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산내, 원좌, 지동마을)
글·사진 조문환 선생

ⓒ조문환 선생

나는 지금 서산교위에 서 있다.
마령면과 성수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오늘의 출발은 바로 그 경계에서 시작된다.

강을 따라 걸으려면 때로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아니 강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는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시골국도는 한산했다.
간헐적으로 트럭이 찬바람을 가르며 달려가지만 도로는 차 구경하기도 힘든 아침이다.
 

ⓒ조문환 선생

다리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길도 없는 비탈언덕을 통해 강으로 다가갔다.
강은 입을 굳게 다문 듯 얼어 있었다.
강폭이 좁고 물살이 센 곳에는 숨구멍처럼 생긴 얼음구멍 사이로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강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급속냉동이라도 된 듯
흐르는 모습 그대로 순간동작이 멈춰선 듯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원시와도 같은 강 길이라 사람이 다닌 흔적도 없었다.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말라버렸지만 빽빽한 갈대숲과 엉겅퀴,
지난해 수해로 떠내려 온 듯 온갖 쓰레기가 나무에 걸려
하나의 설치미술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간헐적으로 얼지 않은 곳에는 가냘픈 수증기가 올랐다.
얼어붙은 강을 보자 유년시절의 썰매를 타고 놀았던 생각이 났다.

 

ⓒ조문환 선생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논바닥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고학년이 되고 담력이 커지면 썰매타는 실력도 향상되어 시냇가로 나갔다.

곱게 언 얼음판은 물을 뿌려놓은 유리처럼 미끄러워
썰매는 방향을 잃고 제 마음대로 달리다 점차 감각을 찾곤 했었다.

날씨가 풀리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까지 우리의 얼음지치기는 쉬지 않았다.
이윽고 시냇가 언덕에는 짚불이 붙여지고 옹기종기 모여 젖은 옷을 말리는 아이들....

얼음은 마치 고무판처럼 늘어지고 물러져 청용열차를 타는 듯
가슴이 철렁 내려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냇가에서 썰매타기는 바로 그런 매력 때문이다.

스릴을 더 느끼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한데
얼음이 꺼져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찰나의 순간에
함정과도 같은 그곳을 순간이동 하듯이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이미 얼음은 완전 고무얼음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통과를 했으니 내라고 못할 수 있으랴!

보라는 듯 온 팔과 다리에 힘을 집중해 송곳을 내리 찍고
두 발은 썰매에 박차를 가했다.

 

ⓒ조문환 선생

시선은 모두 나에게 집중되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이 파노라마처럼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얼음이 가장 연하여진 곳,
가장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이미 얼음이 많이 함몰되어있었다.
물러질 대로 물러진 곳에서 속도를 높여 힘을 주었을 때
나는 이미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빠져나오기 위해 얼음을 잡으면 잡을수록 얼음은 더 깨지고 또 깨졌다.

썰매와 송곳은 저 만치 달아나 버리고
겨우 친구들의 도움으로 얼음위에 구출된 나는 건너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보다는
용감하게 빠졌다는 영웅심리에 추운 줄도 몰랐었다.

그 소년시절의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얼음위에 나를 던졌다.
얼음이 깨질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얼음 아닌가?
가장자리에서 몇 번 발 스케이트를 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조문환 선생

강은 또 다시 휘감아 돌아 산내교에 이른다.
다리위에서서 나는 잠시 황홀경에 빠졌다.

겨울 강이 나그네를 매료시키다!
절제되고 숨죽인 겨울 강이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다니?

다리 위의 경치와 아래의 경치가 나그네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크게 휘감아 돌아선 위쪽의 강은 텅 비어 있는 호수 같았고
살짝 돋아난 바위위에 절묘하게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이 모든 절제된 여백과 간결함의 백미와도 같았다.

강 아래는 이제 새로 막 탄생한 듯한 태양빛에 얼음이 눈부셨고
완전 나체의 나뭇가지를 엑스레이처럼 투과하여 정갈하게 만들어 놓았다.

 

ⓒ조문환 선생

산내교를 건너 다시 길을 버리고 물길로 내려갔다.
거의 숲과 같이 되어버린 잡목과 갈대숲을 지나 강가로 나아갔다.

길 위에서 본 강과 강에서 본 강은 그 느낌이 다르다.

길 위에서는 강을 관조할 수 있다면
길에서 내려와 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눈높이를 맞춘 것은
강의 호흡과 숨결까지 고스란히 듣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편안한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개울을 건너다 물에 빠지기도 하고
길이 아닌 길을 가다 길이 막혀 돌아가기도 해야만 했다.

이것이 물길을 따라 걷는 재미이자 진정한 맛이기도 하다.
앞으로 남은 5백리 길도 그렇게 갈 것이다.

쉽게 지나온 길은 기억조차 되지 않을 것이기에,
비록 물길을 따라 가는 길이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편안한 아스팔트길을 포기하고 강물을 따라 걸을 것이다.

오백리길 섬진강이 내게 주는 말을 내 호흡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조문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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