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연 정동수 박사, 37년 재직후 작년말 퇴임…봉사활동 위해 탄자니아行
연구하며 봉사활동 꾸준히 병행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건 여유"

1월 3일, 자동차 엔진과 에너지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았던 정동수 박사가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났다. 평생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해외 봉사활동을 위해서다.

지난 12월 31일 37년간 몸담았던 한국기계연구원을 퇴직한 그는 3일이 채 지나지 않은 그 날, 아내와 함께 홀연히 아프리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그였다.

정 박사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진행하는 개발도상국 과학기술지원단 사업 일환으로 앞으로 약 8개월 동안 탄자니아 아루샤에 위치한 '넬슨만델라 아프리카 과학기술원'에 방문 교수로 봉사하게 됐다. 일단은 교수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강의와 더불어 정부 기관의 자문 역할 등도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놀아봐야 퍼질 거 뭐하러 시간 낭비 하겠습니까. 원래는 9월 달에 가야 했는데, 퇴직 시기와 맞물려서 이제야 가게 됐습니다. 영영 가는 건 아닙니다. 8월에 다시 돌아오니 그때 다시 만나죠.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들고 오겠습니다."

남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하다는 그를 출국 전 날인 2일 한 카페에서 만났다. '퇴직하자마자 너무 빨리 떠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박사는 "너무 오래 한 직장에서 있었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왔으니 벌써 37년 된 셈이다"라며 "37년 동안 솔직히 안 놀고 늦게까지 일하고, 공휴일에도 연구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쪽으로의 외도가 설레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두려운 것도 있었다. 정년 퇴직을 하고 다른 일을 바로 시작하면 그 일에 빠져 다른 일들을 못하게 될 것 같았다"며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봉사활동을 택했다. 직장 생활이 바쁘다 보니 봉사 활동을 따로 시간을 내서 하진 못했다. 37년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재충전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도국 쪽에서 그에게 바라는 것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보다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가 어떻게 발전을 해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공무원들이 알아야 그 전철을 밟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탄자니아가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 비해 지리적 여건이 좋다.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다"며 "고용 창출과 더불어 공단, 연구단지 조성에도 도움을 줄 예정이다. 아프리카 제일 신흥 산업국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정 박사의 이런 '돌출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거친 면과 달리 그는 연구원 안에서도 소문난 열혈 봉사자였기 때문. 7년 째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를 해왔고, 그 노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대전·충청지역 아름다운 가게 운영자문위원회의의 공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이 곳 저 곳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내리던 그였다. 정 박사는 "어떻게 보면 그런 행동들이 과격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맞지 않는 것을 맞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이들이 연구원을 퇴직하고, 아프리카로 떠나는 것에 대해 좋아할 수도 있다. 안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8개월 후 돌아와서 더욱 입바른 소리를 하고 돌아다닐 것"이라고 선전포고하기도 했다.

◆ "에너지 자급률 형편없는 우리나라, 그런데도 에너지 펑펑 쓴다"

정동수 박사는 매일 출근길 운전을 하다가 신호대기 상황이 되면 신호를 껐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였다.
정동수 박사는 매일 출근길 운전을 하다가 신호대기 상황이 되면 신호를 껐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였다.

그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바로 '절약' 때문이었다.

"1996년도부터 3년간 기계연 유럽 사무소장으로 런던에 파견나가 있었습니다. 한 5년 정도 예상을 했었죠. 한국 대단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가 영국에 공장을 몇 개 씩 지었을 때니까요. 여왕이 나와서 테이프 커팅을 하고, 그 기사가 신문 1면에 실렸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궁금해했죠.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길래 대규모로 공장을 짓고 하냐고요. 저한테도 기자들이 많이 찾아왔었습니다. 그런데 IMF로 한 순간에 무너졌어요. 해외 사무소 계획도 전면 취소됐고요. 영국 사람들이 보기에도 참 황당하다 싶었겠죠."

정 박사에 말에 따르면 IMF가 터졌지만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는 그대로였다. 한 겨울에도 집에만 들어가면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채로 지냈다.

정 박사는 "영국 사람들을 보면 겨울에 거실에서 숄을 걸치고 무릎에 담요를 덮고 뜨개질을 하며 겨울을 난다. 에너지 자급자족이 되는 영국도 절약을 하는데, 에너지 자급률이 형편없는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펑펑 쓰고 있는 셈이었다"며 "에너지 절약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절약, 기부 정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파견나가 있을 때 그의 눈에 띈 가게가 하나 있었다. '옥스팜'이라는 샵으로, 성격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게'와 비슷하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샵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틈만 나면 그 곳에 가서 어떻게 운영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기부를 하는지 자세히 살펴봤다"며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가게'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타이밍은 딱 들어맞았다. 대전에 아름다운 가게 1호점이 생겼고, 정 박사는 주저않고 달려갔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셈이다.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아름다운 가게 입장에서 볼 때 그는 복덩이 일 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던 출연연 내 활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집 안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버릴 게 산더미다. 출연연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연구원들이 여러 곳으로 출장을 다니기 때문에 안쓰는 물건들이 꽤 쌓여있다"며 "그런 물건들을 쌓아 놓는 것도 낭비고, 버리는 것 역시 낭비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바자회 등의 활동이 그런 의미에서 진행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봉사 활동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기회가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에 매몰돼 선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곳을 못 본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아집이 생기고 편견이 생기기 쉽다. 다른 곳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세계 최초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우리나라 문제 많다"

그는 여전히 입바른 소리를 하는 과학자였다. '37년 동안 몸담았던 연구원을 떠나는 데 미련은 없냐'는 질문에 정 박사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개발이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는 나라다. 노력해봤지만 그건 쉽지 않다"며 "너무 빠르게 바뀌는 기계 분야는 그런게 더 심하다. 솔직히 한계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정 박사는 연구만 했던 과학자였다. 그래서 가정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요한 걸 포기하면서까지 연구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그는 "시스템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기준에 시스템이 부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지 않는다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도 힘든 상황인 것 같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큰 실적 내기가 힘들다. 기계 분야나 에너지 분야는 더 심하다. 가만히 있어봐야 국고나 축낼 것 같아 과감하게 새출발을 결정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로서의 생활을 끝낸다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연구원 생활을 정리한 그는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있다.

"뭔가 명확하진 않지만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1인 연구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로 창출될 수 있는 부가가치가 엄청나다는 거 알고 계시죠? 연구원에서 아무리 기술료 많이 받는다고 해도 연봉 2억을 못 넘어갑니다. 1억 원 넘게 받아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데요. 장기적으로 보고 가려고 합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사업화할 수 있도록요."

이같은 활동이 후배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거라 자신하는 정 박사. 그는 "과학자들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건 여유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짜여진 생활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그런면에서 1인 연구소의 장점은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조직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굳이 연구소가 아니어도 된다.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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