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울 땐 완행열차를 타라!
그래도 그리울 땐 섬진강으로 나아오라!
(기차마을 ~ 가정역)

나에게 있어 기차는 추억이다.
그리움이다.

경전선철도가 개통 되던 날
그 우렁찬 첫 기적을 울리며 새까만 기차가 동네를 가로질러 달릴 때
나는 집 앞 묘지에 앉아 저 멀리 연기를 뿜으며 터널로 사라져 가는 그를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철길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나의 놀이터였다.
철로에 엎드려 귀를 대면 저 멀리서 아스라이 다가오는 기차의 울림이 들렸고
이는 내 귀를 울리고 내 심장을 고동치게 했었다.

기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기어이 내 코앞을 지날 땐 가슴이 콩알 만해 지고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친구들과 언덕 아래로 숨어 몸을 바짝 낮췄었다.

기차가 지나 간 후 곧장 철길로 뛰어들어
회오리 같고 태풍 같은 바람에 나를 맡기고 두 팔을 벌려 서면
몸은 가눌 수 없이 흔들리고 나는 하늘로 날려 올라 갈 것만 같았었다.

사라지는 기차를 바라보며 다시 철로에 귀를 대고 엎드리면
기차는 바람이 되고 점이 되어 멀리 멀리 떠났었다.

철길은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키워낸 자궁과 같은 곳이다.
레일에 엎드려 들은 작은 점처럼 사라져 가는 기차바퀴소리는
어린 아이가 엄마 젖을 빨면서 들은 그 세미한 심장박동 소리와 같았고
그를 통하여 존재의 근원인 엄마를 직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는 곧 내게 그리움과 추억을 읽어 낼 수 있는 절대음감이 되었다.

여름철, 동네 어른들은 밤마다 모이시는 곳도 철길이었다.
목개불을 친구하고 밤이슬이 내려 옷이 축축해 질 때까지 얘기는 끝이 없었다.
엄마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웠을 땐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었다.

6년을 철길을 걸어 읍내로 통학했었고,
또 4년은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통학했었다.

동네 형님들이 빡빡머리하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간 것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입영열차를 타고서였다.
나를 부산 동래역에서 논산 연무역까지 실어다 준 것도 입영열차였다.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 서울로 가는 유일한 통로도
하루 종일 걸렸었던 서울행 순환열차였다.

4년 동안 나를 실어다 주었던 완행열차는 낭만의 공간이었다.

기차는 온갖 웃음소리며 통기타 소리로 가득 찼었고,
계란과 땅콩이 주 소재였던 홍익회 아저씨들의 손수레는 지금생각하면
드라마와 같았었다.

딸각 딸각 거리는 검표기를 들고 다니셨던 차장아저씨,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 마다 역무원과 기관사의 그 멋진 거수경례,
기관사는 역에 도착하면서 역무원이 꼽아 놓은 운전대처럼 생긴 뭔가를
낚아 채 가는 것은 마치 고난도 서커스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근 10년 넘게는 완행열차를 타본 기억이 없다.
비둘기호 완행열차는 더 이상 경전선을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둘기호 열차가 사라진 것은 그리움의 샘이 사라진 것이다.
추억을 찧어내던 절구통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감정인들 남아있을 리 있겠는가?
꽉 말라버리고 슬퍼도 슬프지 않고 기뻐도 기쁘지 않는 무미건조한 상태다.

나의 감성의 잔뿌리를 내리게 했었고,
내 심장을 고동치게 했으며,
나를 성숙시켰던 그 강력한 엔진은 이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호곡나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
마침 건너편 침곡역에서 출발한 증기기관차가 그 고즈넉한 소리를 지르며
하얀 수증기를 내 뿜고 있었다.

해질녘 섬진강에 완행열차가 내려앉았다.
그가 내 뿜는 수증기가 기차 꽁무니를 뒤따라갔다.
만화영화에서 봤던 은하철도 999와 흡사했다.
저 기차를 타면 은하수까지 가겠지?..........

기차를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차가 있기에 오늘날 곡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곡성이 있기에 기차가 기차답고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황금콤비다.

곡성이 아름다운 것은 그 강줄기의 유연함,
강을 닮은 곡성 땅의 순박함과 곡성사람들의 정감이 함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에 못지않은 것이 있다면
완행열차와 섬진강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증기기관차는 처음 타 본다.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는 왕복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차로 달린다면 단 십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증기기차는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 주는 듯 그 세배 네 배를 느리게 달린다.

증기기관차를 타면 섬진강 잔물결까지도 느낄 수 있다.
섬진강의 잘록한 허리, 그 허리 곁을 감아 도는 비포장 오솔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뽀얀 먼지도 볼 수 있다.

기차에 함께 탔던 수많은 사람들,
어느 누구도 얼굴에 웃음 한바가지 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수학여행에 나선 들뜬 아이들의 모습과 닮았다.

교련복 차림의 불량식품 판매원 윤재길씨는
기차여행을 기차여행답게 하며 증기기관차를 타는 또 하나의 이유이자 재미다.

객차 밖으로 나와 물끄러미 강을 바라보는 중년의 신사,
그 눈에서 빛나는 추억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추억하나를 건져 올렸다.

수십 년 전 경전선의 첫 기적소리,
내 귀에서 멀어져 가는 철거덕 철거덕 거리던 바퀴소리,
태풍처럼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던 기차 지난 후의 폭풍 같은 바람,
목개불 속에 피어나는 어른들의 이야기,
"계란, 땅콩, 사이다....." 홍익회 아저씨의 코맹맹이 소리.............

완행열차가 가져다 준 나의 소중한 추억,
이것들이 오늘의 나의 감성, 나의 깊은 내면의 정서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기관을 만들어 주었으리라.

하물며 그 것이 증기기관차이고 그것도 섬진강을 따라 흐르며
그의 육중한 몸매가 섬진강에 투영되어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과 견줄 수 있을까?

그렇다. 살아가면서 뭔가에 그리움에 휩싸일 수 있다면
그 그리움이 살아 있는 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울 땐 완행열차를 타자.
그래도 그 그리움에 주체를 하지 못할 땐 섬진강으로 나와 강물에 나를 던지자.

[출처] 섬진강 에세이 (86)|작성자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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