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순 ADD 연구원, 휴일도 잊은채 연구 매진하다 교통사고로 숨져
전술정보통신체계 등 국방연구개발 헌신…ADD, 연구소葬으로 넋 기려

"왜 거기에서 웃고 있어, 쓸데없이. 나와서 웃지."

지난 18일 오전 9시 ADD(국방과학연구소). 황정섭 ADD 박사는 해맑게 웃고 있는 고(故) 박귀순 ADD 팀장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는 "ADD는 물론 과학기술계는 성실했던 한 명의 과학자를 잃었고, 나는 친구를 잃었다"며 눈물을 삼켰다.

주말도 없이 연구에 몰두해 다른 연구원들의 귀감이 됐던 한 여성 과학자. 박귀순 ADD 팀장이 갑작스런 사고로 순직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9일 ADD에 따르면 TICN(전술정보통신체계) 개발 등 국방연구개발을 위해 헌신하던 박 팀장은 지난 15일 휴일 근무 중 갑작스런 차량 사고로 순직했다. 

故 박 팀장은 지난 일요일 오전 11시경 출근해 근무하던 중 오후 6시경 연구소 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다 원인 미상의 사고로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변을 당했다. 그는 휴일도 잊은 채 국방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았던 연구원이기 전에 세 자녀를 둔 어머니이였기에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1991년 연구소에 입소한 박 팀장은 지난 20년간 군위성통신체계, 합동전술데이터링크체계, 지휘소 자동화체계 등 정보통신분야 전문가로서 다양한 공로를 세워왔다. 2003년엔 국방과학상, 2011년에는 국무총리 표창 등 다수의 수상을 통해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ADD는 18일 오전 9시 연구소 내에서 영결식을 갖고 고 박 팀장의 장례를 연구소 장(葬)으로 거행했다. 

◆ 시간 모르고 계속 됐던 연구 활동, 든든한 가족들이 뒷받침

박 팀장은 한 마디로 가정을 포기하고 일만하는 연구원이었다. 1991년 박 팀장이 입소한 뒤 팀원으로 처음 만났던 황정섭 박사. 그는 "2남 1녀를 두고 있었던 주부였다. 항상 밤 늦게까지, 기본이 12시였다. 우스갯소리로 이렇게까지 일하면 집에서 뭐라고 안하냐고 했었다"며 "전화를 해서 남편에게 팀원 늦게 보내 '죄송하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그 열정 알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박 팀장의 연구 몰입은 무서울 정도였다. 한 번 맡은 일이 누락되는 일은 없었다. 박 팀장이 맡으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공식이 연구소 내에 공공연히 퍼져 있을 정도였다.

황 박사는 "어떻게 그렇게 연구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보니까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다 키우다시피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며 "남편도 ETRI 박사다. 두 사람다 직장이 있고, 비슷한 분야에 있으니 이해를 잘 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 박 팀장이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바로 전술정보통신체계(이하 TICN) 구축이었다. 음성위주의 고정형 저속 데이터 전술통신체계인 '스파이더'를 대체하는 차세대 전술통신체계로, 미래전 수행을 위해 음성, 데이터, 영상 통합 통신지원과 기동 간 지휘통제와 전술인터넷 지원이 가능하다. 정부는 운용시험평가를 거쳐 오는 2015년 말 전력화할 계획이다.

사실 TICN 기술은 박 팀장이 있었기에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던 기술이었다. 황 박사는 "사실 스파이더 사업을 2008년부터 전력화하기로 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다른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정부에서 당연히 용인해 줄리 없었다"며 "새벽 4시까지 설득 논리를 만들고 보고했다. 그 중심에 박 팀장이 있었다. 당시 보고 때도 '고생한 후배들 때문에라도 이 사업을 꼭 성공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열정이 보였었나보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장애물은 또 있었다. ETRI에서 개발한 와이브로 기술을 국방부 전체 체계에 도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황 박사는 이때만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승승장구 하던 와이브로 기술이 스탑상태에 직면하게 됐던 것.

그는 "당시 정보통신부 사람들이 TICN은 와이브로 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걸 일일이 의원들 만나며 설득한 게 박 팀장이다"며 "끝내는 다 설득해냈다. 만약 그 당시에 박 팀장이 그렇게 안했다면 현재의 TICN 기술은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 작지만 대찼던 ADD 대표 여성과학자, "바쁜 와중에도 후배들 카운슬링 도맡아"

영정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난다는 황 박사. 그래서 그는 영결식이 진행되는 내내 뒤쪽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바로 앞, 정면에서 쳐다볼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는 그는 "이번에 알았는데, 바쁜 와중에도 후배 여성 과학자들 카운슬링을 다 해주면서 고충을 들어주고 있었다"며 "많은 이들이 그의 짧은 생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박 팀장에겐 남다른 사명감이 있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자기 연구도 열심히 해야 했고, 후배들이 원하는 바도 모두 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러가지 일을 했음에도 그의 업무 정확도는 늘 혀를 찰 정도였다. 상사에게 사랑받는 후배의 전형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황 박사는 "성격이 깔끔하면서도 치밀했다. 한 번도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었다"며 "ADD 내부보다 육·해·공군 합참에서 박 팀장을 더 많이 알 정도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키도 조그마한 여성 과학자가 군에 와서 작전 개념에 대해 왈가왈부하니 신기하기도 했을 거라는 것. 군에서 조문을 많이 온 것도 아마 그 영향일 터였다.

황 박사는 "인간관계도 대찼다. ADD 여성 인력 중 그룹장을 제일 먼저 한 걸로 기억하고 있다"며 "본업에 충실한 연구원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그는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지, 너무나 급작스러워 다들 당황스러워하는 상황이다"며 "아무쪼록 박 팀장이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故 박귀순 팀장. 벌써부터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그만큼 그의 연구원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그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었던 삶에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빌어본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