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호를 지나고 나니 십년 묵은 체기가 풀린 듯 홀가분하고 통쾌하다.
댐이 섬진강만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섬진강을 탐하는 나 같은 이방인의 심상의 목까지 죄는 듯 하였다.

회전목마와 같은 호수를 떠나 이제 다시 흘러야 한다.
또한 강을 탐하는 이방인도 호수가 아닌 강을 따라 흘러야 한다.

그동안 나는 호수를 따라 맴돌기만 했다.
어지러울 뿐이었다.
마치 피오르드 해안처럼 심한 굴곡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내가 이랬을 진데 섬진강인들 오죽했겠는가?

오늘의 출발은 섬진강 댐에서부터다.
댐 아래로 내려가 떨어지는 섬진강의 위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강으로 가는 길은 없었다.
길을 만들어 헤치고 내려가야 한다.

험한 물줄기,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천지를 뒤덮을 듯 한 굉음,
그리고 포말 속에 피어나는 무지개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적어도 섬진강댐을 보기 전에는 그 정도는 되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섬진강의 용맹을, 그의 기상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섬진강댐 바로 아래는 강이 아니라 상처 입은 땅이었다.
아니 황무지, 폭격 맞은 전쟁터, 버려진 땅이 더 맞을까?

물 흐름은 멈췄다.

쓰러지고 부러지고, 뿌리채 하늘을 보고 거꾸러진 나무들,
칼날처럼 날이 시퍼렇게 선 바위와 동맹이들,
폭탄 같은 물에 쓸리고 패인 강바닥,
이곳저곳 흩날리고 흩어져 나무뿌리에 걸린 쓰레기 잔해들,

작은 돌멩이, 갈대, 쓰러진 나무들, 모래 한 알까지
물 폭탄을 등지고 그 방향이 모조리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이 선 바위와 돌멩이들이 나를 겨누고 있는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누구를 향한 겨눔인가? 그것도 한 방향을 향해서...

이들은 해마다 물 폭탄에 온 몸이 멍들어 왔다.
여름철 폭우로 댐에 더 가둬두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강물은 성난 노도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도 잠시, 비가 그치면 곧 바로 문은 잠궈지고
강은 또 갈한 땅이 되어 기나긴 목마름의 세월을 지내야만 했던 세월이
반세기가 넘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에 몸을 적시고 시간과 자연에 내 몸이 맡겨져 세월의 때가 묻은 것이 아닌
예고 없는 인공의 폭격에 상처 입은 영혼으로 살아온 결과다.

이들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하나하나 그들의 사연을 귀 기율여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너 또한 꼭 같은 놈이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상처입은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기도 했지만
그 현장을 좀 더 내 뇌리 속에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상처 입은 강을....

그래도 강은 흘렀다.
아니 그것이 운명이기 때문이다.

강은 흘러야 하고 사람은 걸어야 한다.
걷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고뇌가 없으며
고뇌가 없으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은 모든 아픔의 가장 확실한 치료약이다.
괴로움도 세월이 치료하면 추억이 되고
이별도 세월이 만지면 향수가 된다.

냉이처럼 쓴 고통도 세월이 쓰다듬으면 달게 되고,
원수도 친구가 된다.
세월 앞에서는 모든 것이 상대화 된다.

섬진강댐에서 상처입은 섬진강물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치유될 수밖에 없다.

댐에서 멀어지기를 얼마쯤,
섬진강은 고요히, 잔잔히 그의 갈 길만 갈 뿐이다.

칼날 같은 바위를 넘고,
뿌리채 뽑히고 꺾인 너무를 넘어,
폭탄 맞은 강바닥을 지나...

내가 그동안 그와 함께 해 왔던 상류의 진안과 임실에서 호흡을 같이 해왔던
바로 그 강이다.

반가웠다.
우리는 호흡만 들어도, 눈빛만 보아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된 듯 하다.
그는 옥정호의 복잡함도 섬진강댐의 상처도 모두 잊은 듯 하다.

강물은 미워하지 않는다.
강물은 이웃을 탓하지 않는다.
강물은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내 것이라 욕심내지 않는다.
모두가 내 편이고 친구다.

강물은 가야 할 길을 묻지 않고 지나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강물은 땅의 경계를 넘고 마음의 경계를 허문다.

강물은 이웃을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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