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치의 중심 하원 의사당(사진왼쪽)과 많은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하원 의사당 내부.
독일 정치의 중심 하원 의사당(사진왼쪽)과 많은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하원 의사당 내부.
독일에 도착해 집에 전화와 인터넷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독일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통신회사에 회선을 신청한지 4주 만에 기술자가 집을 방문하였다. 설치하러 온 것이 아니라 기존에 연결되어있는 선이 자기 회사 것과 맞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불행히도 우리집은 그 회사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다시 신청하고 또 4주를 기다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석 달 만에야 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KIST유럽연구소 직원들과 개인 면담을 하면서 독일인은 한국인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업무가 있으면 근무 시간을 넘기는 것이 다반사가 아닌가. 일이 가정이나 개인사보다 우선한다.

그렇지만 독일 사람들(독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출퇴근 시간을 잘 지킨다. 요청하지 않으면 바쁜 일이 있어도 정상적으로 퇴근한다. 독일 노동법에는 하루 8시간 근무를 초과한 시간이 모여 8시간이 차면 하루를 쉴 수 있는데 그것도 잘 지킨다. 휴가 일수는 대부분 사용한다. 마치 휴가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독일 사회가 그렇게 느리고 또 여유롭게 사는데도 발전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물어본다. 나도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다.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독일이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 정리해본다.

첫 번째는, 독일에서는 기관이건 개인이건 업무 구분이 잘 되어있고 또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일 연구 기관들의 성격과 재원.
독일 연구 기관들의 성격과 재원.
연구기관의 경우, 독일의 4대 연구협회인 막스플랑크, 라이프니쯔, 헬름홀쯔, 프라운호퍼 연구소들은 각각 그 연구의 성격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막스플랑크는 기초연구를, 프라운호퍼는 응용연구(산업화 연구)를, 그리고 라이프니쯔는 기초와 응용을 연결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KIST유럽연구소 인근에 있는 프라운호퍼 비파괴연구소와 라이프니쯔 신소재연구소를 견학했다. 라이프니쯔에서는 양산할 수 있을 정도의 플랜트 실험실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술을 이전할 수는 있지만 제품을 팔 수는 없다고 했다. 반면에 프라운호퍼에서는 그들이 개발한 제품을 팔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통신회사도 인터넷 선을 조사하는 사람과 설치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다. 한국 같으면 단번에 끝날 일을 나눠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말 갑갑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 점도 있다. 즉 한국에서 one-stop service로 제공되는 일을 두세 단계로 나눔으로써 인력의 고용이 그만큼 늘어난다. 또한 한 사람이 담당하는 업무영역이 좁아지니 그 만큼 숙련되기도 쉽다.

이렇게 세분화된 업무들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서로 연계되어 운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의 교육시스템을 보면 국가차원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 대학으로 진학할 학생과 실업학교나 직업학교로 갈 학생을 구분한다. 회사, 관청, 산업계로 나갈 학생을 미리 정하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직업학교 학생 중에서 필요한 학생을 미리 선발하여 인턴으로 활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력을 양성한다.

사람들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직업과 직장에 맞추어 양성된 인력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주 동력이다.

두 번째 이유로 꼽고 싶은 것은 독일 사람들의 준법정신이다. 이들이 교통질서 지키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고 부럽다. 시내에서 교통신호등뿐 아니라 고속도로에서 추월선과 주행선도 참 잘 지킨다.

그런데 독일사람들의 이런 준법정신은 그들의 신고정신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본인이 신고하기도 전에 금방 경찰차가 온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신고했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시내에 차를 주차시켜 놓았는데 누군가 측면거울을 부수고 가버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목격한 어떤 독일인이 그 차번호를 기록해 놓은 덕분에 가해자로부터 전액 보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독일은 법 집행이 엄중하기로 유명하다. 원칙에 충실하며 예외 없이 적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스갯소리로, 지옥에 가면 독일의 경찰관, 영국의 요리사, 프랑스 엔지니어가 있다는 말이 있다. 독일 경찰의 법 집행이 강력한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결국, 독일사람들의 준법정신은 타고 난 국민성이 아니라 활발한 신고정신과 공권력의 엄중함 때문에 생겨난 결과다.

세 번째 이유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정치지도자나 정책결정자들의 열린 마음과 합리적 정신이다.

현재 독일 총리와 대통령은 모두 동독 출신이다. 동독 출신이 통일 독일의 총리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일 국민과 정치인들의 열린 마음과 합리성을 알 수 있다.

작년에 3선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는 최대 야당인 사민당과 연정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정적인 야당 여성을 국방 장관에 기용하는 등, 파격적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있다.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또 출신지에 상관하지 않고 인재를 중용하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회 지도자들의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독일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이 한국에 비해 뒤쳐진 부분도 많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소비자 중심의 상거래를 꼽고 싶다. 한국에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구호가 있지 않은가. 한국에는 고객 중심의 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지만 독일은 판매자 중심의 사회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독일로 돌아온 독일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곳에 와서 제일 아쉬운 것은 한밤중 야식 배달과 24시간 편의점이라고 한다. 독일 상점은 평일 저녁 8시가 되면 문을 닫고 일요일은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8시 이후에도 문을 여는 술집이나 식당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독일과 한국은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역사와 문화는 토양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좋은 것이라고 하여 다른 나라에서도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귤나무를 옮겨 심었더니 탱자가 열렸다'라는 옛말(南橘北枳, 남귤북지)처럼 같은 열매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신은 배우되 실행방법은 달라야 할 것이다.

◆이호성 KIST유럽연구소장 프로필

대한민국 4.0시대를 여는 시기로 성숙된 의식과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에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은 독일의 과학기술과 그 발전의 바탕이 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 소장은 독일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이호성 소장은 KAIS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근무를 시작, 17년 동안 시간·주파수 표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펌핑 세슘원자시계를 개발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3년 이후에는 표준연의 주요보직을 맡아서 후배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에서 나노·융합단장으로 2년간 근무한 바 있습니다. 2012년 9월 KIST유럽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한국과 유럽연합을 잇는 가교역할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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