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②로잔공대 박사 출신 뮤지션 루시드폴
"내가 노래하고 사람과 세상에 반응하는 것도 모두 화학"

그를 생각하면 '욕심'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력이 워낙 화려해서 일수도 있지만, 무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이 여과없이 밖으로 내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게 좀 더 구체적인 이유일 것 같다.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스웨덴 왕립공대 석사, 스위스 로잔공대 조직공학 박사 출신에 스위스 화학회 '폴리머 사이언스 부문' 최우수 논문 발표상 수상 등 가수로서는 보기 드문 이력을 소유한 루시드폴. 2008년엔 관상동맥경화 치료에 가능한 물질을 개발해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직업은 '뮤지션'이다. 루시드폴의 말에 따르면 그는 태어났을 때 부터 '원래' 뮤지션이었다.

"저는 원래 뮤지션이었어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뮤지션 루시드폴이 어쩌다보니 대학을 갔고, 또 어쩌다보니 이공계 쪽으로 가서 학위를 받고 생활을 했고, 고분자화학자가 됐죠. 그게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 같아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갔던 것도 제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어요."

대학생 시절, 스스로에게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덧입힌 루시드폴에게 있어 학업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생 루시드폴은 음악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등용문만을 찾아 헤맸다. 당연히 학교는 거의 안갔다는 게 그의 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머리 속 계산보다 마음에서 오는 소리를 더 따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그의 남다른 욕심 때문이다. 무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해서 남들이 바라는 물질적인 소유욕은 그에게 있어 중심 가치가 아니다. 무언가 하고자 했을 때 따르는 결과도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단 했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결과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며 "뭐 하나에 꽂히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약간 즉흥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루시드폴에게 연구와 음악은 별개다. 융복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에게 있어 두 개의 분야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을 가고, 씻는다. 한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다른 영역의 일들이다"라며 "음악과 연구가 내게 그렇다. 병행이란 말을 하지만 실제로 두 가지 일은 전혀 다른 위상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화학은 '반응'이다. 음악을 하는 지금도 밴드와 연주를 하다보면 설명할 수 없는 '케미(Chemistry)'를 느낄 때가 많다는 루시드폴은 "내게 사람 사이의 반응도 화학이고, 사람과 세상간의 반응도 화학이다"라며 "음악 속 세계도 마찬가지다. 악기간의 상호작용도 화학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화학적 결합도'가 높은 음악을 하고 싶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2년만에 발매된 루시드폴의 정규 6집 '꽃은 말이 없다'는 그의 삶이 잘 녹아난 작품이기도 하다. 온전한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의 음악엔 다른 곳에 없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루시드폴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풍경과 소리를 다듬어 음악으로 완성시켰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죠. 사람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소리도 곧 자연의 소리입니다. 사람이 연주하고 그 연주의 울림을 다른 전기·전자적인 확성이나 변조없이 마이크에 담았습니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노래를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과정에서 가장 원하는 소리를 찾았을 뿐이죠."

루시드폴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일상 생활의 따뜻함이 전해져온다. 이렇듯 그에게는 일상이 노래의 소재가 되고, 가사가 된다. 그는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던 것들, 몸으로 느끼는 것들이 가사의 소재가 된 것 같다"며  "소리 만드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듣기 싫은 노래는 만들지 말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일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데뷔 15년차, 중견 뮤지션이 된 루시드폴이 말하는 그의 미래는 '하고 싶은 게 끊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다행히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가는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이렇게 꾸준히 음악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노래를 만드는데 에너지를 써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남는 에너지가 있다면 악기를 조금 더 다루는데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요계의 음유시인 '루시드폴'. 유행을 좇지 않는 그의 묵직함이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조용한 울림을 전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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