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력 중심 도시 벨기에 브뤼셀에 마련된 한-EU 연구혁신센터.
국제협력 중심 도시 벨기에 브뤼셀에 마련된 한-EU 연구혁신센터.
KIST유럽연구소가 있는 자브뤼켄은 국경 도시다. 프랑스, 룩셈부르크가 바로 이웃에 있고, 벨기에, 스위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가끔 물 값이 싼 프랑스 슈퍼마켓으로 시장을 보러 가거나, 자동차 기름을 넣고 커피를 사러 룩셈부르크로 가기도 한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달리면서 표지판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국경을 넘었는지도 잘 모른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온다. 우리나라 영사관에서 위급한 상황에 대비한 긴급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메시지거나 통신회사에서 국제전화 요금을 안내하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방금 국경을 지났음을 알려준다.

이런 국경 개념은 한국인으로서 정말 낯설게 느껴진다. ‘해외로 나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만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사통팔달 도로가 뚫려있는데 ‘사람이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선’을 지나면 글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진다. 그 뿐이랴, 건축양식이 달라지고 음식문화도 달라진다. 유럽에서는 자연적인 제약조건보다 인공적인 제약조건이 사람들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지난 한달 동안 몇몇 행사에 참석하느라 여러 나라 도시를 다녀왔다.

재독과협(재독 한국 과학기술자 협회) 창립 40주년 학술세미나가 에센에서 개최되었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친 후 독일에 남아서 직장생활을 하셨던 여러 원로 과학기술인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이 분들은 한국말보다 독일 말을 더 편하게 하신다. 그럼에도 이런 모임에 참석하셔서 어색한 우리말로 후배 과학자들을 위해 정열적으로 경험담과 격려말씀을 해주시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우리 연구소는 올해부터 재불과협(재 프랑스 한국 과학기술자 협회)에도 기관 회원으로 등록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파리에서 개최된 재불과협 세미나에 참석하여 우리 연구소를 소개하였다. 파리는 자브뤼켄에서 TGV나 ICE와 같은 고속열차로 1시간50분 거리에 있다. 이동시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와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재불과협 행사 분위기가 재독과협에 비해 훨씬 더 자유스러웠다는 것이다. 참석자 수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발표 시간이 초과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고, 또 가족들이 같이 발표장에 참석하여 들었다.

그리고 사진전을 연상할 만큼 많은 작품사진과 볼거리가 걸려있는 행사장, 와인을 곁들인 점심식사 등은 독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이런 한국인 모임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헝가리 과학원에서 개최된 '한-헝가리 기술의 날' 행사에서는 우리 연구소를 소개하고, 공동연구 파트너를 찾는 면담을 가졌다.  자기 회사나 연구내용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중 수교 후 얼마 되지 않아 북경에서 만났던 중국 과학자들이 생각났다. 저런 열정이라면 오래지 않아서 헝가리도 중국처럼 다시 부흥할 것이라 믿는다. 

헝가리는 12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 오스만투르크 등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이념과 종교 때문에 여러 전쟁을 겪으며 많은 수난을 당했던 나라. 그 여파로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회색빛이 도는 나라.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한 명도 없는 노벨과학상이 여러 명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헝가리 사람들의 외골수적인 성격 때문이란다. 한 가지 일을 맡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 그래서 노벨상을 받을 만큼 우수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란다.

그렇지만 바로 그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협력 연구가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적 효과와 연결시키는 노력에는 관심이 없단다. 그래서 개발 연구와 상용화 기술이 앞선 우리나라와의 공동연구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기초과학분야에서 우수한 인재가 많은 헝가리는 좋은 연구 파트너가 될 수 있다.

11월 초순에 박근혜 대통령께서 한-EU(유럽연합) 정상회담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하셨다.

브뤼셀에는 EU 집행위원회(EU 행정부)가 있다.  EU는 1993년에 창설되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창설 당시 12개였던 회원국이 28개로 증가하였다. 회원국 수의 증가는 EU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U는 단일 R&D 프로그램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FP (Framework Program)을 1984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올해로써 FP7이 끝나고 내년부터는 더 확장된 프로그램인 'Horizon2020'이 시작된다.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브뤼셀에 ‘한-EU 연구혁신센터’가 개소되었다. 이 센터를 통해 앞으로 한국 정부 차원에서 EU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을 더 자세하게 파악하게 될 것이다.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마차시 성당.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마차시 성당.
KIST유럽연구소는 독일에 위치하지만 영문 이름은 KIST Germany가 아니고 KIST Europe이다. 연구소 창립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우리 연구소의 활동범위를 독일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유럽 전체로 확장되기를 바라셨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비전을 가지고 우리 연구소는 브뤼셀에 개소된 ‘한-EU 연구혁신센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 있는 연구기관들과도 좀 더 활발한 교류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헝가리를 포함한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과도 인력 및 정보교류 등을 추진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향해 KIST유럽연구소는 지난 10월에 한국의 연구개발인력교육원(KIRD)과 함께 ‘한-EU 공동연구·국제협력 탐색 및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한국의 16개 기관에서 온 사람들이 자브뤼켄, 브뤼셀, 파리를 돌며 강의와 현장실습을 수행하였다.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수많은 전쟁을 통해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EU의 창설로 이어진 것이다.

현대 문명과 과학기술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에는 아직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은 많은 보물들이 있다. 그 현장에 KIST유럽연구소가 있다. 이제 우리는 독일을 넘어 유럽으로 진출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보물찾기에 동참하길 바란다.

이호성 소장
이호성 소장
대한민국 4.0시대를 여는 시기로 성숙된 의식과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에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은 독일의 과학기술과 그 발전의 바탕이 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 소장은 독일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이호성 소장은 KAIS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근무를 시작, 17년 동안 시간·주파수 표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펌핑 세슘원자시계를 개발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3년 이후에는 표준연의 주요보직을 맡아서 후배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에서 나노·융합단장으로 2년간 근무한 바 있습니다. 2012년 9월 KIST유럽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한국과 유럽연합을 잇는 가교역할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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