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문환

귀향(歸鄕), 어머니의 품에 안기다!
(배알도 ~ 노량앞바다)

이제 나는 섬진강대교, 강과 바다의 경계에 서 있다.
강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강이 되는 시간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창조는 미묘한 그 경계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과 바다의 만남, 그 경계선에서는 어떤 것이 창조되어지는가? 

역사를 통틀어 그 찬란했던 문명들은
모두들 강과 바다의 만남에서 이루어졌던 것 아닌가?
나의 섬진강기행도 이곳 강과 바다의 만남에서 차곡차곡 파도처럼 쌓여
또 하나의 역사를 이루는 것 같다.

 

▲ 조문환

배알도는 세상유일의 강물이 바닷물과 만나는 지점에 생긴 해수욕장이리라.
겨울 해수욕장, 그것도 강물이 밀려 내려와 온갖 육지의 퇴적물이 쌓인 채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배알도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태인대교, 오른쪽에는 섬진대교가 버티고 있다.
태인대교는 망덕과 태인도를 연결하며
섬진대교는 하동과 광양을 연결하는 섬진강의 마지막 다리다. 

섬진대교위에서 강물을 보니 강물과 바닷물이 섞여 휘감아 돌다가
그대로 바다로 안긴다.
육백리의 행진을 통해서 강물에는 온갖 세상의 문신이 새겨져 있어 보인다.

왼쪽으로는 갈사만이고 오른쪽에는 광양만이다.
이름만 다를 뿐 바다는 하나다.
그 어디에도 경계선이 없다.
단지 사람이 만들어 낸 분절의 상징어 일 뿐이다. 

옛날 이 곳에 화력발전소와 제철소가 생기기전에는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아련한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 풍요의 고장이었다. 

하동김은 세상최고의 명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김은 물론 인근 바다는 어업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류문명의 향기를 맡고 산업단지로 밀려들어왔다. 

아직은 그 이익이나 폐해를 판단하기 이르다.
언젠가 우리의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물질문명의 공과를
우리의 후배들이 명쾌하게 내 놓을 것이 분명하다. 

부디 “그들은 우리의 지혜로운 선배였다,
후손과 미래를 생각하는 선조였다”라는 평판을 듣기를..

 

▲ 조문환

나의 섬진강 여정은 갈사리 제방에서 끝이 났다.
수십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을 제방을 막아 농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 곧 제방 밖과 안은 매립이 되어 조선소가 들어서게 되면
또 하나의 인류의 거대한 물질문명의 산물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발을 뗄 수 없다.
더 이상 강물을 따라 갈 수 없다.
바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제방도, 물길을 따라 걸어왔던 작은 오솔길도 여기서 끝이다. 

지난 1년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손잡고 함께 거닐었던 나의 애인,
섬진강과의 영원한 이별이다. 

내 감성의 근원, 내 영혼의 고향과도 같았던 섬진강
그를 통하여 세상을 보고 그를 통하여 나를 보며
그를 통하여 이웃을 보았던 나의 창(窓)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것에 감사를,
그리고 더 함께 하지 못함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내가 동행하지 못할 그의 길을 잠시 상상해 본다. 

좁은 길목을 빠져나온 강물은 마도와 대도를 지나 어머니의 가슴으로 안긴다.
앞에 남해섬이 가로막고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따스한 품이다. 

강물은 바다를 노닐어 본다.
그 상상속의 바다, 어머니의 젖가슴도 만져보고 꿈에나 그리던 평안이 넘쳐흐른다.

 

▲ 조문환

장군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노량바다, 이순신장군이 순국한 현장이다.
이곳에 오면 늘 그 순간이 드라마처럼 스쳐지다간다. 

나는 오래전 노량바다를 장군의 바다로 명명했었다.
장군이 아니었다면 노량은 오늘의 노량이 아니었으리라.
고개를 숙여본다. 

그리고 더 같이 할 수 없음에 아쉬움을 강물에 나의 염원을 실어 보낸다. 

너의 고향, 그 좁디좁은 작은 고향 데미샘을 잊지 말기를,
원래 네가 걸어왔던 길은 넓고 광활한 대지가 아닌
탯줄과도 같이 말라 비틀어진 작고 보잘 것 없는 오솔길과 같았음을...
지나온 길, 계곡과 돌 틈 사이에서 속삭여주었던 그 소리를 잊지 말기를,

네가 만났던 촌로들, 나물 캐는 아낙네들,
쥐불놀이하던 아이들의 지저귐을 잊지 말기를,
그들 보다 더 진실되고 아름다운 소리는 없음을 ... 

바람이 하는 말, 아침이슬이 네게 전해 준 영롱한 말을 잊지 말기를,
범람하던 강물위에 초연하게 물을 응시하던 황새의 모습을 잊지 말기를,
너에게 상처를 주었던 쓰러진 나뭇가지와 깨어진 바위를 원망하지 말기를,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파도에 상처입지 말기를,
큰물에 노닐더라도 작은 물을 업신여기지 말기를,
큰물도 결국은 작은 이슬 한 방울에서 시작된 것임을 ... 

태평양을 건너가 대서양을 지날 때에도
작은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상처입지 말 것이며 원대한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나의 친구여!

안녕!

 

▲ 조문환

섬진강은 이렇게 나와의 특별한 이별의 세레모니도 없이 동행을 마쳤다.
지난 1년, 꼬박 사계절이 흘렀다.
무모하게 섬진강과 함께 사계절을 같이 보내보고 싶었었고,
그의 여정과 함께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솟아났었다. 

섬진강을 사랑한다는 사람으로서 말로만 하는 것에 가식을,
단 한 번도 온전히 그의 길을 동행 해 보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한겨울 강위에서 뛰놀아 보기도 하고
하얀 눈 위에 누워 그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 보았으며
나 보다 먼저 눈 덮인 강을 가로질렀던 고라니의 발자국을 따라 가 보기도 했었다. 

매화와 벚꽃 흩날리던 날, 강물에 흐르는 꽃잎과
한여름 새벽에 피어올랐다 하늘로 승천해 버리는 구름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했었다. 

풀잎 끝에 맺힌 이슬 한 방울,
그 위태한 몸짓에 무릎 꿇고 그 황홀경에 빠졌던 순간들,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강물에 비친 긴 산 그림자,
내가 슬플 때 강도 슬프고 산도 슬펐으며
내가 기쁠 땐 강물도 기뻤고 산도 기뻐 춤췄었다.

“너를 통하여 나를 보고 나를 통하여 너를 본다” 

그를 통하여 강함을, 나약함을, 열정을, 순리를, 시작과 끝을 배웠으며
그 어느 것보다 능한 나의 스승이었으며 교실이었으며 코 뭍은 책이었다.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잘 보이는 섬진강육백리,
가는 허리로 모퉁이 돌아가는 섬진강이 아련하다. 

“나 너와 통했다....”

[출처] 섬진강 에세이 (100 - 마지막 회)|작성자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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