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상민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의 남다른 디자인 철학
2013년 '올해의 KAIST인상'…"상위 10% 아닌 90%를 위해 디자인"

배상민 KAIST 교수.
배상민 KAIST 교수.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대사건'이었다.

"한 해 동안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빛낸 교원에게 수여하는 상을 제가 받았다는 것 자체가 대사건이죠. '올해의 KAIST 인상'은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는 것 아닙니까. 우리 학과가 그렇게 주목받아 본 적도 없고, 저 역시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는 교수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그런 제게 상을 주셨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고, 뜻깊었죠."

2013년 '올해의 KAIST 인 상'의 주인공은 배상민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였다. KAIST는 나눔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의 혁신을 주도하고, 사회적 가치를 높여 온 배 교수의 공로를 인정해 시상했다.

"사실은 까불려고 했어요.

원래는 시상식에서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더 보여주고 싶었다는 배 교수. 그래서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제가 아끼는 애견을 데리고 가서 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시상식이 엄숙하더라고요. 그래서 겸허히 상을 받고 왔죠. 거기서까지 까불면 왠지 후회하실 것 같아서. 얘같은 애한테 상을 왜 줬나 하고요. 하핫."

이어 배 교수는 "듣기로 만장일치로 추대됐다고 들었다. KAIST가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서 기분 좋고, 감격스럽다"며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또 다른 기부의 주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밑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순환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난꾸러기 같아 보이지만 디자인 철학에 있어서만큼은 소신이 뚜렷한 그는 KAIST 내에서도 별종으로 통한다. 고지식한 과학자들의 세계에 떨어진 '별에서 온 그대' 정도라고 할까. KAIST의 대표 아웃사이더에서 점점 중심 쪽으로 이동해가고 있는 걸 자신도 느끼고 있다는 그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스타 교수들, 전통적인 과학자들이 개인적으로 돕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고 있다"며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해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는 건 다름아닌 나눔프로젝트다. 사회공헌 디자인을 주제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통해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골자다. 2005년 KAIST에 온 뒤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어떻게 보면 배 교수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4개의 상품을 개발하고 세계 최고 권위의 디자인상을 총 44회나 수상했다.

지난해에만 움직이는 조명 '딜라이트'로 세계 최고권위 디자인전인 미국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와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Good Design Awards)에서 연달아 상을 받았다.

나눔프로젝트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자선활동을 펼치는 프로젝트로 인도적 사회순환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과 배 교수의 ID+IM 디자인 연구실이 협력,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총 17억 원을 마련해 240명의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했다.

그가 지금까지 받은 상의 개수만 44개. 그가 생각해도 놀라운 성과다. 14년 동안 뉴욕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며 딱 2번 받았던 상을 KAIST에 와서 8년 만에 44개를 받았으니 그의 말처럼 '어메이징'하기도 하다.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그의 남다른 디자인 철학 때문이었다. 배 교수는 "전 세계 디자인이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상위 10%를 위해 디자인하고 서비스를 한다"며 "그러나 우린 90%의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했다. 10%의 사람들은 욕망과 관련된 것이고, 90%의 사람들은 목숨과 직결된 문제였다.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을 통해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 세상에는 상위 10%만 있는 게 아니라, 90%의 사람들도 있다는 걸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배 교수는 "우리는 90%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깨뜨리고 싶었다"며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나눔을, 기부를 생활 깊숙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 "너희가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해서, 이뻐서 받은 축복일까?"

그는 구매력을 가진 10%의 사람들이 90%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매력을 가진 10%의 사람들이 90%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가 학생들에게 꼭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99대 1의 법칙이다.

"전 세계에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퍼센테이지가 1% 정도입니다. KAIST에 온 친구들은 전 세계 1% 중에서도 0.001%에 들어가는 친구들이죠. 그들에게 꼭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희가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해서, 이뻐서 받은 축복일까'하고요. 전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니라고'요."

그의 말에 따르면 99와 1의 차이는 나라의 차이다. 99%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1%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애초부터 시작이 다르다는 말이었다. 그는 "99%는 아예 기회가 없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무슨 노력을 했냐고 물어보면 다들 할 말이 없어 한다"며 "1%에 속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 축복을 자신의 부귀영화에만 쓴다면 뭔가 이상한 게 아닌가 싶다"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배 교수는 자신의 나눔 철학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나눔하는 게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99%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대학까지 가게 만들어준 게 바로 축복이다"라며 "99%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굶어 죽는다. 1%의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가 간 건 99%의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다"고 말했다.

KAIST 학생들이 이를 위해 앞장서야 하는 건 배 교수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의 리더가 될 학생들이고, 또 전 세계를 이끌어나가야 사람들이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임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밖에 없다"며 "'나는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누릴만하다', '내가 벌었으니 다 내 돈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사회 양극화는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눔의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과 함께 있으면 배를 곯았다. 돈이 될만한 디자인은 하지 않기 때문.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산·학 프로젝트를 합니다. 기업 프로젝트가 대부분 대기업들이 대상이죠. 돈 왕창 받습니다. 아마 디자이너 중 가장 비싸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기업 관계자들이 놀래요. 다른 학교 교수들이나 디자이너들은 그렇게 안 받는데, 왜 교수님은 그렇게 받냐고요. 그러면 전 말하죠. '전 원래 그렇게 받아요'라고. 싫으면 같이 안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해야 나눔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거든요."

사실 나눔프로젝트에 후원을 하겠다는 기업들도 많다. 그러나 그는 후원사를 안 받는다고 했다. 이유인 즉, 진정성이 안느껴져서 란다. 배 교수는 "진정성이 있는 기업이 나서면 다시 할 생각이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게 잘 안됐다"며 "그래서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펀드를 조성해 시작하고 있다. 그래야 상업적으로 변질되지 않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판매되는 상품을 출시하는 첫 해엔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그래서 계속 마이너스 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재료비를 뺀 나머지만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빠진 재료값으로 그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식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순환되고 있진 않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상품 한 개 정도만 더 잘되면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배 교수는 "내가 바라는 건 이것 하나다. 일을 할 때만큼은 너무 행복하다.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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