가 게임을 알게 됐다. 부모님을 졸라 게임기를 샀고 그때부터 게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며 "게임 탓에 잠도 3~4시간 잤다. 대학에선 게임과 관련한 성적은 좋았지만 전공 이외의 과목은 그렇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사과정은 그에게 가장 힘든 고비였다. 꾸준한 연구를 요했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이런 그를 잡아 준 것은 지도를 맡은 송준화 교수였다.

송 교수는 박 씨가 게임제작 동아리 '하제(HAJE)' 회장을 맡으면서 모바일 퍼즐 게임을 직접 만들고 상용화까지 했던 경험에 주목했다. 게임 개발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만류에도 박 씨에게 게임 플랫폼이나 콘텐츠를 개발해 보라고 조언했다.

박 씨는 "대학원에서 3년 반을 헤맸다. 어떤 교수님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공부를 그만하라고도 하는데 송 교수님은 지켜봐주셨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며 "더욱이 전산학과는 전통적인 학과에서 기초연구가 주된 탓에 게임으로 박사를 한다니 주변에서 다들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용적인 게임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일상생활과 게임을 접목한 차세대 장르의 게임에 대해 고민했다. 게임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동료, 선후배 학생들과 헬스장, 수영장, 공원 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박 씨는 "헬스장에서 런닝 머신처럼 혼자 하는 운동은 지루하기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음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기면서 운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개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태우 씨가 개발한 오리배 게임.
박태우 씨가 개발한 오리배 게임.

그 결과 만들어 낸 것이 '오리배' 게임이다. 사람이 달리는 속도를 인식해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런닝머신의 원리를 활용, 두 명이 달리는 속도 차이를 이용해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는 "온라인에 접속 할 수 있는 헬스장이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이 게임을 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세계 헬스장 달리기 대회'도 가능하다"며 "마라톤 동호회도 한 곳에 모일 필요 없이 각자 자기 집에서 가까운 헬스장이나 집에서 다른 회원들의 순위를 보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리배 게임은 한 때 엑스포 과학공원 내 상설 체험관이 마련돼 운영되기도 했으며, 관련 콘텐츠는 기업에 특허기술이전 등이 이뤄졌다.

박 씨는 이 뿐만 아니라 수영 영법을 이용한 격투기 게임, 대열에서 이탈하는 어린이를 찾아주는 '참새 짹짹' 앱, 훌라후프·자전거·줄넘기를 이용한 운동게임 플랫폼, 사용자의 평소 생활 패턴을 활용한 아바타 게임 등의 개발을 주도하고, 시연상 등도 다수 수상했다. 

그는 게임을 통해 큰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오는 6월부터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센터에서 근무하게 된다. 박 씨는 "KAIST와 NASA간 협력 프로그램이 있는데 운이 좋게도 발탁이 됐다"며 "게임과 로봇의 공통점은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으로 게임 개발 경력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게임에 대해 "인생의 흑역사에는 대부분 게임과 함께 있었다. 게임은 조금만 노력하면 성취감을 주지만 현실에서는 노력에 비해 성취감이 크지 않을 때가 많기에 게임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며 "그래도 지금의 영광을 준 것도 게임이다. 게임은 계속할 것이다. 인간생활에 보탬이 되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KAIST는 21일 오후 2시 교내 류근철 스포츠컴플렉스에서 2014년 학위수여식을 갖는다. 이날 학위수여식에서는 박사 499명, 석사 1220명, 학사 900명 등 총 2619명이 학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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