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과학자가 연구현장 바꾼다]④젊은 과학자들 좌담회
"미래 꿈은 내가 개발한 기술 국가·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

젊은이들의 대화. 온갖 속어와 욕설이 난무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들의 대화는 속깊다. 겉에서 보고 허투루 판단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속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이런 세대 간 갈등은 과학기술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다른 어느 곳 보다 수평적인 관계를 자랑한다. '다 함께 과학하는 사람'이라는 유대 관계는 젊은 과학자에게나, 선배 과학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다. 과학기술계를 관통하는 축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듯, 간극은 어디에서나 생겨난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꼭 이유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생기는 갈등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그들의 과제 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들어봤다. 이에 대한 젊은 과학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그들은 세대 간 갈등에 대해 시각의 차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역할에 대한 차이도 분명 존재하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야기될 수 있는 갈등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모두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것. 한 자리에 모인 젊은 과학자들은 현재 시점에서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좌담회 참석자(가나다 순)

▲강현우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95학번)
▲정영도 한국기계연구원 박사(98학번)
▲정초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91학번)
▲조준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01학번)
▲진승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90학번)

▲사회 = 김형석 대덕넷 취재팀장

◆ 고령화되는 과학기술계, 젊은 과학자들의 생각은?…"인위적 세대교체 필요없다"

김형석 대덕넷 취재팀장(이하 사회자) = 과학기술계 고령화가 심각하다고 들었다.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구 현장에서 느끼기에 어떤가?

정영도 기계연 박사.
정영도 기계연 박사.
정영도 기계연 박사(이하 정영도) = 현재 기계연 자연모사 연구실에 있다. 연구원들이 굉장히 젊다. 분야별 특성이 있는 것 같다. 실장님이 91학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연구를 열심히 하는 분들을 굳이 세대 교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쪽을 보면 엔지니어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쭉 하시는 분들이 많다. 장인처럼. 물론 완전히 새로운 연구를 하기에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힘들겠지만, 그 분들이 하는 연구를 계속 지속하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강현우 천문연 연구원(이하 강현우) = 천문연은 나이가 많다. 우리 팀만 하더라도 3명 뿐인데, 한 분이 지난해 환갑이셨고, 그 다음 분이 3년 후에 환갑이다. 그 다음이 나다. '나이 많은 분들이 뒤떨어지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환경 상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이런 저런 부분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은 오래 계셨던 분들 뿐이다. 고령화 때문에 과학기술계가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사회자 = 고령화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에서 염려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

정초록 생명연 박사(이하 정초록) = 박사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여자의 경우 30대 중반이고, 남자의 경우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다. 스타트라인이 다르다. 행정직에 계신 분들은 대학 막 졸업해서 20대에 시작을 한다. 우리는 30대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와서 고생해 힘을 가질 때 즈음이 50세 전후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체력이 딸리기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는 게 아니라, 역할의 재정립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회자 = 나이를 떠나서 연구 역량을 유지시켜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려면 어떤게 필요한가. 50, 60세가 되어서까지 연구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대신 이런 것들이 보완이 되면 할 수 있겠다 싶은 부분이 있는가?

조준현 에너지연 박사(이하 조준현) = 정초록 박사가 말한 것처럼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할 때다. 연구원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평가다. 젊은 사람들이나 시니어나 똑같다. 나중에 내가 시니어가 됐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과는 역할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젊은 과학자들에게 일이 몰리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시니어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평가 잣대를 마련해 다른 측면에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세대 간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사회자 = 일반 직장인들도 비슷할 것 같다. 출연연은 그런 것들이 상대적으로 늦지 않나 생각된다.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들이 쉽지가 않다.

진승민 화학연 박사(이하 진승민) = 그 분들의 역량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선입견은 갖지 않는 게 좋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과학기술계 연령별 분포가 기형이다. 1970∼80년대 초반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뽑고, TO를 통제했다. 그게 누적이 됐다. 왕창 뽑고, 안 뽑고 하다 보니 기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계획적으로 분포를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대안 중 하나는 투 트랙으로 가는 것이다. 연구를 하거나, 정책·기획 쪽으로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 젊은 과학자들에게 사명감이란?

사회자 = 젊은 과학자들이 열정이나 끼는 많은데, 사명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반 직업인과 다를게 뭐냐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초록 생명연 박사.
정초록 생명연 박사.
정초록 = 과학자는 국가적인 사명감보다 자기 나름의 소명감 내지는 자긍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이 일을 선택하진 않는다. 내가 이 일을 선택했던 건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과학자들도 과학자로서의 자긍심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진승민 = 시니어 과학자들이 볼 때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젊은 애들이 열심히 안한다고. 그런데 효율적인 면을 더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밤새 불켜놓고 있는 게 효율적인 건 아니다. 일할 때 집중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시각을 다르게 봐야 할 것 같다. 1970∼80년대에는 제조업이 성행했다. 제조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고부가가치 일을 하다보면 시간보다 효율을 더 따져야 한다. 밤새 일을 안했다고 해서 일을 열심히 안한다, 연구에 매진 안한다라고 매도하면 안된다. 사실 밤새 일했다고 하면 좋아하신다. 그런데 그게 비효율적일 수 있다. 퍼스트무버로 도약해야 할 시점에서는 더더군다나 밤샘은 멀리해야 한다. 피곤한 상태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없다.

조준현 = 시대적인 트렌드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입시 결과만 보더라도 공대가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사명감이 없다는 게 이런 상황과도 연결지어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환경도 고려를 해야 한다. 과학자 입장에서는 사명감을 갖고 있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까 떨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공학이라는 게 개인보다는 전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이다. 파급력이 상당하다. 그런 부분을 연구하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사명감이 없을리는 없다.

