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과학자가 연구현장 바꾼다]①사명감 대신 즐겁게 연구한다
도전·융합정신으로 무장 "창의적 연구 실험실에서 안나온다"

힘들었던 지난 시절,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이들은 다름아닌 과학기술인들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산업과 연결해 경제를 부흥시켰고, 그 결과 몇 십년 만에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추격형 R&D는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탈 추격형 R&D와 더불어 창조적 R&D로의 전환이 시급해지면서 젊은 과학자들의 역할도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고령화가 심각해져가는 과학기술계에 젊은 과학자들의 패기가 활력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신연구풍속도를 짚어보고 그들의 열정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지난 해 12월 5일 열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KRIBBian Day'. 과학자들이 한데 모여 교류를 즐기고 있는 모습.
지난 해 12월 5일 열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KRIBBian Day'. 과학자들이 한데 모여 교류를 즐기고 있는 모습.

#1. 불과 10년 전 만해도 과학자들의 일상은 피곤했다. 이메일 체크로 시작되는 하루. 팀 혹은 과제 기획회의와 담당 연구과제 자료 조사, 담당 과제 연구와 회의 자료 준비, 세미나도 참석하고 각종 행정처리 역시 시간 내 처리해야만 했다. 저녁 식사를 먹은 뒤에도 연구는 지속됐다. 퇴근 후에도 연구를 위한 스터디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일과.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안으며 취침에 들지만, 다음 날 꽉 차 있는 일정 덕분에 편히 잠을 잘 수 조차 없다. 평일에만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주말에도 이런 패턴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평생 마르지 않는 샘이 말라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 과학자들은 힘이 들었다.

#2. K 연구원 A 박사. 연구원에서도 대표 젊은 과학자로 꼽히는 A 박사는 연구하는 게 마냥 즐겁다.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매력에 이것 저것 따지지도 않고 출연연에 들어온 A 박사. 그는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한다고 했다. 연구원 자체 미션 과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A 박사의 주 관심 연구가 아니다. 그는 해야 하는 연구 외에도 하고 싶은 연구 과제를 여러 개 진행해야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안해도 그만인 연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니 약간은 모험이고 결과가 잘 안나올 수도 있지만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구 욕심이 많은 편이죠."

그의 연구 욕심은 같은 팀 내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격려를 보내고 있다고. 그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야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구에만 계속 몰두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불과 10년 전의 일도 아니다. 2011년 한 언론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출연연구기관 과학자 10명 중 3명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국으로 떠나고싶다고 대답했다. 다른 7명 역시 이유는 비슷했다. 조사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3년 전 한국 과학기술계 연구 환경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터널이었다. 그러나 계속 걸어가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야 하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다.

여기에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 현상은 정체돼 가는 과학기술계를 더욱 더 부채질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과학기술계가 창의력과 상상력을 앞세운 창조경제를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국회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장병완 민주당 의원이 정규 연구직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40대 이상이 67.4%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반면 20∼30대 연구원은 32.6%에 불과한 것으로 연구원의 고령화와 연령대 편중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과학자들의 부재, 연구현장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랬던 연구 현장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젊음'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 대놓고 드러내진 않아도 이미 자신들의 존재감을 현장에서 마구 발산하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의 아우라는 침체돼 있는 과학기술계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꿔 놓을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으로 여겨지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인식이었다. 2014년 출연연의 젊은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출연연이 정말 좋다"고 답했다. 그들에게 있어 출연연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었다.

윤여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온실가스연구실 박사는 "출연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수평적 구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어느 정도 구축돼 있다"며 "노벨상을 수상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주저않고 출연연으로 왔다. 상을 수상하신 분들을 보니 젊은 시절 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수상을 하더라. 함께 하는 연구를 통해 시너지를 낸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 젊은 과학자들의 강점?…"변화에 민감하고, 융합에 강하다"

젊은 과학자들의 강점은 변화에 민감하고, 대응dl 빠르다는 점이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기술 패러다임에 맞춰 가기 위해선 기술 동향에 늘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 과학자들의 활동 반경은 SNS로 표현되는 대외 활동들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갖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윤여일 박사는 젊은 과학자들끼리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활동들이 활발하다. 그런 쪽에 가입을 하다보면 거미줄처럼 어느새 서로 모르는 분야를 알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그런 부분이 선배 과학자들의 가려움을 긁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라 생각된다. 젊은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교류를 열심히 하니 자연스레 융합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게 젊은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현재경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자현미경연구부 박사는 "기존에도 알게 모르게 융합 연구를 많이 진행했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많이 지원을 해주는 것 같다.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더 많은 소통을 하고, 같이 연구를 한다면 더 좋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 "실험실에 앉아 있어 봤자다…벗어나야 창의적일 수 있다"

이들 젊은 과학자들의 특징은 철저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었다. 시간에 쫓기다보면 연구는 커녕 자신의 생활까지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조준현 에너지연 박사의 주말은 무조건 개인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된다. 그는 "창의성이 자리에 있어봤자 나오는게 아니다. 과학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문화·예술 활동들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술같은 취미 생활도 하고 있고, 여행도 많이 가고 한다. 주말에는 최대한 일을 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경 박사는 프라모델 만들기가 취미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 온지 이제 2년 조금 넘었다는 그는 "원래 취미가 프라모델 만들기였는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다 팔았다. 그런데 아내가 취미없이 어떻게 연구 생활을 지속할 수있겠냐고 해서, 다시 시작했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실제로 여유를 이 작업을 하면서 찾는 편이다. 작업에 몰두하고 나면 머리가 깨끗해져 연구에 더욱 더 몰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연연 대표 젊은여성과학기술인으로 꼽히는 정초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 정 박사의 취미는 야구다. 연구를 위해서는 체력관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 출신이다보니 자연스레 야구와 친해지게 됐다. 리틀자이언츠에서도 활동한 경험이 있다"며 "주말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연구 역시 체력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연구 몰입은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여일 박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기술서적 대신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는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다른 분야를 봐야 한다는 게 그만의 지론이다.

윤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난점이 생기면 다른 전공자들과 이야기하면서 해결을 한다고 하더라. 외국의 경우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갑자기 번쩍 해결책이 떠오르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게 미흡하다. 그래도 조금씩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젊은 과학자들의 역할?…"선배 과학자들이 닦아 놓은 기반에 창의·상상력 덧입혀야"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젊은 과학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초록 박사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꾸준히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호기심 해결을 위한 노력과 배짱이 필요하다"며 "당장의 평가에만 신경쓰면 결과를 내야 하는 일만 잘 할 수 밖에 없다. 마인드의 문제다. 부딪치고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국민들이 바라는 점도 그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강현우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선배 과학자들이 뿌려놓은 기반 위에 다른 기술을 접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시대가 변했다. 선배 과학자들은 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했던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다. 그들이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마음껏 연구 욕심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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