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육백리길을 걷기 위해 첫 발걸음을 내딛은 지 만 5개월이 지났다.

계획대로라면 연말까지는 푸른 물결 넘실대는 광양만에 도착해야하고
그렇다면 지금쯤이면 삼백리길쯤은 걸었어야 하는데,
나는 겨우 이백리 길 정도에 머물러 서서 방황하고 있다.

오다가다 많이 머뭇거렸는가 보다.

마른 겨울 강을 뒤돌아 보다 발걸음 쉽게 떼지 못했고
스치는 갈대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며,
작은 바위와 여울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소리에 빠져들어
내 갈 길을 재촉하지 못한 결과다.

섬진강과 함께 걷는 이것 또한 인생의 여정과 같은 것이겠지.

다소 느리면 어떻겠는가?
때론 사고를 만나고, 상처입고, 치유 받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고,

등 두들겨 주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왜 이 길로 왔느냐고 네가 갈 길은 저쪽인데... 그래서 방향을 바꾸고,

이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고, 다리아파 질질 끌며 그 상처를 싸매고,
그래도 걸어야 할 길이 이 길이며 내가 엮어 가야할 인생 여정이 아니겠는가?

목적한 시간에 도착하겠노라고 걸음만 재촉하지 않으리!
정해진 시간에 당도하기 위해 헛되이 걷지 않고 헛되어 보지 않으리!
내가 정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만날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동행해야 할 사람을 뿌리치지 않으리.

더 늦게 도착하더라도 가야할 길을 걷고 봐야 할 것을 놓치지 않으며
동행해야 할 사람의 손을 결코 놓지 않으리.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니.

아무쪼록 나로 인하여 상처받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나 또한 굽은 길로 인하여 상처받지 말아야 하며,
살아가는 세상 모두가 손 맞잡고 같이 걸어가야 하리.

이른 아침, 강진터미널은 장날도 아닌데 순창으로, 진안으로 떠나는 완행버스와
전주에서 손님을 태우고 도착하는 시외버스로 시골 버스터미널이 부산하다.

이정도 같으면 옛날에는 얼마나 큰 시장이었을까?

미장원, 이발소, 개소주집, 작지만 큰 슈퍼마켓, 작은 파출소, 분식집,
돼지국밥집, 섬진강 냄새나는 다슬기탕집.....
시간의 때가 묻어나는 장소들이다.

섬진강중학교 아이들은 왠지 섬진강을 닮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들도 섬진강을 나처럼 사랑하겠지,
커서 어른이 되어 나처럼 섬진강을 따라 걷겠지,
섬진강을 가슴에 꾹 보듬고 힘들 때 그 섬진강을 하나하나 펼쳐 보겠지,
비 오는 날이면 섬진강을 걷거나 섬진강 물소리에 귀 기울이겠지,
섬진강을 닮아 끈기 있고 바다로 향하는 원대한 꿈도 꾸겠지...

그래, 섬진강을 닮았다면 너희들은 다 자란거야,
시쳇말로 어른이 된 거야,
섬진강처럼 세상을 지켜내는 변치 않는 사람이 되거라!

강진교를 건너면 덕치면이다.
구 강진교와 신강진교가 나란히 서 있다.

길을 걷다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다리를 보면 멍해진다.
다리와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사연을 저 다리에 담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뎌냈을까?
새 다리에게 무엇을 전해줄까?

말없이 퇴역장수처럼 묵묵히 새 다리를 지켜보고 있는 구 강진교를 뒤로하고
회문삼거리를 맴돌다 강둑을 따라 걷는다.

오월의 아침 태양에 강물은 비늘처럼 빛난다.
비늘 한 겹 한 겹을 떼어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이것은 섬진강에서 따온 햇빛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오월의 태양은 벌써 뜨겁다.
회곡교가 가로지르는 회문들판에 아낙네들이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이
아지랑이 속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벌써 아침 새참을 마치고 밭이랑사이로 달려드는 동네 어머니들,
고추 모종을 옮겨심기 위해 품앗이 나온 분들이다.

품앗이를 구하지 못한 어머니는 홀로 그 넓은 밭떼기에 온종일 엎드려
인내를 시험해야 한다.

결국에는 추석에 오는 아들들에게 다 퍼 주시고 말텐데....
들에 엎드려 일하는 어머니들의 등이 멀리서 보면 꼭 낙타등 같이 외롭다.

물우마을 (아마도 물 위 마을 이라는 뜻 일 듯) 언덕에 서니
강물에 아이들의 얼굴이 비치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치 소라를 귀에 대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강가에 뒤늦게 만개한 유채꽃이 강물에 투영되어 나는 소리일까?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건넜을 징검다리가 물우교 아래에 손잡고 서 있다.
그러면 그렇지 아이들이 저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구나!
그러고 보니 언덕배기에 빨간 벽돌색 덕치초등학교가 내려다보고 있다.

그 위는 회문산, 그리고 맞은편은 원통산이다.
이 두 산이 덕치 아이들을 키웠고 섬진강이 젖을 먹였을 것이다.

내 어릴적 다녔던 초등학교는 집에서 오리 정도다.
지금 걸음으로 2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그 땐 한 시간은 기본이고
두 시간도 더 걸려서 집에 오는 것이 허다했다.

하굣길에는 어김없이 시냇가에 앉아 피라미와 실장어를 잡으며 놀았다.

도시락 반찬 국물이 흘러내린 책 보따리는 한번 씩 언덕에서 시냇가로 굴러 떨어져
해 질 때 까지 젖은 책을 말리다
엄마가 저녁밥 짓는 시간이 되어야 집에 도착했다.

이미 책은 퉁퉁 불어 있었지만...

그 땐 학원이 나를 키우지 않았다.
방과 후 학교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피아노와 영어학원이 저녁 될 때까지 나를 잡아두지 않았다.

시냇물이 음악을 가르쳐줬고
숨바꼭질과 총 놀이, 칼싸움 놀이가 나를 키웠으며,
나를 저녁 때 까지 잡아둔 장본인은 검은 그림자 드리운 들판과 산자락이었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어미 쉰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이 되었다.
그 아이들의 아들들이 또 아이를 낳아 기를 만큼 세월이 흘렀다.

지금이나 그 때나 변치 않는 것은 때 묻지 않는 아이들,
그 웃음 속에 진짜 웃음만 있는 아이들,
백지와 같이 순결하고 순박했던 아이들,
어른이 되면 그 웃음 속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은 왜일까?

덕치초등학교 앞 물우마을 아이들이
등굣길에 징검다리 건너면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검정고무신으로 실장어 잡는 아이들의 바쁜 몸놀림이
회문산과 원통산에 메아리 되어 들리는 듯하다.

영원한 스승인 어린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물우마을 앞 징검다리에서 아이들처럼 뛰노는 섬진강을 바라보니
나의 가슴도 섬진강처럼 뛰논다.

[출처] 섬진강 에세이| 작성자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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