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박물관을 가다]③주정부에서 예산지원 받지만 기관 운영은 독립적
우리나라 과학관은 부처 관료가 관장으로…미션도 여전히 '전시'에 집중
과학기술사 전공의 김동원 하바드대 객원교수는 "독일이나 영국 등 과학 박물관 선진국의 경우 과학관의 미션을 명백하게 '교육'에 두고 있다"며 "이는 전시물 확보 및 유지 보수, 각종 기획전시 등등 지속적인 활동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결국 '돈'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버나드 웨이드먼(Bernhard Weidemann) 홍보팀장은 "독일 박물관의 경우 예산의 대부분은 뮌헨 주정부로부터 나오고 여기에 기업 및 개인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다"며 "운영위가 있어서 외부로부터의 입김을 차단하고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의 경우 대전에 국립 중앙과학관,과천에 국립 과학관이 운영되고 있고, 이어 광주와 대구 등에 과학관이 세워졌다. 그러나 관장 등이 전직 과학기술 관련 관료들의 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관료들이 가다보니 장기 비전을 갖고 움직이기 보다는 단기성과에 치중하고, 자료수집과 교육 등 박물관 본래의 기능 보다는 전시에 치중하게 된다.
운영의 독립성도 위협 받는다. 국립 대구과학관의 경우 직원 채용에 지역 유력 인사들의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이 드러나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곳은 그 때문인지 관료가 아닌 부산대 교수 출신의 인사가 관장으로 최근 부임했다.
과학관의 미션도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국내 과학관은 대부분 전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게다가 예산상의 이유로 기획전시 등은 가뭄에 콩나듯 해야 하는게 현실이다.
교육의 경우 특히 미래 세대를 초점으로 삼고 있다. 독일 박물관에는 매일 5000명의 방문객이 있고 이 가운데 반은 30세 이하이다. 특히 유치원생 등 아이들과 10대가 과학에 관심을 갖는 것을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이들이 자라나서 관련 일을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과학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테마별 가이드 프로그램은 모두 39가지가 있다. 농업에서 알타미라 동굴, 화학 실험, 컴퓨터 실습, 에너지 기슬, 유리 기술, 악기, 광학, 제지, 약학, 인쇄, 선박, 우주 여행, 측량 및 지도제작, 섬유 등에 대해 매일 혹은 주간 단위로 설명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해 설명 듣는 것을 물론 작동 원리나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교육을 위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열린 실험실'. 인근 대학과 협약을 맺어 실제 과학자들이 와서 실험을 한다. 그 과정을 학생들이 지켜볼 뿐 아니라 직접 실험에 참여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높이기도 한다. 열린 실험실을 통해서는 참여자들이 자신의 취미는 물론 직업 행로를 선택하는데 참고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실험하는 것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질문하고, 체험하며 과학적 진보와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기도 한다는 것.
이와 함께 도서관을 두어 보다 깊이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관과 마주 보고 있는 도서관에는 3500종의 정기간행물이 비치돼 있고, 90만 권의 장서가 있다. 출판사와 개인의 기부에 의해 조성됐다. 아인슈타인과 프라운호퍼, 디젤 등이 갖고 있는 서적들도 보유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인도 이용하도록 했다.
기록물 수집 및 보관도 중시하며 그 양과 질도 막대하다. 100만 장이 넘는 사진과 2만2000점의 자서전 및 원고, 16만점의 카탈로그와 매뉴얼, 12만점의 설계도, 1만점의 과학자, 테크니션, 엔지니어의 초상이 있다. 이런 연유로 과학 및 기술 역사가들의 성지와도 같이 여겨지고 있다. 독일 최고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과학 및 기술 아카이브로 매해 수백명의 연구자들이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 등으로 자료를 이용하고 있다.
알찬 전시를 위한 공작실(workhops)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시품의 유지 보수는 물론 모형 및 모조품 제작과 전체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경 그림도 직접 그린다. 박물관 측에서는 이 공작실을 박물관의 심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23개 분야 90명의 전문가가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의 전문 분야는 비행기 복원, 전기, 열, 모형 제작, 사진, 플랜트 관리, 과학 기구 복원, 자동차 및 기계 복원, 목수, 화가 등등이다.
국내의 경우 기본적으로 공작실이 갖춰져 있지만 매우 빈약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관이라는 국립중앙과학관의 경우 인원이 3명에 불과하다.
자체 연구 기능도 강조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산업의 상호 작용 및 발전에 대한 연구는 독일 박물관의 초기부터 강조돼 왔다. 현재는 지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수준에서 협동 활동과 나노 기술과 정보 과학, 열린 실험실 등의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다 나은 박물관이 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 박물관은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효과적 미션 수행을 위해 자문 위원회를 두고 있다. 과학 및 산업계와 학계, 지방 및 중앙 정부 인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전시와 교육, 강연, 도서 수집, 자료 발간, 연구자들의 레지던스 지원, 연구자금 조성 등 박물관의 전체 운영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세계적 박물관인 만큼 미국의 스미소니안 협회와 영국의 과학박물관 등과도 1996년부터 협력 관계를 맺고 움직이고 전시 등에서 협조하고 있다.
"박물관은 과학과 기술이 미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생산할 것인가? 장래에는 어떻게 사람과 물자를 수송하나? 노후에 양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의료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 인류에 적당한 식량 생산은 어느 정도일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반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는 필수적이고, 그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데 박물관이 역할해야 한다."
박물관이 전시 기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데 역할하고, 갖고 있는 풍부한 자료를 통해 미래 문제 해결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독일 박물관에서는 이미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과학 박물관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이미 자리잡은 세계 유수 과학관과의 교류를 통해 내실을 다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지원과 함께 종사자들의 책임 의식과 사명감이 높아져야 한다. 국민들도 과학관이 공공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갖는 한편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학습 등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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