강현우 = 환경을 생각해봐야 한다. 외국에서 포닥을 하고 와도 정규직이 안 된다. TO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구를 하고 싶어서 출연연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이 사람들이 단순히 취업 때문에 그럴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서다. 논문을 1년에 몇 편씩 내야 그나마 비정규직이 보장된다. 거기에서 TO가 생기면 그 중 몇 명이 들어가는 정도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굉장히 전투적으로 임하고 있다.

정영도 = 입사 면접 볼 때 그랬다. 지금까지 받은 것을 돌려드리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낯뜨거운 이야기지만 정말 그렇다. 국가에 대한 사명감도 있지만, 엔지니어로서 인류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 개발하는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들어서 걱정되는 건 출연연도 돈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해서 걱정이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지만 돈이 안되는 연구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고민이 된다. 돈은 안되지만 자기 시간 써가면서 늦게까지 일을 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많다. 사명감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지 과학자의 피는 쭉 흘러왔고, 또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 창업에 몸사리는 젊은 과학자들 오명…"창업, 완벽한 준비없이 될 수 없다"

사회자 = 모험심이나 도전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구원에서 창업을 많이 권유하고는 있는데, 도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진승민 박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소 기업을 창업한 만큼 생각하고 있는 게 많을 것 같은데.

진승민 화학연 박사.
진승민 화학연 박사.
진승민 = 현재 겸직 하고 있다. 일정 기간 후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연구원을 나갈 생각이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돈만 벌기 위한 회사는 아니다. 사명감이 있다. 사실 창업하기 전 기술을 개발하고나서 기술이전이나 라이센스 판매 등 많이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 사업화에 직접 뛰어드는 것 보다 못했다.

또 한 가지는 펀드의 국가 의존도가 너무 높다. 그게 사업을 한 이유다. 출연연의 자율성 이야기하는데,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펀드의 국가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다. 의존도를 떨어뜨려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현우 = 창업에 도전하라고 하는데, 사업 마인드가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냥 기술이 있고, 제품을 잘 만든다고 해서 창업하면 그때부터 이것 저것 끌려다니느라 결국 망하게 되더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정책적인 부분이 보완된다면 가능할 것 같지만 맨땅에 헤딩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게 모험심과 도전이랑 연결된다는 건 조금 안타깝다.

◆ 출연연간 융합연구, 현실적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을까?

사회자 = 요즘에 강조되는 게 출연연간 융합연구다. 사실상 다른 연구원과의 소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가.

조준현 에너지연 박사.
조준현 에너지연 박사.
조준현 = 확실히 예전보다는 늘어난 것 같다. 서로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연계하면 그것이 융합의 시작이다. 실제로 에너지연 내부 전공자들도 다 다르다. 원내에서도 다른 팀들과 일을 하는 게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을 고쳐나가기 위해 입사 동기들이 뭉쳤다. 각자 분야에 대해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 공유하고, 과제를 책임질 수 있을 때 같이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초록 = 융합연구는 원래 진행되고 있었다. 융합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야지, 누가 시킨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묻고 대답하는 것을 억지로 있어 보이는 것 처럼 푸시하니까 성과 역시 잘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니즈에 의해 진행되는 게 진짜 융합연구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 "지구만한 망원경 만들자"…외국에서는 'OK' 우리나라는 '황당무계'

사회자 = 조금 거창하지만 과학기술계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현우 천문연 연구원.
강현우 천문연 연구원.
강현우 = 천문학 쪽만 하더라도 솔직히 자체적인 생산성이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것들이 많다. 대만이나 태국 등 정부 지원이 확실하다. 조건없이 오라는 곳도 많다. 몰아치는 게 장난이 아니다.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전 세계 석학들을 한 곳에 모으는 등 적극적으로 나온다. 지구만한 크기 망원경 만들자는 것, 아마 황당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많을 거다. 그런데 이미 시작된지 오래다. 남아공과 호주에 설치를 하자고 예산까지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이야기 꺼내면 아마 황당무계하다고 무시당할게 뻔하다.

우리는 무얼하고 있는가. 이미 그런 쪽에 합류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현재 동남아 쪽에서 기초과학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그쪽에 출장 갈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많이 가고 있다. 중국도 무섭게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초록 = 전체적으로 봤을 때 거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주 희망이 없는 것 같진 않은데, 기초과학 분야가 문제다. 먹고 사는 게 걸려 있는 상태에서 과학자들이 사이언스를 한다. 그 문제를 벗어나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된다. 기초과학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갇혀 있다.

정영도 = 미국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이유는 제조업이 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제조업이 융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술 자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열심히 일하는 것 다 안다.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효율이 얼마나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인재 부분이다. 젊은 세대에게 비전을 확실히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 "과학자들이 연구비 걱정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

사회자 = 기대도 있고, 우려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본인의 꿈과 계획은 어떠한가.

진승민 = 재단을 만드는 게 목표다. 만들어서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자유롭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배 과학자들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단, 회사가 안 망하는 조건에서다.

조준현 = 영향력있는 리더가 되서 정부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 과학기술인들이 예산 걱정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정영도 = 인류를 위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 일단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언젠가 돈은 안되겠지만 도움이 꼭 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 우주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은 있다.

정초록 = 사회에 도움이 되고,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강현두 = 젊은 친구들이 과학을 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어릴 때 부터 이것하고 싶다, 저것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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