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를 지나면 섬진강은 간전면과 토지면사이의 협곡으로 들어선다.

 

ⓒ 조문환

피아골 단풍은 피처럼 붉어만 가고....

(토지면~피아골)

운조루를 지나면 섬진강은 간전면과 토지면사이의 협곡으로 들어선다.
지리산의 작은 아들격인 왕시루봉과 강 건너 간전면의 백운산이 만들어 낸
절벽 같은 곳이다. 

구례들의 평온함을 맛보아서 인지 이 둘이 만들어 낸 협곡은
마치 무림의 세계에 들어선 듯 쏴~한 느낌까지 든다.

그래서 인지 섬진강은 수심이 낮은 돌짝밭을 쏜살같이 헤엄쳐 지나간다. 

이곳에서는 해도 일찍 떨어져 버린다.
하지만 이곳의 낙조는 아! 차라리 완벽에 가까운 이벤트다.
잘록한 허리들 사이에 떨어진 낙조는 자연이 만들어 내는 최고의 선물이리라! 

진흙 속에서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듯이
협곡 속에서 연출된 낙조는 섬진강과 지리산이 만들어 낸 최고의 작품이다.

 

ⓒ 조문환
 

태양이 마지막 기운에 달할 즈음에
그의 초점은 과녁에 꽂히듯 왕시루봉 아래 작은 초당으로 쏘아붙인다.
태양의 마지막 일과이리라!
석주관 칠의사가 모셔진 곳이다. 

이곳에서 태양은 칠의사에게 예를 다한다.
“오늘도 나는 피를 토하는 삶을 살았음을...
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옛 조상들에게 예를 다하여야 한다는 ..“
그런 것일 것이다.

그렇다. 칠의사는 피를 토하는 삶을 살았던 분들이다.
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은
정유재란 때 구례로 침략해 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석주관성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우리들의 위대한 선조들이다. 

이 분들이 흘린 피 위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이분들의 피 값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 칠의사 뿐이겠는가?
누군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 초연한 삶을 살았던
민초들의 눈물과 피를 우리는 먹고 살고 있지 않겠는가?

 

ⓒ 조문환

칠의사가 모셔져 있는 석주관성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아마도 행정적 기능보다는 군사적 기능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왕시루봉과 백운산이 만들어낸 천혜의 협곡에 위치한 이유는
이곳이 군사적 요새이기 때문이리라.

역사이래로 이곳은 마한과 진한,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곳이다.
이것이 고려로 이어지면서 왜구를 격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섬진강이 섬진강으로 불리어진 것도 바로 이와 무관치는 않다.
이곳을 통하여 왜구는 이 땅의 내륙침입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협곡, 그것도 배로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이곳만 통과하면
영호남을 동시에 그들의 본거지로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섬진강을 지킨 것은 칠의사 뿐 아니다.
미물에 가까운 두꺼비들조차 왜구를 격퇴하는데 기여했으니
그래서 두꺼비 섬(蟾)자가 붙은 강이 된 것이다.
역사가 붙여 준 이름이다.

“우리들이 두꺼비보다 충성심이 없겠는가?”
칠의사들은 두꺼비가 지키고 두꺼비가 만들어 놓은 섬진강이라는 이름을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면서 지켜냈다. 

그래서 섬진강은 사사로운 강이 아니다.
역사가 흐르는 강이고 피가 흐르는 강이다. 

천년이 지난 즈음에도 작은 돌로 쌓아놓은 성벽은 온전하였다.
허리보다 낮은 성벽, 작은 돌멩이들의 연합,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성벽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성벽을 이룬 작은 돌멩이에 민초들의 피가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였다.
칠의사를 비롯한 의병들은 목숨으로 성벽을 지키다 그 자리에서 산화하였다.
그 성벽위에 핏빛으로 물든 단풍잎이 내려와 앉아 있다.

 

ⓒ 조문환

이를 지리산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피아골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역사의 잔주름이 깊은 곳이다. 

성벽을 넘어 한 고비만 더 가면 피아골이다.
피아골은 피밭 [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고 불렸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는 곳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쳐 동학혁명과 여순반란사건의 현장이었으며
6.25 전쟁 속에서는 빨치산 이현상의 본거지였었다.
그 구비마다 골짜기마다 낭자한 피가 응고되어 있는 곳이며
이 나라 역사의 능선이요 협곡이자
민초들의 암울했던 삶의 높낮이를 기록해 놓은 등고선이리라! 
그래서 피아골이 되었는지 모른다.

 

ⓒ 조문환

그래서인지 모른다. 피아골 단풍은 핏빛이다.
피를 먹고 자라서인지 모른다.  

설악산과 내장산의 단풍이 인위적으로 그려놓은 화려한 유화라면
피아골의 그것은 민초들이 자기 손끝을 잘라 그 피로 그려낸 민족화다. 

조식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고서는 단풍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단지 그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 속에 흐르는 정신, 그 혈을 보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섬진강에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피아골 단풍이 토해 놓은 피를 섬진강이 받아 흐르게 하는 것이다.
석주관성의 칠의사들과 의병들이 토해 놓은 피 일 것이다. 

한동안 피아골 단풍은 핏빛으로 붉어져 갈 것이다.
그날을 기억하라고 할 것이다.

석주관, 칠의사, 피아골 그리고 섬진강과 지리산...
그 속에 뜨거운 피가 끓는다.
끓는 피가 있었기에 역사가 있고 오늘의 내가 있다. 

섬진강이 내려다 뵈는 석주관성 언저리에 자리 잡은 칠의사의 묘 앞에 섰다.
그들의 삶만큼이나 분봉은 작고 초라했다.
이분들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곤 엎드려 큰절 드리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찬 이슬이 풀잎에 맺힌 땅에 엎드렸다. 

하늘이여! 이들의 피를 기억하소서!

 

▲ 석주관성 칠의사 묘소아래 은행나무....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2012 HelloDD.com
 

[출처] 섬진강 에세이 (92)|작성자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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