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계절이 잔인해져만 간다.
작년 겨울은 근 백년만의 한파라고 했다.
올해도 근년에 보기 드문 한파였다.

봄을 알리는 매화도 예년 같으면 3월 중순이면 만개를 하고
4월 초면 벚꽃에게 바통을 넘겨주었건만,
올해는 3월 말이 도어도 '필동말동' 했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잔인한 겨울이 겨울로만 끝이 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건만,
그 도가 지나치면 왠지 걱정이 된다.

이것을 세상의 이치라거나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치부하고 체념하기에는
계절의 잔인함이 너무 거센 돌풍으로 다가온다.

이를 대 우주의 원리로 바와 할까?
아니면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봐야할까?

어떻든 계절의 변화, 세상의 변화에 옷매무새를 단단히 여미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덜 상처 입게 될 것이니까

고향과도 같이 느껴졌었던 신평면을 출발해서 운암면으로 향했다.

신평면의 창조다방은 내 언젠가 찾아가서 구수한 커피 한잔 꼭 하리라!
아랫이용원에 들어가서는 촌로들의 얘깃놀음에 끼어들리라!
신평오일장에서는 고무신 한 켤레를 사들고 나오리라!

이런 다짐을 하면서....
 

ⓒ조문환 선생

강둑에 서니 주체할 수 없는 바람이 불아왔다.
바람이 불었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북쪽에서 몰아친 바람이 섬진강을 타고 내려가다 그 가속도로 다시 치솟아
방천에 서 있는 나그네를 휩쓸어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고
그 회오리는 하늘을 행햐 오르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논 가운데 봄갈이를 하는 아낙네가 썼던 머릿수건이 저 멀리 내동댕이쳐지고
들길에 자전거 타고 가시는 촌로가 쓰러질 듯 자전거를 붙잡고 한참 서 계셨다.

지난 겨울은 가뭄이 극심했었다.

도시인들은 겨울가뭄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농촌에서의 겨울 가뭄은 봄 농사를 위협하고
그 가뭄은 농사를 망치고 논을 마르게 할 뿐 아니라
농부들의 가슴도 새까맣게 태워버린다.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 농사일이다.
그 걱정과 근심, 속앓이의 산물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농사일이라는 게 꼭 천재지변만이 변수가 아니다.
요즘은 정치변수 나아가 글로벌 변수라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순진한 농부들은 그런 변수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냥 세상을 잘 못 만났거니,
내가 농사를 잘 못 지었거니,
운때가 맞지 않았거니...
그냥 가슴만 치고 있을 뿐이다.

농촌을 위한다고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농촌은 "팽" 당하기 일수였다.

마른 논은 비 오면 치유되지만 팽당한 가슴은 달랠 길이 없다.
이것이 극심한 겨울 가뭄보다,
한여름 퍼붓는 폭우나 태풍보다 더 거센 바람으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이래저래 가슴이 타고 그 마음에는 바람 잘 날 없다.
 

ⓒ조문환 선생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세상일이듯
가뭄이 극심하다고 걱정하던 차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3월은 그렇게 봄비로 시작해서 봄비로 마가했었다.

삼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 섬진강가에 섰다.
물기 잔뜩 머금은 강둑엔 ㅆ구이며 나물이 그 겸연쩍게 얼굴을 내밀었고
깨알만한 작은 야생화들이 젖은 풀잎 속에 파묻혀 있었다.

개불알꽃인가? 각시붓꽃인가?
그 경이로움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 무릎을 꿇었다.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폭풍우 속에 미동만 있을 뿐 떡 버티고 서있는 그 장중함,
봄비가 가져다 준 대자연의 선물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쓰러질 듯 거센 폭풍우 속에서 미동만 할 뿐 흔들리지 않는 꽃을 보고서
무릎 끓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무릎을 꿇어야만 보여지는 꽃!
겨울 가뭄 끝에 내린 봄비의 위력이다.
자연은 스스로 창조력이 있고 치유력이 있어 보인다.
 

ⓒ조문환 선생

그렇지만 봄비가 황홀경의 꽃만 피워내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다. 봄비 후에 어김없이 불어닥치는 바람.....

해마다 매화는 어김없이 바람에 떨어졌었다.

어렵사리 피워낸 꽃도 결국에는 거센 바람에 의해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매화나 벗꽃이 그 수명이 다하여 지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봄비로 하루 아침에 피어났다가
그 봄비가 만들어 놓은 바람에 휩쓸리듯 떨어져 버리는 것이 봄꽃의 운명이다.
 

ⓒ조문환 선생

꽃을 보았는가?
그렇다면 봄비를 보았다.
봄비를 보았는가?
그렇다면 꽃을 잡아채가는 바람을 보았다.

봄비와 꽃과 바람은 이처럼 기구한 운명이다.

덕천교를 지나니 새내들이 반달처럼 섬진강을 비추는 듯하였고
새내들은 바람이 거셌다.

새들은 바람부는 날이 더 즐겁다.
학암리에 도착하니 강가에 학들이 무리를 지어 바람과 함께 노닐었다.

4월의 섬진강은 바람강이다!
 

ⓒ조문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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