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기호일 뿐이다. 실재하는 것은 오로지 명암이다. Colors are only symbols. Reality is to be found in luminance alone.'(파블로 피카소)
 
1872년 모네가 파리의 한 전시회에 출품한'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은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평을 받아야 했다.

특히 미술평론가 루이 르루아의 비평은 조롱에 가까웠다. 르루아는 모네의 출품작을 일컬어 '그저 모호하고 야만적이며 형편없는 그림'이라고 했는데, 재미있게도 르루아는 모네를 조롱한 덕에 자신의 이름을 미술사에 남기게 되었다. 르루아가 '예술의 본질은 찾아볼 수 없고 표면적인 인상만 남아있다'고 모네의 작품을 비평한 데에서'인상주의'라는 말이 유래했기 때문이다.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 해돋이'.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 해돋이'.
그 당시 미술계가 모네의 작품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대상이 선명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르루아가 언급했듯이 '모호하고 표면적인 인상'은 이전의 회화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19세기의 미술계는 여전히 존재와 운동이 명확하게 기술된다고 믿었던 실재론의 시대였던 것이다.

모네 작품의 매력은 빛의 떨림이다. 모네의 작품은 정지한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 바로 그러한 모호함 때문에 사실화보다 더욱 실제처럼 느껴진다. 물안개 사이로 아침 해가 일렁이고 들판의 붉은 꽃은 바람에 춤을 춘다.

모네의 생동하는 캔버스는 신경과학자에게도 흥미로운 연구거리였다. 하버드 대학의 신경과학자 마가레트 리빙스톤은 파리 여행 중에 만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학문적인 영감을 받았다. 리빙스톤은 모네 작품 속 해가 일렁이는 느낌이 인간의 시각 시스템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연구하였다.
 
리빙스톤이 간파한 모네의 트릭은 등광도(equiluminance)효과였다. 광도(luminance)는 사람의 눈이 빛에 반응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값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물리적인 측정값으로서의 빛의 양은 아니다. 동일한 양의 빛이라도 빛의 파장에 따라서 인간은 그 밝기를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도를 같은 값으로 처리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우선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작동하는 중요한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시각 시스템은 카메라와 달리 영상을 한 번에 전송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망막에 맺힌 영상 정보를 쪼개어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시각 피질까지 전달한다.

뇌의 시각 피질에 들어온 신호는 what pathway와 where pathway로 나뉘어 전송된다. What pathway(아래)와 where pathway(위)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활용하는 정보도 다르다.
뇌의 시각 피질에 들어온 신호는 what pathway와 where pathway로 나뉘어 전송된다. What pathway(아래)와 where pathway(위)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활용하는 정보도 다르다.

인간의 시각 시스템은 크게 두 경로로 나누어져 있다. 1982년 원숭이의 시각 피질 연구에서 처음 발견한 이후로 인간의 시각 시스템도 두 경로로 구분된다고 밝혀졌다. 두 경로는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활용하는 정보와 기능도 분리되어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각각의 경로를 'what pathway'와 'where  pathway'라 부른다.

What 시스템이 손상된 사람은 물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데, 종종 과일이나 채소 혹은 사람의 얼굴과 같은 특정한 타입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색깔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Where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사람은 움직임이나 깊이 정보를 인식할 수 없게 되거나 공간 지각에 문제가 생긴다. 문자 그대로 what 시스템은 대상 인식을 담당하고, where 시스템은 공간 지각을 담당한다.

흥미롭게도 두 시스템은 활용하는 정보도 다르다. What 시스템은 색상 정보를, where 시스템은 광도 정보를 사용한다. Where 시스템은 색상 정보와 무관하므로 말 그대로 색맹 시스템이다. 우리가 물체의 공간적인 위치와 움직임을 인지할 때에는 흑백 정보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광도가 공간적 위치를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모네 '인상, 해돋이'에서 색상을 제거한 그림. 해와 하늘의 광도대비가 거의 없다(그림 왼쪽).모네의 '양귀비가 핀 들판'에서 색상을 제거하고 흑백으로 처리한 그림. 들판과 꽃의 광도 대비가 뚜렷하지 않다.(오른쪽)
모네 '인상, 해돋이'에서 색상을 제거한 그림. 해와 하늘의 광도대비가 거의 없다(그림 왼쪽).모네의 '양귀비가 핀 들판'에서 색상을 제거하고 흑백으로 처리한 그림. 들판과 꽃의 광도 대비가 뚜렷하지 않다.(오른쪽)

모네는 붉은 해와 주변의 하늘을 등광도로 처리했다. 위 그림은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색상 정보를 제거하고 흑백 처리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해와 하늘은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 모네의 그림에서는 해가 하늘보다 밝지 않다. 바다에 비친 해와 바닷물도 구별되지 않는다. 모네는 등광도 효과를 이용하여 흔들리는 빛을 만드는 트릭을 구사한 것이다. 대상과 배경 사이에 광도 대비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where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광도 대비가 없는 경계는 모호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효과를 잘 활용한 모네의 작품이 더 있다. 위 그림은 모네의 작품 '양귀비가 핀 들판'을 흑백 처리한 것이다. 들판에 핀 양귀비꽃이 보이는가? 모네는 이 그림에서도 양귀비꽃과 푸른 들판에 광도 대비를 주지 않았다. 모네가 그린 원작에서는 푸른 들판에 붉은 양귀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 양귀비 꽃들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1873년 모네 작품 '양귀비가 핀 들판'.
1873년 모네 작품 '양귀비가 핀 들판'.
물체나 사람의 움직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한 시도는 다른 화가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마르셸 뒤샹과 고흐는 그러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거나 과장되게 표현하였다. 마르셸 뒤샹은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에서 인체의 움직임을 겹쳐 그리는 수법으로 표현하였고,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에서 대기의 흐름을 과장하여 그렸다.
 
반면에 모네는 붓질을 더하지 않으면서도 흔들리는 태양과 춤 추는 꽃을 표현했다. 인간의 시각에 관한 연구가 뇌의 where 시스템을 밝혀내기 100여 년 전, 그 원리가 발견되기도 전에 등광도 효과라는 트릭을 구사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등광도 조건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하는 것이다. 포토샵도 없던 시절이었다.

◆참고문헌
1. Margaret Livingstone, "What art can tell us about the brain"
2. Mortimer Mishkin and Leslie G. Ungerleider, "Contribution of striate inputs to the visuospatial functions of parieto-preoccipital cortex in monkeys," Behavioural brain Research, 6(1):57-77, 1982.
3. Mortimer Mishkin, Leslie G. Ungerleider, and Kathleen A. Macko, "Object vision and spatial vision: two cortical pathways," Philosophy and the neurosciences, Wiley-Blackwell, 2001.
4. James V. Haxby, et al., "Dissociation of object and spatial visual processing pathways in human extrastriate cortex," PNAS, 88:1621-1625, 1991.
5. Leslie G Ungerleider and James V Haxby, "'What' and 'where' in the human brain", Current Opinion in Neurobiology, 4:157-165, 1994.


이정원 선임연구원.
이정원 선임연구원.
이정원 선임연구원은 책과 사람에 쉽게 매료되고, 과학과 예술을 흠모하며, 미술관과 재즈바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펜탁스 카메라로 순간을 기록하고, 3P바인더에 일상을 남깁니다. 시스템과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습관과 절차 자동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연구원은 이정원의 문화 산책을 통해 자연과 인류가 남긴 모든 종류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정원 연구원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에서 의용생체공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현재 ETRI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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