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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단상]한국 기초과학 수장의 씁쓸한 사임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흔들더니 이제는 그만둔다고 눈 흘겨
더 자유롭고 보람있게 일할 수 있었다면 대학으로 돌아갔을까?

20일 사임한 오세정 원장.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20일 오전 직원들과 간단한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별도의 퇴임행사는 없었다. "죄송하다. IBS가 잘 될 수 있도록 밖에서도 최대한 돕겠다"는 짧은 인사만 남겼다고 한다. 한국 기초과학 수장은 2년 3개월의 시간을 뒤로 하고 그렇게 떠났다.

그의 사임을 놓고 여기저기서 비판이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씁쓸해 하기도 한다. 5년 임기를 보장했는데도 자의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은 "무책임하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임할 수 밖에 없다면 "학교에서 왜 나왔느냐"는 지청구도 들린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스스로 결정한 것이니 그런 비판조차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작별은 그런거다. 떠나는 사람도 할 말 많고 회한이 남지만 그대로 묻어두는 것. 오 원장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왜 없었겠는가.

오 원장의 퇴임이 진짜 씁쓸한 이유는 한국 과학기술의 한 단면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IBS 원장의 임기는 5년이다.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보다 2년이 더 길다. 물론 연임도 가능하다. 연봉도 2억8000만원으로 1억5000~1억6000만원 수준인 다른 출연연 원장보다 많다. 파격에 가깝다. 그래도 학교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안정된 임기로도, 돈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오 원장은 이런 얘기를 자주했다. "해외에 나가 IBS를, 한국의 기초과학 전략을 설명하면 다들 놀라워한다. 자기들도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그러면서 꼭 물어본다. 기관 규모가 어떻게 되고, 어떤 실험실과 장비를 갖추고 있느냐고. 이런 질문에 명쾌하기 답하기 위해서는 빨리 본원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서둘렀지만 IBS는 엑스포과학공원에 들어서기로 결정된 지난해에야 건립예산이 반영됐다. 우여곡절도 많고 진통도 많았다. 오 원장은 국회의원에게 불려가 호통을 듣고 읍소도 했다. 심지어 "두고 보자"는 경고성 발언도 들었다. 수시로 지자체와 부처를 오가며 진행상황을 보고하고 의견조율도 해야 했다. 일이 꼬이면 IBS가 모든 욕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이 잘 풀렸지만 일부에서는 지금도 욕을 한다.  

지난해에는 기초과학 예산 '블랙홀론'에 휩싸여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한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자고 만든 기관이 한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그런 기관의 수장은 졸지에 기초과학계를 궁핍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몰렸다.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한 곳은 다름 아닌 기초과학계였다.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토론회를 마련하고, 그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해명한 곳은 IBS였고 오 원장이었다. "기초과학 전체의 파이를 키워야 기초과학이 산다"는 오 원장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다.

이런 그가 자신의 '고향'인 서울대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했다. 일각의 관측대로 서울대 총장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에 IBS 원장까지 지낸 인사가 서울대 총장이 되면 과학기술계에서는 박수를 쳐줘야 할 일이지만 이런 분위기도 아니다. IBS가 제대로 운영되기도 전에 흔들고 돌을 던지더니, 이제는 그만둔다고 눈을 흘긴다. 도대체 어쩌라는건가.

서울대 휴직 3년 제한에 걸려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서울대 교수직, 혹은 총장보다 출연연 원장 자리가 훨씬 자유롭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보람있는 자리라면 오 원장은 임기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오 원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여기까지가 우리 과학기술계의 한계이자 출연연의 한계다.  

공도 있고 당연히 과도 많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 원장이 어떤 기관장보다 대덕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대덕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애정어린 시선을 보냈고, 대덕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때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출연연 출신 기관장 못지 않게 출연연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오 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서울대로 돌아가는 것이 씁쓸한 또 다른 이유다.

떠난 사람은 보내주자. 작별의 아픔은 불행히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IBS는 후임 원장을 뽑게 될 것이다. 지금의 풍토라면 아무리 유명한 세계적 석학을 '모셔' 와도 오랫동안 일하기는 어렵다. 안정적 임기보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체질 개선이다. 또 대학에서 (돌아)오라고 하는데도 출연연이 더 좋고, 보람있으니 정중하게 사양할 수 있는 그런 변화를 보고 싶다. 우리도 10년 가까이, 혹은 임기 10년을 훌쩍 넘긴 출연연 기관장 한 명쯤은 배출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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