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 맥퀸이 분장하였던 주인공 앙리 샤리엘은 그의 가슴에 그려 넣은 푸른 나비로 인해 다른 죄수들이 빠삐용(나비)이라고 불렀다. 푸른 나비가 그의 염원이 되었을까?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의 탈출시도가 모두 무위로 끝난 백발의 앙리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악마의 섬'에서 마침내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다는 줄거리의 영화 빠삐용은 전세계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남겼다. 

빠삐용의 푸른 나비는 몰포나비(morph butterfly)일 가능성이 높다. 몰포나비는 등쪽 날개의 표면이 빛나는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나비 채집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이 푸른색은 색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교하고 규칙적인 나노구조물로 인해 빛이 푸른색 파장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색소에 의한 일반색과 구별하여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한다. 몰포나비의 푸른 날개는 실상 배쪽 표면에서 보듯 보통의 나방처럼 지저분한 무채색이다. 구조색은 마치 비눗물에 보이지 않던 색이 비눗방울이 되면서 빛을 분산시켜 영록한 색을 띠게 하는 것과 같다.

몰포나비의 등쪽 날개의 빛나는 푸른색은 아마도 천적에게 쫓기는 죽음의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

구조색을 띤 몰포나비.
구조색을 띤 몰포나비.
략으로 삼은 위협색(threatening color)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배쪽 날개 표면의 바탕은 무채색이지만 눈알을 연상케 하는 검고 둥근 점이 양날개에 대칭으로 그려져 있어서 몰포나비가 날개짓을 할 때 빛나는 푸른색이던 날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흉측한 눈알을 부릅뜬 모습이 교대로 보이게 된다.

공격무기를 갖추지 않은 몰포나비의 이 위협적 모습은 천적으로 하여금 일상적인 공격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빛나는 천사의 모습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것 같은 악마의 모습이 교차되며 파도치듯 나는 몰포나비의 비행모습은 천적으로 들끓는 정글에서 살아남은 나약한 생명체의 환상적인 서바이벌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업적으로 나노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물질을 가루로 분쇄하거나 식각(蝕刻)을 하는 등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생물학적으로 나노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은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몰포나비의 나노구조물은 단백질로 이루어져있는데 날개에서 분비된 단백질이 건조되는 과정 중 미세한 주름이 잡히면서 이 주름이 식각방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나노구조물이 된다. 색소로는 연출할 수 없는 매력적인 색상이 단백질 나노구조물에 의한 구조색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나노기술에 의한 구조색 발현방식은 색상을 중요시하는 화장품산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한 연구팀은 나노 크기의 금가루를 소재로 한 화장품을 개발하였는데, 금 입자의 크기에 따라 삼원색을 띠게 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배합하여 다양한 색을 띠는 화장품 제조를 가능케 한 것이다.

금은 생체친화적인 소재이다. 다만 나노입자는 세포막의 통제를 받지 않고 세포 속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나노화장품을 사용할 때에도 인체에 안전한지 여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 역시 생물학적 나노기술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나노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금을 나노크기로 분쇄하는 대신 특수 단백질을 얼굴에 바르면 건조과정에서 나노구조물이 만들어져서 요즘 십대 아이돌처럼 혹은 여신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처럼 빛나는 얼굴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blue rose'의 사전적 의미는 '있을 수 없는 것', '안될 말'인데, 장미를 좋아하는 서양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양한 색상의 장미를 개발하였으나 푸른 장미는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긴 관용구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공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푸른 장미를 만드는 것이라는 재치있는 대답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장미속(屬)에는 푸른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원천적으로 결여되어있으므로 팬지(pansy) 등 푸른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의 유전자를 장미에 도입하여 푸른 장미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꽃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플라보노이드라는 색소인데 이 색소는 산도(酸度)에 매우 민감하므로 유전자 이식을 통하여 다른 꽃의 색을 장미에 빌려오더라도 서로 다른 식물세포의 산도의 작은 차이로 원하는 색상을 구사하기가 어렵게 된다.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 푸른 장미가 개발된 바 있으나 그 색상은 우리가 꿈꾸던 코발트블루가 아닌 불그레한 푸른색이 되었다. 향후 푸른 장미 역시 몰포나비의 단백질 유전자를 장미에 도입함으로써 코발트블루를 띠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앙리 가슴의 푸른 나비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원초적 외로움이 '그대안의 블루'로 자리잡고 있다.  앙리가 '악마의 섬'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의 몰포나비는 꿈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우리 가슴의 '그대안의 블루' 역시 꿈을 가지고 있을 때 파괴적 본능이 창조적으로 승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의 모티브를 제공해 주신 신중훈 KAIST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장렬 생명연 박사는

융합과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목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로 별개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가 모여 합목적인 새로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장렬, 융합과학의 첫걸음'을 통해 연구자들의 고민을 파헤쳐보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예정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생물학 석사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SCI 등 주요학술지에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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