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산하기관에 보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세부내용 보니
11개 방만경영 사례 적시…사실상 공기업 준하는 개혁 요구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른 후폭풍이 예상대로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거세게 불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출연연 등 산하기관에 보낸 '미래부 소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통해 복리후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달 말까지 각 기관별로 정상화 대책을 수립하라는 지침이 나오면서 출연연에 비상이 걸렸다. 

사실상 방만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 일부 공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정상화 대책을 요구받고 있어 출연연별로 가이드라인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제 적용하는데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미래부가 지정한 11개 방만경영 사례

6일 출연연 등에 따르면 1월초 마련된 '미래부 소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라 각 출연연은 방만경영 사례로 거론된 11개 복리후생 항목을 중심으로 기관 정상화 계획을 이달 말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출연연의 11개 방만경영 사례는 ▲교육비 과다지원 ▲의료비 과다지원 ▲경조금 지원 ▲과다한 특별휴가 ▲과다한 퇴직금 ▲느슨한 복무형태 ▲고용세습 ▲경영·인사권 침해(이상 정부 합동사례) ▲안식년 ▲통신비 지원 ▲국내외 여비(이상 미래부 추가사례) 등이다.

미래부가 출연연 등 산하기관에 전달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왼쪽)'과 11개 방만경영 사례.
미래부가 출연연 등 산하기관에 전달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왼쪽)'과 11개 방만경영 사례.

이 가운데 의료비의 경우 대부분 10~40만원 사이에서 본인의 건강검진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연구재단, KIRD(연구개발인력교육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IBS(기초과학연구원) 등 13개 기관은 가족의 건강검진까지 지원하고 있다. 미래부는 이에 대해 연간 일정한도의 본인 건강검진비만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또 경조금 지원에서는 대부분 출연연이 본인 결혼이나 직계 존비속 애경사에 10~50만원 내외의 경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원자력의학원과 항우연은 10년, 20년 근속자에게 현금이나 순금을 제공하고 있다. 미래부는 본인 결혼, 직계 존비속 애경사 이외의 근속 축하금, 자녀 입학축하금 등 별도의 경조금은 폐지토록 했다.

주1회 이상 출근토록 되어 있는 비상임감사 일부가 근무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근무자세도 불성실하다는 지적에 따라 기관별 감사부서에서는 비상임감사의 출퇴근 시간 등 복무현황 등을 모니터링해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미래부에 제출해야 한다.

고용세습의 경우 미래부 산하 공공기관 중 19개 기관이 직원사망시 피부양자 채용을 우선 고려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실제 고용승계가 이루어진 기관은 1개 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역시 공공기관의 대표적 방만경영 사례로 지목된 만큼 공개경쟁 채용 원칙에 따라 일괄 시정토록 했다.

이와 함께 조합 간부 인사·징계시 조합의 사전동의 규정을 심각한 '인사권 침해사례'로 규정하고 시정 조치를 내렸으며, 연구재단처럼 쟁의기관 중 임금 전액을 지급토록 한 규정도 바꾸도록 했다.

이밖에도 대상, 신청자격 등이 제각각인 안식년제를 일괄 정비토록 했으며, 과도한 통신비 지원과 국내외 여비 규정도 가이드라인에 맞춰 재정비해야 한다.

미래부는 이처럼 산하기관에 보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통해 각 사례별 현황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출연연별 정상화 계획을 이달 말까지 제출토록 했다. 또 매 분기별로 기관별 정상화 대책 실적을 점검·평가해 평가결과에 따른 인건비, 경상경비와 연계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각 출연연에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비판하는 플랜카드가 게시됐다.
각 출연연에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비판하는 플랜카드가 게시됐다.
◆"정작 비정상은 방치"-"기타공공기관의 숙명"

이같은 출연연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나오자 연구현장은 크게 술렁이고 있다.

공공노조와 각 지부별 노조는 플래카드 등을 게시하는 등 정부의 정상화 대책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반발의 핵심은 당초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게 방만한 경영으로 부채가 많아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출연연이 공공기관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일선 연구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이나 기관장 선임 문제, 연구 자율성 등 정작 '정상화' 시켜야 할 것은 방치하고, 우수 인력의 출연연 유치와 이탈 방지 등을 위해 마련한 기본적인 복지후생만 문제삼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출연연 종사자는 "다른 공공기관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없애고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공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방만경영'과는 무관한 기본적인 복리후생까지 문제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면서 우수한 인력을 출연연에서 유치하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 먼저 도입한 제도도 많다"며 "그 제도를 이제 와서 방만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출연연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대부분 출연연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연구현장에서는 출연연의 자율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출연연을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지난해 5월 출연연 기관장들은 '출연연 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5월 출연연 기관장들은 '출연연 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실제 지난해 미래부 주도로 활동했던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 태스크포스(TF)'도 발전전략 보고서를 통해 출연연의 기타공공기관 제외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출연연 발전전략 TF는 "일반 공공기관 관리 기준에 근거한 줄세우기식 출연연 운영으로 장기적 관점의 연구 부족과 이로 인한 연구성과의 질적 저하 현상이 나타났다"며 "연구기관으로서의 특수성을 고려해 출연연은 기타공공기관과는 별도로 육성·관리 되어야 한다"고 보고서에 명시했다.

또 정치권에서도 과학기술계 출연연을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과출협)도 지난해 5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출연연 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출연연의 기타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광호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은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출연연을 마치 범죄자인 양 몰아세우고 있다"며  "각각의 기관에 해당되는 문제들을 출연연 전체에 해당되는 문제처럼 포장해서 침소봉대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9일 미래부 산하 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고강도 '정상화 대책'을 주문하고 있는 최문기 미래부 장관.
지난달 9일 미래부 산하 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고강도 '정상화 대책'을 주문하고 있는 최문기 미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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